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포기는 의지와 상관없이 이뤄진다.
포기하기 싫어도 포기를 해야 할 때,
더욱 필요한 건 잠깐의 도망일지도 모르겠다.
2023년 12월의 어느 날.
집 앞에 있는 논밭을 따라 러닝을 하려고 나왔다. 열심히 뛰고 있는데 그날따라 유독 몸이 무겁게 느껴졌다.
다음 날 아침, 남편이 출근한 것도 보지 못하고 늦잠을 자버렸다. 찌뿌듯한 몸을 이끌어, 러닝을 하려고 나갔다가 그대로 편의점으로 향했다.
혹시 몰라서.
임신 테스트기를 하나 사서 집으로 왔다.
어떻게 하는지 방법도 잘 알지 못해서 허둥대다가 설명서를 읽고, 쓰인 대로 한 뒤에 잠시 기다렸다.
얼마 되지도 않아서 보이는 빨갛고 선명한 두 줄.
그때 나는 신기하고, 당황스럽고, 좋으면서, 무섭고, 확 긴장이 되는. 다양하면서도 꽤나 강렬한 감정을 느꼈다.
하루 종일 남편을 기다렸다. 어떻게 알려야 하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당장에 문자나 전화로 알릴 수도 있었지만, 직접 얼굴을 보고 말해 주고 싶어서 꾹 참았다.
점심을 먹었다는 문자를 받고서,
‘나 임신했나 봐!’라고 답장을 쓰려다 지웠다.
간신히 마음을 누르고 ‘맛있게 먹었어? 오후도 파이팅 해!‘라고 보냈다.
빨리 남편이 오길 간절히 바랐다. 그런데 그날은 하필 남편의 회식 날이었다. 하루는 유독 느릿느릿 흐르더니 겨우 밤이 되었다. 밤늦게 돌아온 남편은 나에게 미안하다며, 편의점에 들러 아이스크림을 잔뜩 사가지고 웃는 얼굴로 들어왔다.
하루 종일 기다려서 그랬나. 얼굴을 보는데 반가우면서도 와락 서운함이 몰려왔다. 줄 것이 있다며 퉁명스레 테스트기를 건넸다. 남편은 그대로 주저앉아서 한참을 그것만 쳐다보다가 눈물을 글썽이며 나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우리 어떡하지? 하하하하하! 아 어떡해!!“ 라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검은 봉지 속 아이스크림이 줄줄 녹는 줄도 모르고.
우리는 그렇게 기쁘고 행복한 순간을 잔뜩 누렸다.
주말이 되자마자, 서울에 있는 한 산부인과를 찾았다. 산부인과면 다 같은 줄로 알았는데, 그곳은 분만 병원이 아니란다. 다행히 임신 확인은 가능하다고 했다. 이렇게 뭘 모르는 내가 덜컥 임신을 해도 되나 싶었다.
초음파 검사를 하는데, 아기집이 아직은 보이지 않는다고 하셨다. 아주 초기라서, 그럴 수 있다고 했다. 확실히 임신인 것을 확인하려면 피검사를 하면 된다고 해서 바로 채혈을 했다.
나는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임신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미 너무 설레어버렸지만, 그럼에도, 아닐 수도 있다고. 너무 들뜨지 말자며 마음을 계속 다독였다.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남편과 서점에 갔다. 임신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어느새 나도 모르게 노랗고 엄청나게 두꺼운 ‘임신과 출산 대백과’를 집어 들고 있었다.
저녁 6시.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병원이었다.
“축하드립니다. 피검사 결과 임신이네요. 다음 주에 초음파 보러 다시 오세요.”
아, 임신이구나. 내가 임신이란 걸 했구나.
와, 내가 임신을 하다니!
신기하고, 얼떨떨한 기분에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그래도 실감이 잘 나지 않고, 심지어는 내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자꾸만 쉽게 잊어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임신하지 않은 채로 30년 가까이 살았는데, 당연한 일이었다. 관성은 역시나 정확하다.
임신한 걸 까먹었다가, 아차. 다시 떠올리고. 까먹었다, 떠올리기를 반복하다 보니 일주일이 금세 지났다. 우리는 다시 그 병원을 찾았다.
“음, 아기집으로 보이는 부분이 여기거든요? 모양이 살짝 뚜렷하진 않은데, 초기라서 그럴 수 있어요. 다음 주에 다시 한번 더 볼게요.”
초기면 모든 게 다 불확실하구나.
아기는 그렇게나 약하고 작은 상태구나.
이미 나는 뱃속에 생긴 무언가를 아기로 인식하고, 뭔지 모를 애정을 붙이고 있던 중이었다.
뽕! 하고 생겼으니까, 뽕! 하고 모습을 나타내 달라며
‘뽕뽕이’라는 이름도 붙여주었다.
그때만 해도, 모든 게 다 초기라서.
초기라서 그런 줄 알았다.
정말 진짜 그냥. 초기라서.
그다음 주에 갔을 때에도 아기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노란 책에서 보면 이제는 심장 소리도 들려야 할 시기라고 하던데.
선생님은 이번에는 사뭇 다른 표정으로 말을 했다.
