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준비되셨습니다. 커튼 열겠습니다. “
커튼이 열리기 직전, 사방으로 나를 둘러싼 거울을 슬쩍 쳐다봤다. 그리고 재빨리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 내 모습을 마주 보기가 민망하고 힘이 들었다.
드레스를 입은 나.
아니다, 드레스에 겨우 올라탄 나.
(실제로 직원 분들의 도움을 받아 드레스 위로 올라타 듯이 착용했다.)
‘저게 뭐야?’
솔직한 나의 심정이었다. 옷은 정말 번쩍번쩍 화려했는데. 그 위에 올라탄 나는 예뻐 보이지가 않았다. 뭔지 모르게 드레스와도, 그 공간과도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었다.
드라마에서는 웨딩드레스 입은 여자가 커튼 뒤에 수줍게 서있으면 갑자기 화면이 느리게 움직이면서 주위가 환해지고, 모든 사람들이 그 아름다움에 감동받고 그러지 않던가.
그저 나는 드레스에 간신히 올라타 있는, 웨딩계의 이단아 그 자체였다.
‘나는 이런 게 어울리지가 않네. 이게 무슨 신부야.‘
그 와중에 플래너님과 남편은 나의 모습을 반가워하면서, 이 드레스는 어떻고 저 드레스는 어떻다며 진지하게 살펴주었다. 어떠한 준비도, 취향도, 겁도 없이 드레스에 몸을 던진 대가였을까. 웨딩계의 이단아는 단상 위에 서서 잔뜩 주눅이 들고 말았다.
드레스 샵은 모두 청담동에 있었다. 살면서 다녀본 적 없는 낯선 동네. 늘 말로만 듣던 그 청담동이었다. 말로만 들어서 그런지 온갖 편견과 선입견만을 그득히 안은 채, 이미 샵에 들어서면서부터 그곳 분위기에 기가 눌려 버렸다.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 내 돈 내가 쓰러 간 건데. 손님이면서도 전혀 당당하지 못했다. 필요한 요구도 하지 못하고, 어떤 자유의지도 없는 채로 드레스를 입혔다 벗겼다 했다. 날씬하지도 예쁘지도 않은 웨딩계의 이단아라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고급, 화려, 우아’가 덕지덕지 묻은 그곳이 그저 불편하기만 했다.
그렇게 첫 번째 샵에서 드레스를 몇 벌 입어보고, 두 번째 샵으로 갔다. 두 번째 샵에서도 이 드레스, 저 드레스를 입어 봤다. 그것도 나름 경험이 되었다고, 이전 샵에서보다는 긴장이 덜했다. 플래너님과 얘기했던 깔끔하고 단정한 느낌의 드레스가 더 많았다. 그날 바로 두 번째 샵으로 결정을 했다. 빠르게 결정이 되었다. 드레스에 대한 어떤 기대도 남아있지 않은 까닭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고민에 빠졌다. 웨딩계의 이단아, 이대로 결혼식장에 들어갈 것인가 하는 고민이었다. 본래 이단아라는 것이, 당연시되는 것들에 반기를 드는 것 아니겠나. 꼭 청담동에서 말하는 ‘신부’의 전형들만 결혼을 할 수 있는 건 아니겠지. 이참에 웨딩계의 혁명가로 거듭나볼까.
하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잔다르크가 될 깜냥은 아니었다. 여전히 내 속에서는 그럼에도, 나도, 예쁘고 날씬하고 아름다운 ‘그 신부들‘ 중 하나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래 10킬로 정도 살을 빼보자. 때 빼고, 살도 빼고, 광내서 예쁘게 드레스를 입자.
땅땅땅 목표가 생겼다.
목표가 생겼으니 응당 실행에 옮겨야 했다. 그날로 집 앞 헬스장을 등록했다. 피부관리샵도 예약했다. 7개월 정도의 시간이 있으니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때부터 나는 이단아를 벗어나, 그저 평범한 청담동 드레스가 어울리는 신부가 되기 위해 시간과 노력, 돈을 쓰기 시작했다.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하면 탈이 난다고 했던가. 그 누가 그런 말을 했나. 찾아가 말해주고 싶었다.
