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를 활용할 능력(없음)

by 연우

드라마나 소설, 영화 같은 곳에서 가끔 이런 장면을 보았다. 어느 날 갑자기, 눈을 떴는데, 신분이나 정체가 바뀐 주인공. 너무나 달라진 상황에 정신을 못 차리고 좌충우돌하다가 사랑도 하고, 함정에도 빠지고, 결국에 승리하는. 뭐 이러저러한 이야기.


분명 나도 하루아침에 신분이 바뀌었다. 수험생이었다가 자발적으로 취준생이라는 직함으로 고쳐 달았다. 그런데 나에게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냥 어제랑 똑같은 하루일 뿐이었다. 여전히 직업은 없고 앞 길은 구만리보다 더 머얼리 뻗어 있는, 대한민국의 xxxxxx번째 청년. 차라리 시험을 준비했을 적에는 학생들 옆에서 나도 학생이라며 뭉그댈 수 있었는데. 취준생이라고 자칭하려니, 그냥 다른 게 백수가 아니구나 싶었다.


노트와 펜을 들고, 노트북을 펴고, 제법 진지하게 진로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1)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2) 내가 하고 싶은 것 , 3) 내가 할 수 있는 것 순서대로 생각을 해보았다. 여전히 나는 그게 뭐가 되었든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에, 잘할 수 있는 일을 골똘히 고민해 보았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딱히... 없음


예전에는 당연히 “영어” 혹은 “공부”라고 적었는데. 영어 시험을 관두고 나니 이제는 영어도, 공부도 잘한다고 말할 수 없겠다 생각했다.


그렇다면, 하고 싶은 것.

명료했다.

직업 만들기. 돈 벌기. 매일 출, 퇴근하는 규칙적인 삶 살기.


그런데 이 생각도 진로 탐색에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그래, 직업도 구하고, 돈도 벌어야지. 뭘로 돈 벌거냐고 그래서.”


그 질문은 도돌이표 같은 거였다. 결국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게 하는 도돌이표. 그래서 그 질문도 패스.


마지막 남은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것.

어이가 없게도. 내 노트에 적힌 건 결국.


영어, 공부, 노력


이것뿐이었다.


나는 잘하지는 못해도, 여전히 그런 것을 할 수는 있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걸 계속하되, 그것이 유리하게 쓰일 수 있는 곳이 어디일지 생각을 넓혀갔다.


첫 번째는 공무원 시험 준비였다. 수험 생활을 오래 했기 때문에 시험 종목을 바꾸면 어떨까 잠시 생각했다. 그런데, 노량진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어찌 됐든 그곳을 떠나 새 출발을 해보겠다고 책도 다 버렸는데, 다시 수험생이 되는 건 큰 환기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다음으로 생각한 것이 공기업이었다. 회사를 다녀보면 어떨까, 그런데 일반 사기업을 지원하기에는 소위 말하는 스펙도 전무하고, 29세라는 나이가 참 애매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서 스펙도 나이도 상관이 없다는 공기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필요한 자격증이 수두룩한데, 그중 나에게 가장 큰 좌절을 안긴 놈이 있었다.


컴퓨터 활용 능력.

줄여서 컴활.


컴활은 1급으로 따두는 것이 좋다고 해서, 교재도 사고 강의도 끊으며 나름 열의를 가지고 임했다. 공기업 취준생 1일 차부터 그렇게 산뜻한 마음으로 컴활 공부를 시작했다. 새 책을 펼치고, 처음 보는 강사님을 마주하니 진짜 새 출발을 한 것만 같았다.


근데 그 기분이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맨날 영어, 영어, 영어, 한 번씩 교육학만 하다가 갑자기 이공계 계열을 공부하려니 무척이나 신선했다. 그런데, 너무 신선하기만 했다. 며칠을 공부해도 매번 신선한, 신선한 경험을 했다.


볼수록 새롭기만 한 것이 머리에 남는 것이라고는 하나 없는 그런 신선한 경험을 말이다.


강사님이 하는 말이 도통 무슨 말인지를 몰랐다. 나에게는 영어보다도 더 이해하기 어려운 언어였다. 너무 오랫동안 한 우물만 파댔던 탓일까. 다른 능력은 모조리 퇴화한 걸까. 내가 그 유명한 컴맹이었나. 오만 가지 생각이 들었다. 오만 가지 생각을 하느라 또 강의를 놓치고, 쫓아가다 다시 또 당혹스러운 신선함을 마주하기 일쑤였다.


공부를 오래 했기 때문에, 지식과 능숙함이 점차 쌓여가는 감각을 잘 알고 있었다. 몇 날을 공부해도 아무런 감각이 없다. 이거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컴퓨터로는 그저 검색하고, 글 쓰고, 메신저로 수다나 떨어봤지. 갑자기 온갖 단축키와 이상한 외계어가 잔뜩 쓰여 있는 문제집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이건 무슨 맞지 않는 옷을 입은 정도도 아니고 옷이 아닌 걸 걸치고 있는 기분이었다.


처음부터 너무 난도 높은 걸 하면 금세 지쳐버릴 것 같아 잠시 다른 종목으로 눈을 돌렸다. KBS 한국어 능력 시험 문제집을 샀다. 강의도 찾아서 들었다. 나름 맞춤법과 띄어쓰기에 강하다고 생각했고, 국어 실력도 얼추 있다고 생각했는데 시험은 또 다른 차원이었다. 공부할 범위가 산더미고, 지엽적으로 꼼꼼하게 공부해야 높은 등급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주어진 시간은 2주 남짓. 마라톤 연습만 하다 갑자기 단거리 선수가 된 느낌이었다. 그래도 여차저차 자격증을 하나둘씩 따가며 서류 준비의 구색을 갖추어 가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다시 돌아 컴활이었다. 어이구 그놈의 컴활.


