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순간이야말로 '어너더 월드'로 가던 시간
키나발루 산 정상이다. 무데뽀 정신으로 살던 시절이었다. 예약도 하지 않고, 무작정 키나발루 산에 간 후, 마침 펑크난 예약 자리가 있어서 나는 등반을 할 수 있었다. (예약을 하지 않으면 등반이 안된다.)
산장에서 일박하고, 일곱 명이던가? 세계 각지에서 혼자 온 등반객들과 함께 부지런히 기어 올라갔다. 중간의 산장에서 1박을 다시 했다. 한숨도 못잤다. 다음날 새벽, 헉헉거리며 올라갔다. 그 정도 경사야 북한산 백운대보다도 쉬웠지만 고산증 때문에 정신이 오락가락했다. 동남아에서 가장 높다는 산이었다.(해발 4,095미터)
간신히 올라갔을 때 해가 뜨고 있었다. 훗날 여행 사진을 보니 이때만큼 희열에 찬 순간이 없었다. 왜 그랬을까? 약간 혼이 빠진 상태였기 때문인 것 같다. 체력이 바닥나고, 정신이 혼미해질 때 시간이 사라지고, 어너더 월드로 간다. 일상에서는 쉽게 맛볼 수 없는 '그분'이 강림하는 순간.
어쩌면 내삶의 모든 행위가 그것을 찾아 헤맨 것인지도 몰라. (종교적으로만 해석하실 필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