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유튜브의 시대.
요즘 아이들은 안 봐도 비디오라고 하지 않고 안 봐도 유튜브라고 한다던데, 정말일까.
어느새 따듯한 봄이 되었다. 나는 잠자던 곰이 겨우내 웅크리던 몸을 일으키듯, 한껏 기지개를 켜고 다시 일어났다. 집안을 돌보고, 맛있는 저녁을 만들고, 영어 공부도 하고, 책도 보면서. 한 번씩 집 밖에 나가 논밭 옆을 거닐고, 아파트 안에 있는 놀이터에 앉아있으면서. 봄을 알아차리고, 기운을 차리기 시작했다.
몸과 마음이 살만해지니, 새로운 생각이 드문 드문 일었다. 이렇게나 시간이 많고 여유가 있던 때가 없었는데. 이 시간을 그저 이렇게 무용하게만 보내기가 아쉬웠다. 뭐라도 해보자. 성취감이나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이면야 무엇이든 좋겠지만. 돈까지 벌 수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좋은 것에 좋은 것을 더하는 일이겠다 생각했다.
유튜브에 들어가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영상을 여럿 찾아보다가 불현듯 나도 이들처럼 유튜버가 되어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사실 그전까지 유튜버를 한번 해보라는 말을 종종 들었다. 잘할 것 같다는 말도 들었고, 왠지 네가 만드는 영상은 묘하게 웃길 것 같다는 칭찬 비슷한 말도 들었다. 재미가 없을 것 같아도 뭐라도 찍어서 올려보라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 뭐라도 해보는 거지. 일단 해보는 거야. 원래 실력이랄 것도 없는 초짜들에게는 무모함과 함께 장비가 중요한 법. 검색창에 카메라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거짓말 좀 보태서, 카메라 종류만 수억 개는 돼 보였다. 브이로그용 카메라, 요리 유튜브 용 카메라, 여행 유튜브용 카메라 등등등. 콘텐츠별로 카메라를 다르게 사용하는 듯했다. 아. 순서가 잘못되었구나. 우선 콘텐츠를 정해야 한다.
빈 종이와 펜을 꺼내 어릴 적부터 고민이 있을 적마다 꾸준히 그려온 마인드맵을 만들기 시작했다. 가운데 동그라미를 그리고, “유튜브”라는 글자를 적어 넣었다. 그리고는 옆에 가지를 쳐서 “콘텐츠”를 적었다. 그런데 콘텐츠라는 게 결국 “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그 옆에 가지를 그려서 “나”를 적었다.
나.
내가 누군지, 어떤 걸 잘하고, 좋아하는지. 어떤 모습을 갖고 있는지. 또다시 이 생각을 하다가, 저 생각을 하다가 머릿속이 마구잡이로 분주해지는 걸 느꼈다.
아이 참. 나는 유튜브 하나 시작하는 것도 어렵구나. 뭘 하나 하려면 이렇게 늘 한참이구나. 나도 참 피곤하게 산다 싶었다. 하지만 별 수 없다. 이왕 하기로 한 거, 준비를 잘해서 하면 더 좋으니까.
유튜버가 되어보자고 생각한 첫날은 그렇게 갑작스러운 자아 성찰과 자기 객관화의 시간으로 엉뚱하게 흘러갔다. 퇴근을 하고 돌아온 남편에게 물었다. 사실
나에게 뭐라도 해보라는 말을 가장 많이 해주는 사람이 남편이었다. 남편은 다소 심사가 복잡한 나와는 다르게 간단하고 명료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지금 자기는 논밭이 보이는 집에 살고 있잖아. 집에서 하루 종일 혼자 바쁘게 사부작대기도 하잖아? 퇴사하고 지방에 내려와 지내는 일상을 담아보는 게 어때?“
나는 하루 죙일 “나” 알아가기 시간을 갖느라 정작 유튜브 콘텐츠는 정하지도 못했는데. 남편은 명쾌하게 답을 내주었다. 때로는 오래오래 갈고닦는 생각보다, 짧고 굵게 잘라낸 생각이 더 뾰족하게 다듬어질 때가 있다.
