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돼서 정확히 몇 살이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을 만큼 옛날 옛날, 문화 센터 발레 수업 시간에, 인생 처음으로 포기라는 걸 했다.
조각조각 쪼개진 기억은 대략 서너 개 정도이다.
핑크색 발레복, 하얀 스타킹, 뭘 하지도 않았는데 살짝 때가 탄 토슈즈. 그리고 동그랗게 머리를 말아 올린 나.
발레복은 예뻤고, 나는 그걸 입은 나를 더 예뻐했다.
커다란 거울 앞에서 스스로의 모습에 만족해하는 꼬마 애가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어린 나는 그런 애였다. 기도 잘 안 죽고, 겁도 없고, 할 말은 야무지게 하고, 못 할 말은 더 야무지게 하는. 그런 웃기고 당돌한 애였다. (지금은 전혀 아니다.)
애석하게도, 지금과는 다른 것이 성격뿐만은 아니었다. 당시에 나는 마른 체형이었다고 한다. 팔, 다리가 가늘고 길었단다. 예쁜 발레복이 어린 눈에도 잘 어울렸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그 애는 열심히 발레를 배워서 우아한 발레리나가 되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그런데 그 애가 미처 몰랐던 사실이 하나 있었다.
보통의 어린아이들은 유연하다는 것을 몰랐다. 그 애는 날 때부터 나이 답지 않은 뻣뻣함의 소유자였다. 다른 애들도 다 저만큼 뻣뻣한 줄로만 알았다. 다리가 쩍 쩍 벌어지는 앞, 뒤, 양 옆 또래들을 보며 생각했다. 나는 남다르구나. 그런데 이제 좀 아쉬운 쪽으로.
아니 이럴 거면 가늘고 길게나 태어나지 말지. 생긴 건 발레 잘할 것처럼 생겨 놓고는, 몸은 전혀 다른 말을 했다.
분명 지난 시간에 배운 건데. 양발을 살짝 바깥으로 벌리고 무릎을 구부리며 앉았다가, 일어났다... 를 해야 하는데 일단 양발이 벌린 채로는 몇 초도 버티지 못했다. 앉으려고만 하면 튕겨나가고, 튕겨나가고. 누가 뒤에서 다리를 팍 주저앉히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랬다.
“아휴, 안 되겠다. 너는 저기 바 잡고 다시 해보자.”
씁쓸이라는 단어는 몰랐어도 씁쓸했다. 어린아이 답지 않은 눈치도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발레리나는 못 되겠구나. 단박에 깨우쳤다.
다른 애들은 이미 이 동작을 마스터하고 백조처럼 나풀나풀 뛰어다니고 있었다. 나만 차가운 쇠기둥을 잡고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는 꼴이라니. 부아가 치밀었다. 아무리 봐도 여기서 내 발레복이 제일 예쁜데. 쟤들보다 내가 발레복이 훨 잘 어울리는데. 나만 이러고 있는 게 좀 서러웠다.
그날 집에 와서 엄마에게 말했다. 발레 그만 배우고 싶다고. 최초의 포기 선언이었다.
그날 이후 발레 수업을 간 기억은 없다. 고맙게도 나의 엄마는 자식을 객관적인 관점에서 볼 수 있었던 모양이다.
발레는 포기했는데 발레복은 포기가 안 됐다. 왜 그렇게 예뻐가지고 미련을 갖게 한단 말인가. 그래서 한동안 집에서 발레복을 입었다. 문화센터에서 도망쳐 나온 곳엔 집이라는 나만의 무대가 있었다. 가족들 앞에서 혹은 거울 앞에서, 발레라고 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간에 내가 할 수 있는 어떤 동작들을 선보이며 놀았다.
나의 첫 포기는 당돌하고 쿨한 거였다. ‘그래 나 발레 못함. 발레리나도 못 됨.’을 인정하는 또 다른 말이었다.
하지만, 내 발레복이 제일 예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