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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침이 Sep 27. 2023

서울의 특급 호텔에 다녀오니

대도시로 이사를 결심하다.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서울로 휴가를 다녀왔다. 성실한 남편 덕분이었다.


"여보, 나 우수사원 됐어!"


몇 달 전, 남편이 한껏 들뜬 표정으로 퇴근하며 외쳤다. 회사내 팀원들의 다수결 투표로 해당 분기의 우수사원으로 뽑혔다는 것이다.


남편이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은 평소에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볼 때 그는 일 중독자였다. 그는 종종 업무가 힘들다고 말했지만, 그런 말을 하는 사람치고는 매일 꼬박꼬박 출근을 하는 발걸음이 기운찼고 표정도 밝았다. 그는 내가 아이를 낳는 동안에도 출산실과 복도를 왔다갔다 하면서 틈틈이 업무와 관련된 통화를 하던 사람이었다. 그런 남편이 안쓰럽기도 하고 못마땅하기도 했다.

그러던 와중에 우수사원이 됐다며 아이처럼 좋아하는 남편을 보니 조금 머쓱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남편이 인정받으니 나 역시 기쁘긴 참 기뻤다. 입사한 후 지금까지 승승장구하는 그가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남편은 상금 외에도 장님이 특별 부상으로 우리나라에서 최고 좋다는 호텔의 식사권선물해주셨다며 의기양양한 웃음을 지었다. 그는 이참에 서울로 짧은 여행이나 다녀오자고 했다. 호텔에서 1박을 하자는 것이다. 식사권을 사용하기 위해 호텔에 하루 묵는다는 것은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것 같았지만, 모처럼 일상의 단조로움에서 벗어나 호캉스를 할 생각을 하니 나도 설레기 시작했다.





몇 주 후, 우리는 서울로 휴가를 떠났다. 서울 사는 사람들에게는 서울로 휴가를 간다는 말이 좀 우습겠지만 지방에서 오래 산 사람들로서는 간만의 서울 나들이가 꽤 설렜다. 경부 고속도로를 타고 동탄 분기점을 지나 판교 나들목에 들어설 부터 양 옆에 늘어선 건물들이 눈에 띄게 높아지고 많아졌다. 그에 따라 남편과 나도 점점 흥분해서 목소리를 높였다. 나이를 먹으며 세속적 명리에 눈을 뜨기 시작한 우리였다.

 

  - 여보, 저기에 친구 누구 산다고 하지 않았어? 잘 사나보네. 응, 수원 살 때부터 몸테크 하더니 성공했지.

  - 와, 여기는 외제차가 너무 많다. 앞에 슈퍼카 보이지? 가까이 붙지 마, 사고 나면 골치 아프다.


뒤에 앉은 어린 아들이 우리의 대화가 잘 이해되지 않았는지 자꾸 왜? 무슨 말이야? 하고 묻기 시작했다. 아무리 우리가 속물이라 해도 아들이 듣기에는 적절한 대화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차, 싶어서 나는 얼른 입을 다물었지만 한껏 들뜬 남편은 어린 아들에게 갈수록 이상한 말을 했다.

 

 "ㅇㅇ아! 저기 아파트 보이지? 우리집 ㅇ채는 팔아야 될 정도로 비싼 곳이래."

 "ㅇㅇ아! 우리가 지금 가는 식당의 밥값이 1인분에 ㅇㅇ만원이래. 태권도장 한달 원비보다 비싸다. 그렇지?"

 "ㅇㅇ아! 오늘 묵는 방 값이 하루에 ㅇㅇ만원이래. 여기에서 열 밤만 자도 아빠 월급 다 쓰는 거야."   

  

그리고 남편은 말 끝마다 '그러니까 돈 많이 벌어야 한다.'고 당부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의 말을 듣는 아들의 표정도 사뭇 진지했다. 나는 이건 아닌 것 같아서 입을 다물라는 표시로 남편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래도 아직은, 아이가 돈의 가치로만 세상을 보게끔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남편이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아이에게 이러는 건 어쩐지 천박하게 느껴졌.

남편도 그제서야 입을 다물었다. "...그렇지만 돈 때문에 양심에 어긋나는 은 하면 안된다."라는 다소 뜬금없는 말로 마무리를 지었다.


한편으로는 남편이 이해가 안되는 것은 아니었다. 한때는 그도 48평의 아파트에서 부잣집 도련님으로 살았다. 그러다 가세가 점점 기울었고 대학생일 때에는 돈을 아끼려 하루에 한 끼만 먹으며 지냈고 했다.

그런 그에게 당시의 서울은 갑고 비정한 도시이면서도 희망과 기회를 줄 곳이기도 다. 이십대의 그가 이를 악물고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건 서울의 아파트들을 보며 '언젠가는 나도' 하며 마음을 다잡았기 때문이란다. 운전대를 잡은 채 빌딩 숲을 올려다보는 그의 눈다시금 피어나는 욕망들로 빛나고 있었다.