“음. 심장 소리가 안 들리고, 아기가 보이지 않네요. 원래 지금 주수면 아기 모양이라도 보여야 하거든요. 일단 일주일 더 지켜보죠. 혹시 몰라요. 아직 초기라서 그럴 수 있어요.“
이번에도 초기라서라는 이유가 돌아왔다.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무언가가 잘못되었고, 저 의사는 지금 혹시 모를 어떤 희망을 빌려 나를 안심시키려 한다는 걸.
그런 희망이, 잠시 잠깐의 안심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혹시 모르는 일’은 대부분 ‘역시 그런 일’이 되던데. 더 이상은 기다리고 싶지 않았고, 기다릴 수도 없었다. 병원을 나오자마자 나는 다른 병원을 찾기 시작했다. 남편은 다음 주까지 기다려보자고 했지만, 나는 단호했다. 불안한 예감은 잘 틀리지 않는다고 믿기에.
사실 그때 나는 단호하다기보다는, 몹시 불안했다.
야간 진료를 한다는 병원을 찾았다. 제법 규모가 크고, 분만도 한다고 했다. 그 사실 하나에 마음이 잠시 놓였다. 그러자 혹시 모른다는 마음이 떠올랐다. 사람 마음은 그렇게도 간사하다.
병원 대기실에는 아무도 없고, 남편과 나 둘 뿐이었다. 나는 의사 선생님 앞에 앉자마자 다급히 현재 상황을 얘기했다.
초음파실에서 선생님은 차분히 말을 시작했다.
“아기로 보이는 것도 없고, 심장소리도 안 들리고. 상황이 좋지는 않네요. 여기 난황이라는 게 아기 밥 같은 건데, 크기가 큰 편이에요. 아기가 잘 크면 난황이 점점 작아져야 하거든요. 이미 주수가 많이 지났어요. 다음번에 올 때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오세요. 이맘때 아기들은 하루 이틀 사이에 확확 크기도 하거든요. 다음에 왔을 때도 아기가 안 보이면, 바로 수술합시다. 연초라 날짜 잡는 게 어려울 수 있으니 오늘 날짜 잡고 가세요. 아기가 그날 보이면 너무너무 땡큐고. 마음 편히 가지시고 삼일 후에 봅시다.“
선생님의 몇 마디가 끝나고, 우리의 시간도 끝났다.
아기는 없고, 다음번 방문에 수술을 하게 될지도 모르는다는. 잔인할 정도로 상황이 명확한데도 나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내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까먹지 않게 되었는데, 다시 임신하지 않은 상태로 돌아갈 수도 있다니. 아직 모르는 거라면서 수술 날짜를 잡으라니.
이게 다 무슨 말이지.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었다.
(수술할지도 모를) 병원이 서울이어서, 나만 혼자 친정에 남았다. 예약을 잡고 돌아온 나에게, 엄마는 그래도 다른 곳에 가서 한 번 더 보지 않겠느냐고 했다. “싫어, 그만할래.”라는 말을 못 했다. 그 말을 하면 온갖 감정이 쏟아져 나올 것 같았고, 내가 아기를 포기한 게 아닌데도 정말 그렇게 되는 것만 같았다.
이번에는. 정말 정말.
포기하기가 싫었다.
결국 맥없이 엄마를 따라나섰다. 그곳에는 오래된 상가 안의 작은 병원이 있었다.
“뭐 때문에 오셨어요?”라고 묻는 간호사 선생님의 말에 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게, 내가 여길 대체 왜 온 거지 싶었다.
“임신 초음파를 조금 더 자세히 보고 싶어서요.”
제대로 들었다면, 내가 한 말은 참 이상한 말이었다. 그 이상한 말로 대답을 대신하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그곳 원장님께는 솔직하게 내 상태를 말씀드렸다. 어차피 이틀 후에 수술인데, 그냥 온 거라고.
작고, 비교적 허름하기까지 한 진료실 침대에 누웠다. 이 병원은 초음파실도 따로 없네. 공연히 이런 데를 와서 괜한 고생만 하고 있네. 그런 생각을 하니 서럽고 화가 났다.
그런 나에게 원장님은 말했다.
“아파도 조금만 참아 볼래요? 천천히, 오래 봐볼게요.”
원장님은 정말 천천히, 오래오래 내 초음파를 봐주셨다. 그때는 생각했다. 여길 오길 잘했다고.
정말 열심히 초음파를 봐주시는 원장님을 보면서,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 아기와 들리지 않는 심장 소리를 확인하면서. 그제야 나는 나에게 찾아온 상황을 마주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초음파실을 나온 내게 원장님은 미안하고 아쉽다고 하셨고, 나는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했다.
정말로, 정말로 그분에게 감사했다.
임신을 하고 초음파실에 가면, 알아볼 수 있는 건 거의 없지만 계속해서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무언가 잘못됐다는 느낌일 경우에는 더욱 적확하다.
아, 정말 아기가 없구나. 나의 임신이 종료됐구나.
허탈함이 몰려왔다. 하지만 그 마음은 나보다도 더 간절히 초음파를 봐주는 어느 의사의 진심으로 위로받고, 달래졌다.
그리고 이제 나는 포기해야 했다.
우리 아기,
뽕뽕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