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저는 충남으로 떠납니다

by 연우

좋았던 때가 있으면 반드시 힘든 때가 온다. 안 그랬으면 좋겠는데, 그냥 맨날 맨날 좋기만 하면 좋겠는데. 짧게나마 살아본 인생은 그러지를 않았다.


결혼식을 마치고,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 남편과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나는 서울로, 남편은 충남으로.


우리는 근무지가 서로 다른 롱디 커플이었다. 멀리 떨어져 살면서 연애를 하고, 결혼 준비도 하고, 결혼식까지 잘 치렀지만 결혼 후까지 떨어져 있는 건 좀 다른 문제였다.


우리의 호시절이 점차 끝나가고 있었다.



당시 나는 직장에서 큰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고, 그 덕에 무척이나 바빴다. 눈코 뜰 사이 없다는 말이 매일 실감 났다. 그러던 중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까지 갔다. 신행지에서도 일을 한다고 남편에게 서운함을 안겼고, 몰래 화장실에 가서 마저 일을 하다 우선순위를 완전히 잘못 세워버린 스스로에게 실망을 느꼈더랬다.


담당하던 프로젝트는 시장 조사, 경쟁사 분석 등 초기 단계부터 디자인, 개발까지 내 손을 거치지 않은 게 없을 정도로 공을 많이 들인 일이었다. 개발물만 오류 없이 잘 만들어서 무사히 서비스를 오픈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아무도 시키지 않은 야근을 며칠씩 했다.


마음도 많이 끓이고, 정말이지 열과 성을 다 해 일했다.


그런데 내 마음 곳간이 텅텅 비어갔다. 그전에는 일을 할 때마다 잘 이뤄낸 데에 보람을 느끼고, 주위의 인정을 받는 것이 좋았는데. 그때마다 마음이 가득 차는 느낌이었는데. 그런 마음을 잃어 갔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주위 동료들이 하나 둘 퇴사를 했다.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경력에 비해 많은 책임을 안게 되었다. 암만 생각해도 자리에 잘못 앉은 것 같이 몸도 마음도 불편했지만, 이 또한 성장할 기회라고 생각하며 감사히 여기자 마음을 다잡았었다. 그런데 간신히 잡은 마음을 자꾸만 놓쳤다. 겨우 다시 잡아도 또다시 놓치기 일쑤였다.


그 밖에도 말 못 할 복잡다단한 상황이 많았다.


어디를 간들 힘들지 않은 곳이 있을까. 하지만 이러저러한 사정을 차치하더라도, 마음이 영 회복되지 않고 고갈되어만 가는 것은 큰 문제였다. 일을 하다 갑자기 이유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서 화장실에 들어앉아 한참 눈물을 쏟았다. 그렇게도 좋아하던 점심시간에는 집으로 달려가 십 분이라도 누워있다 나와야 했다. 그래야 오후를 멀쩡히 보낼 수가 있었다.


어느 날 밤, 잠이 도통 오지 않아서 겁도 없이 집 근처 산책로를 향했다. 가기 전 편의점에 들러 마실 거라도 사려는데, 문득 남편 생각이 났다.


이 편의점에 남편하고 자주 왔었는데. 둘이 이것저것 골라 담으면서 장난치고 그랬는데. 남편이 보고 싶었다. 남편도 없고, 딱히 사고 싶은 것도 없고 해서, 빈손으로 나왔다. 산책로를 터덜 터덜 걸었다. 생각이 좀 정리가 될까 해서 나온 거였는데. 오히려 생각이 내 옆에 흐르는 강물만큼이나 흘러넘쳐서 당황스러웠다.


이 생각을 하다가, 저 생각을 하다가, 어떤 생각도 갈무리하지 않은 채로, 하천 중간에 있는 돌다리를 건너는데.


“이런 데 건널 때는 정신을 빠짝 차려야 한다고. 특히 자기는! 특히 조심해야 돼! 웃지 말고, 장난치고 까불거리지 말고 조심히 건너와. 웃지 말고. 웃지 말라니까.”


돌 하나 넘을 때마다 잔소리를 열 마디씩 들었던 기억이 떠올라 웃었다. 웃지 말고 조심히 건너라 그랬는데, 또 남편 생각이 났다.


돌다리를 다 건너고, 다시 또 길을 걷다가 냅다 뜀박질을 했다. 답답한 속이 좀 풀리려나 싶어 뛴 거였는데. 숨만 더 가빠지고 별 소득이 없었다.


이미 시간은 너무 늦었고, 남편은 아까 아까 자러 갔고. 전화를 걸을 만한 곳도 없었다. 이제는 주변에 사람도 별로 없어서 드디어 겁이 조금씩 나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가려고 발길을 돌리는데 문득 남편이 알면 진짜 뭐라고 하겠다, 이건 잔소리 백 마디짜리다 싶었다. 갑자기 웃음이 또 났다. 그 생각을 하자 더 이상 겁이 안 났다.


그러다 깨달았다.


고갈되는 마음을 채울 수 있는 방법이 어디에 있는지를.


나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나도 모르는 새, 인생관이랄 것이 어엿하게 들어차 있었다.


그건 바로 가족.

가족이다.

그리고 새로운 나의 가족.