임용 고사는 문제 유형이 단답, 논술, 서술형이다. 그래서 임용 공부를 할 적에 객관식 시험이 정말 간절했었다. 객관식인 시험을 보라면 정말 단숨에 잘 풀어낼 것만 같았다. 컴활은 그렇게 노래를 하던 객관식 시험이고, 심지어 문제 은행식이라 정답은 빤히 정해져 있는데. 문제집에 나와있는 문제가 그대로 나오는 수준인데도 시험장에 앉아 있으면 정답이 도통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매번 낙방을 했다.


실기는커녕 필기조차 합격하지 못할 수가 있나. 개탄스럽기 그지없었다.


나는 굳이 따지자면 문과가 체질인 사람이 맞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까지 이공계 쪽에 소질이 없을 수 있단 말인가. 밸런스가 이렇게나 붕괴된 인간도 없겠다 싶었다.


그 와중에 컴활 시험은 접수하기도 어려웠다. 공부도 안되는데 접수하기도 어렵고, 간신히 접수해서 시험을 치러 가도 낙방. 매번 피 같은 접수비가 나가는 것도 눈물겨운, 속만 갑갑해지는 나날이었다.


그러던 와중, 공기업 공고가 뜰 때마다 지원서를 넣었다. 서류는 원래 대부분 합격을 시켜준다더니, 나에게도 필기시험을 볼 기회가 주어졌다. 자격증 준비만도 숨이 가빴는데, 필기시험공부까지 하려니 숨이 점점 모자랐다.


임용 고사를 준비하던 시절 나는 농부였다. 농부의 심정으로 일 년 농사를 착실히 지었고, 시험 당일 열매를 수확하려고 열렬히 애를 썼었다. 그런데 공기업 준비 과정은 뭐랄까. 패스트푸드점의 주방장 같은 느낌이었다. 주문이 들어오면 그 즉시 몸을 움직여야 한다. 빠르게, 빠르게 결과물을 내야 한다. 어떤 주문이 어디로 들어올지 미리 예측할 수가 없다. 일단 재료는 다 준비해 놓고 본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매상은 그날그날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이 마침맞은 비유인지는 모르겠으나, 두 시험을 모두 준비한 나의 소회는 그렇다.


나는 농사도, 햄버거 만들기에도 소질이 없는 듯하였다. 농사를 하기에는 뒷심이 부족하고, 햄버거를 만들자니 몸이 느리고 숨이 모자랐다.


누구한테든 맞지 않는 옷이란 건 없다고 생각했다. 누구든 자기가 집어든 옷감을 가지고 노력하기만 하면 된다고 믿었다. 이렇게 저렇게 오리고 기워서 결국에는 옷 같은 걸 만들어 입을 수도 있을 거라 믿었다. 이런저런 공부를 하며 인생 공부가 조금 되었나 보다. 생각이 바뀌었다. 각자의 몫으로 주어진 옷감이 어느 정도는 정해져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아무 옷감이나 막 잡아대면 안 되는 거라고.


이미 살면서 여러 차례 무언갈 그만둬봤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 직감이 발동했다. 그만 둘 때다. 도망칠 때다. 이 판도 내 판이 아니다. 도망가자.


컴퓨터를 활용할 능력 같은 것은 애초에 나에게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능력이 나에게 생길 줄로 알았다. 아니었다. 컴퓨터 앞에서 뚱땅거리며, 여러 번의 낙방을 맛본 후에나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내가 나를 세워놓고 요리조리 둘러봤을 때, 이놈이 잘할 수 있겠다, 까짓 거 해봄직하다 싶은 일들이 있다. 하지만 까놓고 열어보면 할 수 없는 일이었을

수 있다. 그건 그저 생각만 해서는 절대로 알 수가 없다. 진짜로 부딪히고, 손수 해보고, 끝까지 열어봐야 안다. 집어든 옷감을 가지고 내 옷을 만들 수 있을지는, 가위 들고 오려 보고, 바늘 들고 꿰매 보고 해야지만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컴활 문제집을 내던지고 도망쳐보니 알겠더라. 내 주제를 아는 것이 이렇게나 중요한 일인지를. 또 이렇게나 어려운 일인지를.


소크라테스가 왜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을 남겼는지 알게 됐다. 평생 동안 우리는 나 자신을 알아보다가 인생을 다 보낼 운명인 게다. 그는 일찌감치 그걸 알았나 보다. 가히 위대한 선인답다.


소크라테스의 명문장을 품에 안고, 나는 나 자신을 알기 위해 또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 나섰다. 슬슬 주위로부터 나를 염려하는 눈빛과 목소리가 전해지기 시작했다.


“너는 도대체 뭘 하려고 자꾸 하다가 말고, 하다가 말아? 뭐 하나 마무리짓는 게 없네.”


정확하게 해두고 싶었다. 나는 미완인 과제들을 껴안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여태 해왔던 모든 선택들은 이미 완전한 끝을 맺은 거였다.


그렇기 때문에 걱정 어린 주위의 시선과 평가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다. “너 자신을 알라.”는 그 선인의 말만을 곱씹고 곱씹었다. 나의 시선을 남들에게서 거두고 나에게로 돌리자, 드디어 내가 잘할 수 있고,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일을 찾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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