“정답! 탈이 납디다!”
생전 해본 적 없는 ‘미용 관리’라는 걸 한 번에 너무 많이 해댄 탓일까. 나는 점점 지쳐갔다. 하루하루 너무 바쁘고 정신이 없었다.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다가 가랑이가 찢어졌다는데, 나는 유연하지도 않다. 가랑이가 찢어지기는커녕 벌어지지도 않아서 뱁새도 못하고 시름시름 앓기만 했다.
하지만 이미 끊어둔 헬스장 이용권과 피부 관리샵 회원권이 남아있었다. 성실함과 자린고비 습성은 내가 그나마 갖고 있는 무기였기 때문에 돈이 아까워서라도 매일, 매주 꼬박꼬박 헬스장과 피부 관리샵을 방문했다.
꾸역꾸역 뭐라도 하다 보니 미세하게 달라지는 것이 보였다. 변화가 생기자 내 몸과 얼굴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나의 얼굴이 둥근지, 갸름한지, 체형은 또 어떤 편인지를 서서히 알게 되었다. 나를 그렇게까지 자세히 살핀 건 처음이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고. 너도 그렇다고 어느 시인이 그랬는데. 정말 나도 그랬다. 시간이 갈수록 내 모습을 더 자세히, 오래 보게 되었고 점점 정이 들어갔다. 정확히는, 스스로를 챙기고 돌보려고 노력하는 나의 모습이 마음에 들기 시작한 거다. 29년을 함께 했는데, 이제야 나를 제대로 알아가고, 나와 친해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와 친해지고 나니, 나는 나에게 참 많은 걸 알려주었다.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뭐가 잘 어울리고, 어울리지 않은지. 뭘 원하고, 뭘 피하고 싶은지.
그동안 관리라는 건 여유 있는 사람들이나 하는 사치 부리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운동을 하고, 좋은 음식을 만들어 먹고, 스스로를 가꾸는 시간들은 내가 나에게 해 주는 건강한 애정 표현이 되었다. 그 표현들은 어디 가지 않고 내 안에 차곡차곡 잘 담겨 갔다.
몇 달 후, 웨딩 촬영 때 입을 드레스를 고르러 샵을 다시 방문했다. 여전히 나는 그 화보 속의 마르고 우아한 신부의 모습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날은 주눅 들지 않고 거울 속의 나를 꼼꼼히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입고 싶은 드레스와 입고 싶지 않은 드레스를 분명히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또 몇 달 후, 정말 예식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였다. 본식 때 입을 드레스를 고르러 간 건데 나는 여전히 마른 신부는 아니었다. 하지만 거울 앞에서, 사람들 앞에서 건강하고 예쁘게 웃을 수 있었다. 또 나에게 딱 맞는 드레스를 야무지게 고를 수 있는 안목도 갖게 되었다.
어느 순간, 어쩌면 자연스럽게.
청담동 ‘그 신부‘가 되기를 포기했다.
예식 날 나를 보고, ‘신부가 참 듬직하고 튼튼하네.’라고 생각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마르고 호리호리한 신부의 모습을 포기한 대신, 거울 속의 내 모습을 오롯이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이제는 안다.
그것만으로 충분히 본전은 뽑은 셈이다.
사실 살도 빼기는 뺐다. 무려 7킬로나! 나로서는 대단한 일이다. 목표했던 10킬로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영 실패도 아니었다. 예식 당일 다행히 나는 예쁜 신부였다. 결혼 준비 중인데 너무나 걱정이 된다는 누군가가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전문가들의 손길은 예쁜 신부를 으레 보장해 주고도 남는다고. 나를 믿어도 좋다. 무조건이다.
그날 청담동 드레스를 입은 이단아, 아니 예쁜 신부의 손에는 ‘참 잘했어요!’ 도장이 있었다. 엄청 커다란 그 도장을 스스로에게 쾅 찍어 주고서, 나는 사뿐히 그러나 씩씩하게 버진 로드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