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 살던 집 근처에 고물상이 하나 있다. 그 앞을 그렇게나 많이 지나쳤는데도 그곳이 뭐 하는 곳인 줄을 몰랐다. 그런데 스물여덟의 내가 도망친 곳에 그 고물상이 있었다.
대학에 막 들어갔을 때만 해도, 언론인이 되고 싶었다.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보다 넓은 세상을 보고 살았으면 했다. 사회에 어떤 방식으로든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물 안 개구리 생활은 청산하고, 더 넓은 연못으로, 아니 이왕이면 계곡이나 바다로 나가겠다는 포부가 있었다. 그런데 그에 비해 나는 여전히 어리고, 좁은 시야를 갖고 있었다. 그릇이 참 작았다.
기자 준비를 한답시고 학원엘 가고, 사람들과 모여 공부 모임을 가졌다. 하지만 당시 내가 만난 사람들은 나의 자질, 지식, 잠재력 같은 것보다는 나의
외모와 배경에 더 관심을 가졌었다. 큰 실망을 느꼈다. 잠시 겪었던 현실에 지레 겁을 먹고, 기대와는 다른 언론계에 염증이 난다며 넣어 뒀던 발을 뺐다.
돌이켜 보면, 그때는 그게 나름의 최선이었겠지만, 조금만 더 지켜보고, 조금만 더 알아봤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다. 내가 만난 사람들이 이상했던 걸 수도 있으니까.
오랜 시간 품어온 나만의 꿈이었는데. 갑자기 장래 희망에 적을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러고 나서, 잠시 방황을 했다. 나름 어릴 때부터 챙겨 온 소중한 꿈이었기 때문에, 혼자 열심히 준비하고 노력해서 잘 되면 짜잔! 하고 펼쳐 보일 생각이었다. 이제는 그럴 게 없어진 거다. 막막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로 가게 된 선교지에서 새로운 꿈을 얻었다. 말갛고, 여리고, 빛나는 눈.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좋아하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아이들. 아이들이 정말 번쩍번쩍 예뻤다. 아이들에게 진심을 다 하는 것이 힘들지 않았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마음이 저절로 그렇게 움직였다. 그렇게 되는 것이 신기했다. 집으로 돌아와서 작심했다. 찬란한 아이들과 함께 하는 교사가 되어야겠다고. 사랑을 주는 교사가
되자고.
그날 이후 나는 임용고시 수험생이 되었다. 당시 나는 사범대에 재학 중이었기 때문에 같은 시험을 준비하는 친구들이 주변에 많았다. 언론인이 되겠다고 말도 없이 혼자 다른 길을 걸어가다가 슬쩍 돌아왔는데. 유능한 나의 친구들은 성실히 제 갈길을 가고 있었다. 그옆에 슬쩍 나도 껴들었다. 든든한 마음이 들었다. 이번에는 나도 잘 해내고 싶었다.
임용고시.
원래 정식 명칭은 임용고사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임용고시라고 부른다. 웬만한 고시 시험만큼이나 어렵고, 합격하기도 쉽지 않아서 그런가 보다. 그 시험을 세 번이나 치렀다. 쉽지만은 않았다. 정말 쉽지 않았다. 독하지 못하다며 스스로를 독하게 몰아세우기 일쑤였다. 그렇게 용을 썼으면 좀 잘했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
구구절절 사연을 읊을 것도 없다. 나는 세 번의 시험을 치렀지만 결국 한 번도 합격하지 못했다. 한 해에는 한 친구가, 그다음에는 다른 친구가, 또 그다음 해에는 다른 친구가 합격을 했다. 축하한다고, 먼저 가 있으라고, 나도 곧 따라가 보겠다고 했지만 결국 나는 그 길을 가지 못하고 포기했다.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나에게 그럴 만한 능력이 없었던 거다.
나는 영어 교사가 되려고 했다. 교사의 꿈을 품기 전부터 영어를 좋아했고, 잘하는 편이라 생각했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영어 교과를 선택했다. 그런데 세 번의 시험은 “너 그렇게 영어 잘하지 않는다.”라고, 계속해서 나에게 확인시켰다.
