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아무개 되기

by 연우

인생을 그래프로 그려본다면. 나의 그래프에는 앞부분에서부터 벌써 두 개의 변곡점이 있다.


그 두 개의 점이 찍히기 전까지 나는 늘 당당하고, 주눅 들지 않고, 모르는 게 있어도 ‘이제부터 알면 되지!’하는 그런 아이였다. 저만 잘난 줄로 알고, 이 세상에 나와 대화가 통하는 초등학생은 없다고 생각했다. 저도 초등학생이면서 참 웃기는 애였다.


그때 친구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있다.

“야, 잘난 척 좀 하지마!”


‘지가 잘난 줄 안다.’는 소리를 듣는다면 대개 잘난 경우가 많다. 그 당시 나는 유난했고, 잘난 편이었다. 조막만한 동네에서 유난한데 잘난 척을 하고, 겁 없이 설치기까지 하는 아이는 쉽게 눈에 띄는 법이다.


눈에 너무 많이 띄었던 걸까. 두 개의 점이 콕, 콕 찍혀버렸다.


첫 번째 점은 초등학교 4학년 때.

반에 친구를 괴롭히던 애가 하나 있었다. 그 애를 비방하는 인터넷 카페가 있었다는데, 그걸 만들자고 주도한 인물이 나라고 했다. 물론 그 남자애가 미웠지만, 싫었지만, 그런 걸 주도한 일은 없다. 카페 가입자 목록에 내 이름도 없었는데, 다수결의 원칙에 의하여 나는 주도자로 지목되었다.


억울했다. 동생한테 말싸움을 지거나, 길 가다 자빠져서 무릎이 깨질 때 느끼던 억울함과는 차원이 다르게. 몹시도 억울했다.


반성문은 당연하고, 그 애한테 미안한 마음을 담아 편지를 써야 한단다. 우리 부모님도 자식을 잘못 키워서 미안하다고 사과해야 한단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 따로 없었다. 사람이 화가 나도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걸 그때 배웠다.


나의 부모는 종이를 앞에 두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에게 말했다.


“잘못하지 않아도 사과해야 할 때가 있다. 우리는 네가 그렇게 나쁜 아이가 아니란 걸 알고 있다. 그래서 그 애한테 사과하는 게 아무렇지 않다. 그러니까 너도 반성문 열심히 써라.“


잘못한 게 없어서 쓸 것도 없을 줄 알았는데, 반성문도 쓰고 편지도 썼다. 두 글의 장르는 소설이었다.


두 번째 점은 중학교 2학년 때.


유난하고, 당당하고, 잘 설치는 초등학생이 중학생이 되었다. 여전히 유난했지만, 더 이상 당당하지 않았다. 그래서 설치지도 않았다.


그러나 눈에는 계속 띄었다. 한 번도 줄이지 않은 치렁한 교복 치마가, 귀밑에 딱 달라붙은 머리가. 수업 시간에 졸지 않는 모습과 촘촘하고 단정하게 적어 놓은 손필기가. 나의 많은 것이 눈에 띄었다.


그러다 2학년 학생대표 선거에 출마하게 되었다. 보통 그런 건 또래에게 호감도 많이 받고, 인기가 많은 사람이나 하는 건데. 친구들의 응원과 지지가 있어야 하는 건데. 나는 그냥 선생님들 눈에 띄어서, 그들의 권유로 후보 등록을 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덜컥 내가 학생 대표로 당선됐다. 2학년 전교 부회장 자격으로 윗 학년의 회장, 부회장 언니들과 함께 전교 임원 회의에 참석했다.


그날의 안건은 두발 및 교복 규제 완화였다. 교장 선생님이 새로 오시는데, 거기에 발맞춰 교칙을 개정해 볼 수 있겠다는 얘기가 오갔다.


이제는 당당하지도, 설치지도 않지만 전교 부회장이 되었기 때문에 무슨 말이라도 해야겠다 생각했다. 말을 고르다가, 최대한 조심스럽게 한 마디를 뱉었다.


