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간 우리 부부가 제일 많이 한 생각이었다.주말부부를 청산하고 온 가족이함께 살 도시로 어디가 가장 적당할지한참을 고민했다. 원래부터 경기도에서 쭉 살았다면 모를까, 시골에서 나고 자란 우리에게는 너무 어려운 문제였다.
남편은 학군을 1순위로 쳤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의 주장에 따라학군지인 A지역으로 마음을 굳혔다. 한동안 핸드폰으로A의 어느 아파트가 좋을지를 찾아보는 게 버릇이 됐다. 그런데 막상 임장을 꼼꼼히 해보니 여기 아이들이 얼마나 수학 문제를 잘 푸는지, 얼마나 유창하게 영어로 말하는지보다 다들 어떤 생각으로 이런 집에서 참고 사는지가 더 궁금해졌다. 그곳에는 정말 온갖 학원들이 다 있었다. 그러나 그 옆 아파트들은, 내가 본 집들은, 하나같이 너무 노후되어 있었다.
나보다 공부를 잘했던 남편은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것부터가 글러 먹었다고 했다. 학군지의 중요성도 모르면서 함부로 집값을 논하지 말라 했다. 그는 내게 일명 학군지로 통칭되는 동네들에 관하여 오래도록 설명해 주었다.그의 말을 들으니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그래도 나는 자신이 없었다. 비록 지방이었지만 최근에는 신축 아파트들로만 이사하며 지낸 나와 내 아이들은 어느새 새 것의 쾌적함에 젖어 있었다. 지금 사는 곳보다 훨씬 오래되고 좁은 (더 비싼) 아파트로 이사를 가야 한다니. 이게 맞나, 싶었다. 이곳으로 이사한다면 부부 모두 왕복 2시간이 넘는 출퇴근 시간을 감수해야 했고, 가끔 겨울에 세탁실 물이 역류하면 욕조에서 직접 발로 밟아가며 빨래를 해야 했다.
"여보, 미안한데 나는 진짜 못가겠어."
나는 끝내 고개를 저었다.
나는 신축 아파트들이 즐비한,신도시 B로 이사하고 싶었다. 아직도 개발이 끝나지 않은 신도시면서 우리 부부의 직장과도 가장 가까운 지역이었다.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화려하고 쾌적하고 젊은 신도시! 남편만 좋다고 하면 당장이라도 아파트 계약을 하고 싶었다.그곳의 일부 아파트는 부동산 시장이 침체된 시기에도 집값이 거의 내려가지 않았다 했으니 경제적으로도 괜찮은 투자 같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남편이 완강하게 거절했다. 남편은 나와 달리 평소에도 '완전 새 것'의 느낌을 싫어했다. 나와는정반대였다. 그는 예전에 살던 공무원의 도시 S시도 같은 이유로안좋아했더랬다. (정착 초기에는 동네에 브랜드 빵집 하나, 카페 하나 들어올 때마다 환호하던 기억이 있었으니 그때는 그럴 만하기도 했다...)좀 지난 후에 상가와 학원이 들어차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아주 좋아했지만, 아무튼 그래서 그는아직도 곳곳에 공사판의 먼지가 가시지 않은 B보다는 어느정도 자리를 잡은 지역에 정착하기를 희망했다. 특히 B는 그가 동경하고 희망하는 서울과는다소 거리가 있었다. 그래봤자 몇십 분 차이였지만.결국 B로 이사하는 것은없던 일이 되고말았다.
그러면 C는 어떨까?
C는 딱 A와 B의 중간인 듯한 느낌의 지역이었다. 직장까지의 거리도, 서울과의 거리도,아주 멀지도 가깝지도 않았다.그곳의 아파트들도아주 신축도 아주 구축도 아니었다.처음부터 막 살고 싶다 생각한 건 아니었지만 임장을 가보니 딱히 안 살 이유도 없는, 꽤괜찮아보이는 곳이었다.
남편은 주변에 대형 병원, 마트,음식점과 카페가많은 것을 마음에 들어했고 나는 나대로아파트의 녹지 비율이 높고첫째가 다니게 될 학교가 초품아라는 점이 안심이 되었다. 걸어서 호수공원에 갈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이 정도면 우리 가족이 만족하며 오래 살 만했다.
다만 한 가지, 학군은 잘 모르겠었다. 이게 마음에 걸렸다. 남편에게 학군의 중요성에 대해 듣고나니 나 역시 이왕이면 학군지로 이사가고 싶어졌다. 그렇지만 모든 조건을 만족할 수는 없으니...... 어차피 공부를 잘 할 아이라면 어디 가서든 잘 해내겠지,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결국 우리는 C로 이사를 갔다. 우리 부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런데 며칠 후, 하교한아들이새 학교에 관한소감을밝히자 가슴이 철렁했다. 이전 학교보다 아이들이 시끄럽고 발표를 잘 안한다고 했다. 그래서 자기도 발표를 할까말까 망설였다고 했다. 아이만의 이상한 계산법에 따르면 이전 학교 아이들이 공부를 87% 잘한다면 이번 학교 아이들은 23% 정도만 잘하는 느낌이라 했다.
순간, 집에 있지도 않은 남편의 눈치가 보였다. 이러면안되는데. 그의 말대로 학군지에 갈 걸 그랬나...... 아들이 끝에 덧붙인 말이 아니었다면 나는 그날 내내 근심할 뻔 했다.
엄마, 그런데 나 받아쓰기 30점 맞았어!
앗, 30점은 좀...... 아무리 전학 첫 날이라 연습을 못했다 하더라도이 정도면 좀...... 아들의 받아쓰기 점수는 반에서 거의 꼴찌라 했다. 불안하던 마음이 갑자기 편안해진다. 잠깐, 내가 왜 학군 걱정을 하고 있지?우리 아들을 좀 더 지켜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