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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침이 Oct 19. 2023

경기도 신도시로 이사를 결심한 순간

이건 정말 아니야.


몇 년간 이어지던 주말부부 생활을 청산했다.

비로소 남편은 더럽고 비좁은 원룸에서 탈출할 수 있었고

아이는 일요일마다 아빠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울지 않아도 되었다.




아직 둘째 아이가 태어나기 전이었다. 첫째가 첫돌을 막 넘길 무렵부터 주말부부 생활을 시작했다. 나와 아이는  내 직장이 있는 지방의 S시에서 거주했고 경기도에 직장을 둔 남편은 주중에는 혼자 원룸에서 지내다가 주말에만 S시로 내려왔다.


년이 지났. 원래는 전생에 나라를 구하고 3대가 덕을 쌓아야만 할 수 있다는 주말부부 아니었나, 그러나 우리 가족은 가끔은 괜찮고 대부분은 힘들어했다. 일요일 오후에 남편이 짐을 챙기면 눈치 빠른 아이는 그때부터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방송을 찍었다. 다음 주에 또 오겠다아빠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서럽게 울었다. 눈물 없인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원룸에서 지내던 남편의 건강도 점점 안좋아졌다. 원체 짠돌이인 그는 처음에 방을 구할 때부터 오로지 '값이 싼 방'만을 고집했다. 나는 그가 삶의 질은 무시한 채 저렴한 방만 고집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왕이면 회사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좋은 오피스텔을 구해서 편히 지냈으면 했다. 그러나 결국 그가 고집을 부려 계약한 곳은 회사와 1시간 넘게 떨어진, 한 유흥가에 위치한 작은 원룸이었다. 300에 30인가, 역세권 근방에선 단연코 제일 저렴한 방이었다. 그는 돈을 많이 아낀 것을 자랑스러워 했지만 나는 골치가 아파 생머리를 앓았다.




그의 원룸은 우범지역에 위치했다. 그에게 옷을 가져다 줄 일이 있어 원룸에 처음 가본 날, 너무 놀라고 말았다. 그전까지는 남편이 거부하여 가보지 못하던 곳이었다. 직접 내 눈으로 동네를 둘러보니 왜 그가 한사코 나를 오지 못하게 했는지를 잘 알 수 있었다.


형광색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술집, 만취한 남녀의 무리, 그들이 아무렇게나 내뱉는 상스러운 말들, 담배꽁초와 전단지와 토사물이 나뒹구는 길바닥, 어수선하고 난잡한 느낌...... 

원룸 바로 옆에는 범죄를 피하기 위한 안심 부스도 설치되어 있었다. 안심 부스를 설치해야 할 정도로 안심 못할 환경인 것인가...... 기가 찼다.

부스 옆에서는 젊은 남녀가 쭈그려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우리를 쳐다보는 눈빛이 왠지 불쾌했다. 그들이 길게 내뿜는 담배 연기를 피하려고 아이의 손을 붙잡고 종종걸음을 쳤다. 뒤에서 카악-하고 가래침을 끌어모아 퉷, 하고 뱉어내는 소리가 들렸다.




돈 조금 아끼겠다고 이런 곳에 방을 구한 남편에게 화가 났다. 이미 그의 팔뚝에는 방에 사는 빈대인지 좀인지 알 수 없는 벌레에 물린 자국이 보기싫게 선명했다.

들어선 원룸 건물에서는 싸구려 라벤더 향이 났고 그 향기가 너무 강해서 코를 아프게 찔러댔다. 남편은 아들이 볼세라 복도에 다닥다닥 붙여진 퇴폐업소 광고지들을 황급히 떼어냈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굳은 얼굴로 그에게 말했다.


여보, 여기서 빨리 나와. 이건 정말 아니야.


그는 멋쩍은 표정으로 내 말에 바로 수긍했다. 때쯤엔 그도 느낀 게 있었는지 종종 뒤늦은 후회의 말을  참이었다. 그는 어느 날엔 <성범죄자 알림e>를 찾아보며 침울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이유를 알 것 같았지만 굳이 묻진 않았다. 교통편이 좋은 곳인데도 저렴해서 의아했는데 값이 싼 이유가 있었다.


앞으로는 돈을 아껴도 상황을 봐가며 적당히 아끼기로 했다. 그리고 주말부부 생활을 조속히 청산하고 살림을 합쳐 이사를 가기로 결의했다. 일단 나부터 타도 전출을 통해 직장 소재지를 옮겨야 했다.


그렇게 경기도의 신도시로 이사하기 위한 우리의 본격적인 여정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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