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의 적정 몸무게 1

by 연우

2021년 끝자락. 코로나 19는 여전히 일상 속에 있었지만 그 기세가 아주 조금 잦아졌을 무렵이었다.


드디어 나는 취직을 했다. 맡은 직무는 영어 교육 콘텐츠 기획이었다. 입사 원서를 넣을 때만 해도, 아니 면접을 보고 나서도 내가 아는 거라곤 영어, 교육, 콘텐츠, 기획 각 단어의 뜻뿐이었다. 그런데도 기회를 얻어, 기획자로 일을 하게 된 거다.


코로나 사태 이후, 아이들이 집에서 학습할 수 있는 스마트 기기들이 많이 만들어지던 때였다. 나는 그 회사에서 영어를 가지고 할 수 있는 다양한 학습 콘텐츠를 기획하고, 개발된 작업물을 검수하는 등의 일을 맡았다.


결국 돌고 돌아 내가 안착한 곳에는 또다시.

영어, 교육, 그리고 직접 만날 수는 없지만 간접적으로나마 소통할 수 있는 아이들이 있었다.


채용되었다는 합격 전화를 받던 날, 신기하고 좋아서 전화 주신 분께 여러 차례 물었었다. 정말로, 내가, 합격을, 한 게 맞느냐고. 합격이라는 걸 꽤 오랜만에 했기 때문에 그 단어가 참 듣기 좋았고, 이제 드디어 나도 어엿한 사회인이 된다는 생각에 여러 감정이 마음속 깊이 들이치던 기억이 있다.


당시 내가 느낀 가장 큰 감정은 황송함이었다. 나를 뽑아주고, 나에게 기회를 준 회사에 정말 감사하다고, 진짜 진짜 감사하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더 이상 쓸 일이 없을 것 같던 교원 자격증도, 누군가에게는 실패로 비치던 오랜 수험 생활도, 회사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줬다.


벌써부터 회사에 절절매고, 빌빌 거리는 모습이 아쉽게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핸드폰을 부여잡고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나에게 "그게 그렇게 좋으냐고, 그렇게까지 신이 나냐고, " 물으셨다. 돌이켜 보면 부모 마음으로는 참 아까웠겠다. 그들에게는 내가 어느 드라마에 나오는 금지옥엽 딸 양금명이었다. 아니 그보다도 더 잘나고, 예쁜 딸이다. 그런 딸인데, 뭘 해도 잘할 딸인데, 굳이 그렇게 크지 않은 회사에 들어가는 게 못내 아쉬웠을 거다. 꼭 그리로 가야 하나 싶은데, 넙죽 가겠다고, 눈물겹게 송구해하며 납작 엎드려 들어가려는 꼴이 참 탐탁지 않았겠다 싶다.


부모님 앞에서는 조금 덜 좋아할걸. 하지만 그때는 진심으로 기뻤다. 내가 행복하면 그만이지, 어디서든지 신나게 잘하면, 그래서 내가 좋으면, 엄마 아빠도 좋으시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철이 없기도 없었지만 그만큼 성취에 목이 말라 있었다.


그렇게 입사를 하고, 한동안 호시절을 보냈다. 정말 호시절이었다. 매일 아침 내 자리에 앉으면 마음이 편안했었다. 정신없이 바쁠 때도, 마음 상하는 일도 많았지만 그럼에도 할 일을 끝내고 퇴근을 하면 마음이 가득 차는게 참 좋았다.


유능한 사수를 만나 열심히 일을 배웠다. 배운 대로 차근히 따라 하다 보니 점점 일이 손에 익었다. 편안함과 익숙함, 능숙함이 차곡차곡 쌓였다. 마음 맞는 동료들도 많이 만났다. 회사 생활하며 만난 사람들하고는 잘 지내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운이 좋게도 주위에 좋은 사람들이 참 많았다. 두고두고 감사할 일이다.


무엇보다 감사했던 건, 내 안에 잠자고 있던 효능감이 무럭무럭 자랐단 거다.