그래. 논밭뷰 일상을 담아보자.
카메라도 나중에 사자. 장비가 완벽히 갖춰지지 않아도, 편안하게 힘 좀 빼고 부담 좀 덜어내고 쉽게 생각하자.
그 다음날 나는 집에 있던 공기계 핸드폰을 꺼냈다. 어떤 유튜버도 핸드폰으로만 영상 촬영을 하는데, 음질도 화질도 준수하다고 했다. 그 말을 믿어보자 싶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부터 찍어볼까. 보통 일상을 담는 영상에서는 침대에서 눈을 뜨는 것부터 시작하던데.
카메라를 엉성하게 책으로 받쳐두고, 침대에서 누웠다가 일어났다. 순간 아무도 없는데, 뭔지 모르게 얼굴이
화끈거렸다. 거짓말을 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 천연덕스럽게 상황을 연출하기에 나는 배짱이 몹시 모자랐다. 기상하는 장면은 그럼 빼고.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장면을 찍어보자.
카메라를 들고 부엌으로 향하는 모습부터 촬영했다. 맨발이 보였는데 발톱이 너무 많이 자라 있었다.
에라. 발톱부터 깎자. 지저분한 모습을 영상에 담을 순 없지.
방에서 부엌은 열 걸음도 필요하지 않을 거리인데, 구만리를 걸어가는 것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드디어 부엌에 들어서 본격적인 촬영을 시작했다. 한참 ‘마녀수프’라는 야채수프를 만들어 먹던 때였다.
냉장고에서 토마토, 각종 야채, 소고기 등을 꺼내 재료 손질을 시작했다. 토마토는 붉고, 채소들도 싱싱하니 꽤나 색감도 예쁘고 볼만한 장면이 연출됐다. 그런데 문제는.
나의 고질병.
한 번에 한 가지 일밖에 하지 못하는 병.
재료 손질을 시작하자, 내가 촬영 중이었다는 걸 새까맣게 잊고 말았다. 다양한 구도에서 촬영을 하려고 했는데, 모든 재료를 한 앵글 안에서만 자르고 말았다. 그마저도 재료가 보일락 말락 하는, 상당히 애매한 위치와 각도였다.
한 마디로 쓸 수 없는 영상을 몇 분 동안 정성껏 찍은 셈이었다.
촬영을 하는 중간중간 잘 나오고 있는지 확인도 하고, 다양한 각도에서도 찍어보고 해야 했는데. 유튜브 영상을 보기만 했지 찍는 건 처음이라, 영상 뒤에서 유튜버들이 신경 쓰고 노력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다른 위치에 카메라를 놓고 촬영을 재개했다. 재료들을 하나씩 냄비에 넣는 장면을 넣고 싶었다. 그러다, 재료가 더 잘 보이면 좋겠다는 생각에 한 손에는 카메라를, 다른 한 손으로는 재료를 냄비에 퐁당 넣으며 촬영을 시작했다.
앗 뜨거.
한 손으로 버섯을 와라락 넣다가 데고 말았다. 안 하던 짓을 하면 탈이난다더라는 그 말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더 크게 다치기 전에 카메라를 내려놓고 하던 대로 재료를 조심히 냄비에 담았다.
냄비에서 수프가 보글보글 끓고, 맛있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다시 카메라를 집어 올리고 더듬더듬 목소리를 냈다.
“자, 이렇게 마녀수프 완성입니다.”
너무 뜬금이 없나.
“으음. 좋은 냄새가 나기 시작했어요. 맛있는 마녀수프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너무 작위적인가.
“이렇게 한소끔 끓이면 될 것 같아요.“
너무 재미없나.
적절한 대사를 뱉고 싶었는데, 어떤 말도 영 입에 붙지를 않아 자체적 수차례 NG를 냈다. 그냥 아무 말 않고 나중에 자막으로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수프를 그릇에 담고, 식탁에 앉아 먹는 영상을 촬영했다. 이번에는 실수하지 않겠노라 다짐하며, 중간중간 촬영 화면을 확인했다. 유튜브에 얼굴을 공개적으로 올리는 것이 조금 조심스러워서 얼굴 아래로만 촬영을 하려고 했는데. 얼핏 얼핏 얼굴이 계속 보였다. 1차 실패다. 다시 각도를 조절하고 음식을 먹는데 맛깔난 맛표현이 떠오르지 않아 말을 더듬거렸다. 2차 실패.