영어는 언어다. 언어는 머릿속 여러 작용을 나타내는 창 같은 거다. 영어가 외국 언어이기 때문에 외국인들의 머릿속, 사고방식, 논리를 장착해 습득해야 한다. 우리 한국인들의 그것과는 달라서 익히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우리나라에만 살던 한국인이 영어를 잘하게 되려면 어느 정도의 감각, 즉 행간을 읽는 눈치나, 한국인의 사고를 잠시 지운 채로 외국인의 사고 과정을 잘 받아들이는 능력이 필요하다.
나는 나에게 그런 감각도 있고, 곧잘 따라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매일매일 어제보다 더 많이 읽고, 쓰고, 외우고 하다 보면 어느 날엔 나도 그 길 끝에서 합격증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남들도 다 하는 합격을, 나만 못할 리가 없다는 오만한 생각도 꽤 자주 하면서 스스로를 달랬었다.
노력도 어느 순간에는 재능의 영역이 된다. 노력해도 안되더라는 말을 믿지 않게 됐다. 노력하는 것조차 힘에 겨울 때가 있었다. 합격하려면 이 정도는 필요하겠다며 정해둔 노력의 그릇이 있다고 하면, 그걸 가득 채우기에는 나의 재능이 많이 모자랐다.
암만 기를 써도,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계속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자 수험 생활을 그만하는 게 좋겠다는 결론이 났다. 승부욕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 보니 나는 정말 승부욕이 강한 사람이었다. 내가 선택했던 그 길 위에서 너무, 너무 잘하고 싶었나 보다. 그러질 못한다고 생각하자 단념이 되었다. 몸과 마음이 상할 정도로 애를 많이 썼는데, 단념하기까지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같이 공부했던 친구들은 모두 말했다. 한 번만 더 해보라고. 너는 진짜 분명히 될 거라고.
더 이상 노력할 수 없고, 더 나은 결과를 만들 수 없겠다 생각했다. 마지막 시험 성적표를 확인하던 날, 결국 나는 항복을 선언했다.
“이렇게 했는데도 안 되는 거면, 나는 그냥 안 되는 거다. 항복.“
그리고 그날, 갖고 있던 모든 책을 꺼내 모았다. 양이
꽤 되어서 아버지 차에 싣고 동생과 함께 고물상으로 갔다. 3년 동안 공부한 책을 모두 저울에 달자 100kg이 되었다. 100이라는 숫자가 꼭, 그동안 끌어안고 시름하던 내 마음의 무게처럼 느껴졌다.
책 100kg를 던져 버리고, 손을 탈탈 털었다. 기분 어떻냐고 동생이 물었다. 내 마음이 어떤지 가만 생각했는데, 아주 후련하지는 않았다. 책은 한 큐에 버릴 수 있어도, 감정까지 다 버릴 수 있는 건 아니었나보다.
고물상 주인아저씨는 요새 종잇값이 많이 올랐다면서 8천 원을 쥐어주셨다. 8천 원이라니. 고작 8천원. 허무해서 웃음이 났다. 3년 동안 내려놓지 못하고 여태 끌어왔는데. 그 모든 걸 한숨에 다 버릴 수가 있구나. 모든 걸 다 털어 내고 손에 남는 게 딱 8천 원이구나.
사실 고물상에 간 건 정신을 좀 차려 보려는 발악이었다. 실은 그리로 도망친 거다. 시험에 계속 떨어지는 내가 이해도 안 되고, 한심하고, 미웠다. 그러다 또 불쌍하고, 걱정되었다. 이 짓을 그만해야 하는 걸 알겠는데, 이 길은 내 길이 아니란 걸 인정해야겠는데 그게 잘 안 돼서. 책이라도 다 갖다 버리면 조금 받아들여지려나 싶어서 고물상을 찾은 거였다.
그렇게 도망친 그곳에서, 내려놓지 못하던 마음속 돌덩이를 쓰레기장에 던져 버리고, 8천 원을 받았다.
그 얄궃은 지폐 몇 장을 들고, 다시 내 방으로 돌아왔다.
어느 드라마의 대사처럼,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내가 애틋하고, 잘 되기를 바랐기 때문에. 8천 원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펜과 노트를 들었다. 그리고 또다시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을 찾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수험 생활이 끝난 거지, 내 인생이 끝난 건 아니었기에. 잘 비워 냈으니, 이제 또 채울 일만 남은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