결혼 전 가족은 나에게 큰 둥지 같은 곳이었다. 나를 따듯하게 품어주고, 배불려 주는 곳. 어디서 얻어맞고 와도, 아무 말 않고 드러누워 푹 쉴 수 있는 곳. 어릴 적부터 가족은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나에게 정말 중요한 가치였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내 몸이 너무 커버려서, 둥지가 비좁아져서, 그곳을 떠나게 됐고.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나의 오랜 둥지는 여전히 그곳에 남아 있지만, 이제 내가 찾아야 할 곳은 그곳이 아닌 다른 곳이었다.


내가 남편을 시도 때도 없이 떠올리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 나의 가족이 된 그에게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결혼을 했으면 가족인데. 가족은 함께 있어야 하는 건데. 그러질 못해서 마음이 힘들었나 보다. 가장 중요한 일은 뒤로 한 채로, 여기저기에 마음과 기운을 쏟고 있어서 지쳐버렸나 보다.


커리어도 좋고, 돈도 좋지만. 나에게는 가족을 오롯하게 꾸리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었다. 그걸 그 밤에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새 가족이 있는 충남으로 떠나야겠다고 결심했다.


다음날, 여느 때와 똑같이 출근을 하고 내 자리에 앉았다. 막상 퇴사를 하려니 앞길이 막막했다. 이 정신없지만 무료한 일상에 돌멩이를 던져야 하는데. 돌멩이를 어디서 구해야 할지부터가 난감했다. 퇴사한 동료들을 보면 처리해야 할 서류도 많고, 정리해야 할 짐도 많던데. 내가 맡은 프로젝트는 또 어쩐다. 그 프로젝트는 세 번에 걸쳐 서비스 오픈을 할 만큼 공수가 큰 것이었다. 책임감도 나에게는 중요한 가치였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난감했다.


놀랍게도. 그날 내가 퇴사를 걱정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출근 후 5분이 전부였다. 그 외에의 시간에는 퇴사를 생각할 겨를 조차 없이 일을 했다. 그만큼이나 나는 정신없는 시간 속에 나를 담그고 있었다. 그렇게 또 몇 날 며칠을 공회전하듯 스스로를 소진시켰다.


이번 포기는 유독 오래 걸렸다.


나도 나이라는 걸 먹은 건가. 이제는 나의 일이 비단 내 일만은 아니게 된 탓이려나. 해가 갈수록 도망치거나 포기하는 일이 어려워지고 있었다. 망설임 하나 없이 일을 저지르던 건 다 옛말이 됐다. 이제는 그럴 수가 없다. 도망 하나 가려고 하면 더 많이 고민하고, 더 많이 망설여야 했다.


혼자 속을 끓이다가, 주위에 얘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남편에게 말하고, 양가 부모님들께도 말씀드렸다. 감사하게도 모두가 나의 뜻을 존중해 주셨다. 결국 나를 일으키는 건 나의 가족들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회사. 회사를 떠나는 일이니 회사에 꼭 말을 해야 하는데 당최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상사 앞에 앉아 떨어지지 않는 입을 억지로 벌려 아주 조그맣게, 떨리는 목소리로 퇴사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 퇴사를 하고 싶습니다. 이곳에서 많이 배웠고, 좋은 기회를 많이 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1차 오픈되는 것만 보고 바로 퇴사해도 될까요? “


“아니 왜, 이유는..?”


“하고 싶은 일이 생겼... 아니 그보다, 남편하고 같이 있고 싶어서요. 지금 그렇게 하는 게 저에게 필요한 것 같아요.”


그냥 냅다 이렇게 말해버렸다. 거짓말을 하려고 작정하고 들어갔는데, 실패했다. 연습도 했는데, 역시나 본심은 숨기기가 어려운 것이었다. 회사 입장에서는 퇴사 이유가 ‘남편이랑 살고 싶어서.’라고 말하는 사원이 참 맹랑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나를 꼭 좀 뽑아달라고 읍소하던 그 자리에서, 남편 있는 곳으로 떠나겠다고 선언을 했다.


나의 퇴사를 만류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이대로 가면 다시 일하기 힘들 거라고, 고생 많이 했는데 3차까지 오픈하는 것은 보고 가라고. 이대로 가면 우린 어떡하냐고. 여러 소리를 뒤로 한 채, 그렇게 나는 회사를 나왔다.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내가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었다. 이거 정말 책임감 없는 결정이라고, 너 참 이기적이라고 스스로에게 여러 차례 말했다. 그럼에도 나는 이번에도, 역시나, 다시 스스로에게 대답했다.


“나 진짜 할 만큼 했어. 나 진짜 잘했어. 이렇게 도망쳐도 괜찮을 거야. “


퇴사를 하던 날, 나를 꼭 안아주던 사람들의 따듯함을 아직 기억한다. 엘리베이터 앞까지 나와서 나를 배웅해 주던 사람들의 표정을 잊지 못한다. 나의 자리를 포기하고 멀리 도망을 치는 나에게 사람들은 응원을 얹어주었다. 많은 일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마지막 마무리를 잘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


그새 잔뜩 늘어버린 짐을 품에 가득 안고, 회사 건물을 나왔다. 무거움에 낑낑대는 내 머리 위로 비가 투두둑 떨어졌다. 무슨 드라마처럼.


그 비를 다 맞으면서 집으로 가는 내내 생각했다.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진심이에요. 이제 저는 아무런 미련 없이 떠납니다! 야호!“


조금만 젖었다면 찝찝했을 텐데, 옴팡 비에 다 젖어버리니 오히려 시원하고 상쾌했다.


무슨 일이든, 완전히, 모조리, 남김없이 해보아야 안다.

도망가도 좋을 때를.

포기해도 괜찮을 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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