“저희가 제의를 하면 교칙이 바뀌나요?“


진심으로, 교칙이 정말 바뀌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한 말이었다.


그런데 그 말이,


“우리가 말해봤자 어차피 바꿔주지도 않을 거잖아요? 저는 지금도 괜찮은데요.“ 라고 들렸던 모양이다.


당시에는 분명하게 말하지 않은 내 탓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 보니 나는 아무 잘못이 없다. 스스로에게 미안하다.


와전은 어떻게 이뤄지는 걸까. 한 번도 줄이지 않은 치렁한 교복 치마가, 귀밑에 딱 달라붙은 머리가 문제였을까. 그런 차림을 하고 딴에는 신중하게 고른다고 고른 그 말이 문제였을까.


최종적으로 교칙이 개정되지 않는다는 소식이 공유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두발 자유를 반대한 나쁜 년 때문이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소문 속 나쁜 년은 바로 나였다: 그날부터 나는 불특정 다수에게 미움을 받기 시작했다. 그 미움은 날이 갈수록 예사롭지 않은 수준이 되었다.


당시에는 문자 메시지의 발신인 정보를 바꿀 수가 있었다. 한 날은 4444에게 문자를 받았고, 또 한 날은 18181818에게 문자를 받았다. 모두 나에게 ‘눈에 띄지 말라.’고 경고했다. ‘역시나, 나는 또 눈에 띄었구나. 그게 문제구나.’생각했다.


쉬는 시간, 교실로 나를 찾아오는 손님들이 꾸준히 있었다. 그들은 늘 잔뜩 화가 나 있었다. 너무 화가 나있었기 때문에 내가 어떤 말을 해도 듣지 못하는 듯했다.


화장실에 가서 변기에 앉아 있는데 머리 위로 물이 쏟아졌다. 내가 들어 선 곳이 샤워장도 아니었는데.


암튼.

그땐 그랬다.


연예인들이 소문과 악플에 시달리다 비관적인 선택을 하는 이유를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겠다 싶은 그런 날들이었다.


이미 두 번째 점이 콱 하고 찍히고 말았는데, 나에 대한 소문은 나도 모르는 새 흔적도 없이 잊혔다. 그 소문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모두 사라지고, 덜렁 나 하나 남아 있었다. 나는 그때도 여전히 나쁜 년 명찰을 손수 가슴에 달고 있었다. 이제는 더이상 아무도 나쁜 년을 기억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자, 안도감 그리고 허탈감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그날 나는 그 명찰을 내 가슴에서 떼어냈다.


두 개의 점은 그대로였다. 나는 중학교 3학년이 되었다. 고등학교 원서를 접수해야 했다. 정말 많이 고민했다. 집 근처 학교로 가서 계속 눈에 띄는 애로 살아야 할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 가서,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아무개로 살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조막만한 나의 동네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내가 아주 아주 먼 곳에 있는 고등학교를 선택한 이유다.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는 결국 내 슬픈 욕심을 챙겨 도망에 성공했다. 신나게,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유난함과 눈에 띄는 것을 포기하자, 행복한 아무개가 될 수 있었다. 3년을 매일같이 두 번씩 환승을 하면서도 마음이 좋았다.


도망친 그곳에는 학창 시절도 재밌을 수 있다는 사실과 나를 응원하고 지지해 주는 착한 친구들이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드디어 눈에 띄지 않는 그저 평범한 애가 되었다. 이름으로 불리지 않고, 번호로 불리는 게 좋았다.


열일곱, 낯선 동네, 낯선 학교에서 만난 친구들을 여태 내 옆에 붙들고 살고 있다. 이제는 시간이 많이 흘렀다. 힘들었던 학창 시절을 모두 합친 것보다 그 애들과 보낸 찬란한 시간이 곱절은 더 되고도 남는다.


아무개가 되려고 감행했던 나의 도망, 아니 도전은 그래서 성공적이다. 그 덕에 나는 완전히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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