모든 기획이 그렇겠지만, 학습 콘텐츠는 사용자가 어린 학습자로 특정되기 때문에 기획 단계에서 많은 품이 든다. 재밌고, 쉽고, 예쁘게 만드는 것도 당연히 중요한데, 무엇보다 학습이 제대로 되도록 해야 했다. 그래서 교육학 이론을 다시 공부했다. 지긋지긋해서 쳐다보기도 싫을 줄 알았는데, 공부해서 남도 줄 수 있겠다 생각하니 즐거웠다. 그동안 공부한 것들이 수포가 된 줄로만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것 또한 감사할 일이었다.


그 감사한 시절들의 극치는.

바로 오랜 연인과의 결혼이었다.


당시 남자친구였던 남편은 이직에 성공했고, 나도 사회 초년생으로 착실히 살아가고 있었다. 우리에게도 코로나 시절은 너무나 암울했기 때문에, 그때는 꼭 빛이 드는 것 같았다. 그런 날이 우리에게도 왔다는 게 참 설레었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 두 사람의 새로운 시작도 열어보자는 약속을 자연스레 하게 되었다.


당시 신혼이던 회사 선배가 있었다. 내가 결혼을 준비한다고 하자, 이것저것 많은 도움을 주었다. 선배의 소개로 한 플래너님을 만났고, 마음이 잘 맞아서 그분과 함께 본격적인 결혼 준비를 시작했다.


결혼이라는 걸 대체 어떻게 하는 건가 싶었는데, 플래너님의 안내로 조금씩 가닥이 잡혀 갔다.


스. 드. 메.


스튜디오 웨딩 사진, 드레스, 메이크업(헤어)의 줄임말이란다. 굳이 왜 줄여서까지 붙여서 말하는가 했더니, 대한민국 결혼 문화의 핵심이었다. 플래너님이 들고 오신 수두룩한 업체 목록을 받아 들고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원래가 꾸밈 노동에 큰 관심이 없는 나의 눈에는 그 모든 게 다 똑같이 예쁘고, 똑같이 비싸 보였다.


결혼은 비단 가족 친구들 다 불러서, 딴-따다단 입장해서, 하객들과 사진 찍고, 밥 맛있게 먹은 후에 집으로 돌아오는 행사가 아니던가.


무슨 소리.

아니었다.


그것은 선택과 결정과 책임, 추가금 지불의 연속이었다. 실제로, 그것들을 체감상 한 300번 정도 한 후에야 결혼식이 모두 끝났다.


남편은 본인 것에만 취향이 어느 정도 있는 편이고, 나는 그런 것이 아주 없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스드메에 대한 취향이랄 게 없었다. 다행히 평소 둘이서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어서 조율이 금방 되었다.


스튜디오 사진은 유행을 타지 않았으면 해서 배경이 단조로운 인물 중심으로 선택했다. 메이크업과 헤어도 깔끔하고 단정한 느낌의 샵으로 골랐다.


자, 이제 문제는 스드메 중 하나 남은 드레스.


솔직한 말로, 나는 날씬한 체형이 아니다. 살집이 있는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 ‘결혼 준비’는 ‘다이어트 시작’과도 같은 말이었다. 드레스를 예쁜 걸로 하나 골라두고, 그것을 원동력 삼아 살을 좀 빼볼 참이었다.


샘플 사진을 보는데 모델들이 하나같이 다 말라있었다. 보라는 디자인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혼자 딴생각만 했다.


‘아니, 이렇게까지 말라야 한다고?’

‘그것보다, 그전에, 내가 이렇게까지 마를 수가 있다고?’

‘말라깽이만 결혼을 하나.’

’나 결혼은 할 수 있나?‘


머릿속으로 온갖 독백을 다 하고 있는데, 플래너님이 도움의 손길을 주셨다. 나의 외형적인 이미지, 분위기를 봤을 때 어울릴 만한 디자인을 서너 개 추려주신 거다. 후보군이 확 줄자, 조금씩 디테일에서의 차이가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이목구비가 진하고, 살집이 있기 때문에 너무 화려한 것보다는 단정하고 깔끔한 디자인이 좋겠다 싶었다. 그렇게 실크 드레스 맛집이라 불리는 드레스샵 두 군데 골랐다.


그리고 드레스샵을 방문한 날, 드레스를 입고, 커튼이 열리기 직전.


나는 딱 도망을 치고 싶었다.

이왕이면 커어다란 쥐구멍 같은 곳으로.

이전 05화컴퓨터를 활용할 능력(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