그렇게 또 몇 차례의 실패와 시도가 이어졌을까. 어느새 수프는 식어갔고, 나는 배도 채우지 못하고 영상도 채우지 못했다.
다른 이들의 영상을 보면 아침 식사를 준비해서 먹는 데까지는 길어야 5분 정도 나오는 게 일반적이던데. 나는 촬영만 두 시간 가까이하고 있었다. 이게 맞나라는 생각을 그제야 했다. 참 빨리도 했다.
오후 시간에는 책상에 앉아서 책을 보고, 공부하는 영상을 담아보자 생각했다. 평소에는 그냥 맹물을 마시지만. 영상을 찍으니까 예쁜 잔에 따듯한 차를 만들어 가지고 와서 자리에 앉았다. 역시나 얼굴은 보이지 않게 각도를 설정하고서 할 일을 시작했다.
이번에도 고질병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 것은 이전에 나타난 것과는 또 다른 놈. 집중을 하면 입이 튀어나오는 병이었다.
아뿔싸. 내가 저렇게나 입을 쭉 내밀고서 책도 보고, 공부도 하는 줄 처음 알았다. 그동안 나와 함께 공부한 모든 이들은 대체, 나에게 왜 한마디 말도, 아니 반 마디 구절도 해주지 않은 것인가.
나는 인간이고, 인간은 본래 존엄을 타고 난다. 그래서 그 영상은 도저히 쓸 수가 없었다.
하루 종일 관객도 없고, 대본도 없고, 계획도 대책도 없는 원맨쇼를 마치고. 나는 완전히 지쳐 버렸다.
거실 바닥에 드러누워, 온종일 촬영한 영상을 봤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내 영상인데 나조차 재미가 없었다.
순간순간이 잘 담기지 않은,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느낌.
모든 영상을 확인하고서 유튜버는 나의 길이 아니라는 확신을 했다. 삼일천하도 되지 못했다. 작심삼일도 되지 못했다. 오직 그 하루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손은 느리고, 발은 더 느렸다. 재빠르게 순간을 포착하고 부지런히 영상에 담아내야 하는데 나는 그럴 재간이 없었다. 버거웠다.
‘아, 요즘 같은 시대에는 유튜버를 해야 하는 건데…’
애석하게도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가 되기에는 영 소질이 없는 듯했다.
책상 위 널브러져 있던 마인드맵으로 다시 돌아갔다. 가운데 동그라미에 적었던 ‘유튜브‘글자를 지워내고. 그 옆 가지에 그렸던 “나”로 눈길을 돌렸다. 내가 좋아하는 게 뭐지. 내가 잘하고, 편하게 할 수 있는 것.
“글쓰기.”
생각해 보면 나는 늘 글을 썼다. 유독 생각이 너무 많아서 어쩌지를 못하면 꼭 글을 썼다. 생각은 형체도 없는데 사람을 참 고단하게 한다. 그래서 눈앞에 글자로 그 형태를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나면 그제야 내 머리 밖으로 꺼내진 느낌이 들었다.
힘이 들면, 더 많이 썼다.
나는 계속 글을 쓰고 있었다. 늘 글을 썼다.
나는 어쩌면 영상보다는 글로 기록하는 게 더 맞는 사람일지 모르겠다.
계속 되뇌고, 들추고, 말을 고르고, 고치는 것이
더욱 편하고 좋다. 나처럼 긴 호흡을 가진 사람에게는 글로 기록하는 것이 맞는 일이겠다.
하루천하. 작심일일.
유튜버가 되겠다는 꿈을 살포시 포기하고서, 나는 글을 제대로 써보아야겠다는 마음을 골라 잡았다. 혼자서만 읽고, 혼자서만 간직하지 말고.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글을 써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