 

 관광을 했다. 남들은 퇴근을 하는데 우리는 관광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어디엘 가도 융화가 안되고 묘하게 외지인의 분위기를 풍겼다.

나와 남편은 아이들에게 하나라도 더 보여주고 알려주고 싶어서 여기 저기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수다스럽게 떠들었지만 아홉 살 아들은 어딜 가나 대체로 심드렁했다. 그는 "서울이 크고 집도 많고 사람도 많은 것은 알겠는데 그래서 뭐." 와 같은 감상평을 내놓았다. 그래도 네 살 딸아이는 좀 더 신기해하긴 했다. 뾰족한 남산 타워를 보고는 공주님이 사는 성 같다며 짝짝짝 박수를 쳤다. 딸의 들뜬 목소리에 따라서 다시 흐뭇해졌다.



그리고 드디어! 우리가 서울 여행을 계획하게 된 시발점인 그 특급 호텔에 도착했다. 체크인을 하고 식당 앞으로 가니 아무 때나 들어갈 순 없고 정해진 시간에만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잠시 호텔 로비에 앉아 대기를 했다. 딸아이는 천장에 달린 화려하고 거대한 샹들리에를 올려다보며 하늘이 반짝반짝하다감탄했다. 사람들이 점잖게 오가는 로비 한 가운데에 버티고 서서 셀카를 찍어달라고 했다. 아이는 사진을 찍어줄 때에도 가만히 있지를 않고 엉덩이춤을 췄다.


시간이 되자, 저녁 식사를 시작했다. 입구에 들어가니 일렬로 서있던 직원들이 인사를 했다. 흠칫, 놀랐는데 곧 이런 내 모습을 그들도 봤을지 걱정이 됐다. 그들은 가장 친절한 말투와 표정으로 자리를 안내하고 때때로 잔에 물을 채웠으며 계산은 어떻게 할 건지를 물어왔다. 


아이들은 평소와 같았다. 입이 짧은 아들은 이건 맛있지만 저건 맛이 없다 했고, 딸은 음식을 먹는 순서를 알려줘도 고집스레 마카롱과 디저트 류만 먹으며 까불댔다. 그러나 어른들은 둘다 약간 긴장하고 있었다. 


은 기대한 만큼 신선하고 맛이 있었다. 커피를 마시려고 두리번거리니 쁜 직원이 다가와서 직접 커피를 내려주겠다고 했다. 기다렸다가 마신 커피도 역시 맛있었다.(곳에 밥을 처음 먹어본지라 이런 내용들을 고 있다.)

 

한편 남편은 음식을 맛있게 먹으면서도 양 옆에 앉은 다른 손님들을 의식하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가 슬리퍼를 끌고 동네 식당에 가서 삼겹살을 구워 먹는 것처럼 아주 편안해보였다. 느릿느릿 먹고 마시고 무심하게 고급 와인을 시켰다. 가끔은 지루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입으로는 쉬지 않고 음식을 씹으면서도 힐끗거리며 자꾸 그들을 바라보는 남편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는 이곳에서마저도, 언젠가는 저들처럼 무심하게 밥을 먹고 말겠다는 굳은 의지를 다지고 있었다.





집에 온 후 아이들은 금방 일상에 적응했다. 호텔에서 물놀이를 제일 즐거워하던 아이들이었다. 방값이 얼마인지 밥값이 얼마인지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이틀 후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이들이 침대 위를 뒹굴며 외친 말은 집이 제일 좋아!였다.


러나 나는, 남편은 한동안 마음이 붕 떠 있었다. 꿈을 꾼 것만 같았다. 서울에서 짧은 관광을 하는 내내 나는 어쩐지 서울 시민들에 대한 질투를 하고 있었다. 지금 사는 지역이 조금 보잘 것 없게 느껴졌다. 그동안 애들 키우기에는 참 좋다고 만족하던 곳이었다. 이런 생각을 남편에게 말하자 그는 웃으며 당신도 그렇냐고 했다.


우리가 느낀 것은 대체로 같았다. 아주 작은 도시에서 한평생 살아오신 친정 부모님께 고급 호텔에서의 식사를 종종 대접하고 싶었고, 연로하신 시부모님께 대도시의 잘 갖추어진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었다. 매일 공원에서 킥보드를 끌고 산책하는 기쁨이 다인 줄 아는 아이들에게도 대도시에서만 할 수 있는 다양한 경험과 체험들을 하게 해주고 싶었다.     


곧 우리는, 아이들 앞에서는 창피해서 말할 수 없는 아주 속물스러운 대화들을 오래도록 나누었다. 고개를 끄덕이고 각오를 다졌다. 우리의 끝없는 대화는 2시간을 달려 거대한 서울의 밤하늘 어딘가로 날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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