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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탐구6-늦깎이 소설가의 고민

도대체 이 나이에 왜 소설을 쓰는 거에요?

by 작가 지상


(위의 사진은 10여년 전 사진이니 속지 마시라.)



남들은 은퇴할 나이인 만 66세에 즉 작년에, 첫 장편 소설 '무인카페'(문학수첩, 2024)를 얼떨결에 냈고, 올해에 두번째 소설, '가족인 줄 았는데, 사람이었어'(문학수첩, 2025)를 냈다. 물론, 시장에서의 반응은 미미하다. 당연하다. 첫 술에 배부르겠나? 아니, 나는 지금 정말 이 세계를 잘 모르고, 내가 어디쯤에 위치하고 있는지도,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른다. 간신히 걸음마를 뗀 기분인데.......문학 독자들의 평이야 기대할 입장도 아니고, 또 여행기 독자들은 소설 쪽에 흥미가 안 당길 수도 있고... 딩연히 문학계에서는 존재감도 없고... 책 내면 항상 출간 후휴증이 있어 왔지만, 소설 내고서는 더 하다. 휑한 황야나 사막에서...이제 어디로 가지?...하는 기분.


내가 30대 초반에 직장 그만 두고, 세상 떠돌겠다고 배낭 메던 때가 생각난다. 그때는 무슨 여행작가가 되겠다는 야무진 꿈도 없이, 그냥 히피처럼 살고 싶었고, 앞으로 인생이 어찌 되든 모르겠다는...그런 생각 뿐이었다. 그리고 30여년 동안 이런 길을 걷다보니 여행기, 에세이를 썼을 뿐이다.

그리고 이제 거기서 은퇴한 내가, 소설을 썼으니......그런데 내 가까운 가족들내가 이제 걸음마 떼고 비틀거리는 초보 소설가임을 깜빡 잊고, 책 많이 낸 나이든 (여행) 작가로 생각하면서 이런저런 비판, 충고를 한다. 고급 독자인 그들의 눈에 나의 '초보 작품'은 잘 읽히기는 해도, 어딘가 소설 작품으로서는 부족해보인다는 거다. 잘 읽히기는 하는데...요즘 소설처럼, 뭔가, 소설스럽고, 독특한 작가 세계가 없는 것 같고... 그냥 편안하게 자기 경험, 이야기를 풀어 놓은 것 같다는 것이다. 절반은 칭찬, 절반은 비판으로 다가온다.


소설은 좀 소설다워야 하는데...하는 말을 수긍한다. 나는 아직 넌픽션의 세계의 습관, 스타일을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런데 나는 소설답다는 말이 아직도 낯설다. 물론, 지금 형성된 어떤 프레임, 트렌드는 안다. 하지만 그것이 절대적인 것이 아님을 나는 그동안의 인류 문화사를 죽 보는 가운데 알게 되었다. 그 시대의 산물일 뿐이다. 전통적으로 인간은 소리, 이야기, 노래..한국에서는 판소리, 가요 등으로 이어져 왔고, 소설은 '근대의 산물'이다. 그리고 근대의 산물은 계속 사조가 변해왔고, 지금도 변해가고 있다. 문체, 스타일, 메시지 등등... 이 근대의 산물과 변화는 무시할 수도 없고, 또 집착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것을 어떻게 수용하고, 나에게 맞춰갈까는 내 몫인데...내가 아는 게 별로 없으니 고민 되는 거지. 어쨌든 나는 문학외적인 관점에서도 전체를 보면서, 나를 돌아보는데... 이제 걸음마 떼고 쓰러질까, 말까 .. 하는 아기일 뿐이다.


그런데 아기에게 ... 온갖 것을 요구하면 되나? 이게, 다 나이 든 죄다. 나이 들면, 뭐든지 다 원숙하게 잘 할 줄 아는 것 같다. 그런게 어디 있나? 초보가 되면 다 어리숙한 거다.


어제는 suno를 이용해서 노래 가사 쓰고, 노래를 만들었더니...아내는 나에게 또 뭐가 부족하고...이런 식이다. ㅎㅎ. 아니...나로서는 이런 걸 누구에게 배우지 않고 스스로 해보았다는 것이 '큰 일'이어서 자랑좀 했더니...이런 반응이다. 그러다, 나중에 아내가 하는 말


"당신은 뭐든지 잘 할 것 같은 느낌을 주는데, 부족해 보이니까 그런 거지."


나, 참...내가 컴퓨터 얼마나 못하는데...솔직히 60대 후반에, 소설을 쓰고, 인공지능과 친해지려고 이런저런 것을 시도하는 것 자체가, 나로서는 꽤나 힘든 일이다. 누구에게도 배우지 않은 채, 혼자서.....하지만, 시장이나 세상은 냉정할 것이다. 그런 사정 보아주나? 그냥 작품, 노래 갖고 평가하지. 무시무시한 경쟁 사회다. 세상은 한 개인의 사정을 보아주지 않는다. 그거 무섭고 싫으면 하질 말아야 한다. 그런데 나는 한다. 깨지고, 욕먹으면서도 한다. 그래야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기에 그렇다.


물론, 아내에게 미리 깨지는 게 더 낫다.


요즘 한국 작가들의 소설과 시를 주로 보고 있다. 재미있다. 베테랑 작가들의 작품은 역시 다르다. 문학성과 상품성을 함께 갖추고 있고, 죽죽 빨려들게 한다. 20년 , 30, 40년의 내공이 어디 가겠나? 책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그것을 보면서, 넌픽션이란 여행기, 에세이 세계에 그 세월을 바친 나로서는 엄청난 격차를 느끼게 된다. 이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다만, 나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기에 하는 것인데...


돌이켜보면 나에게 소설 세게는 60년대, 70년대, 80년대다. 이 시절에 발표된 소설을 많이 읽으면서 성장했다. 거기까지다. 물론 1990년대 나온 소설도 종종 읽었지만, 이때는 내가 늘 해외여행하며 들락날락하던 시절이어서 깊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니, 나의 글에 대한 체험은 40년 전, 50년 전, 60년 전에 머물러 있다. 이러니 되겠나? 현재 독자들을 상대로 하는 것인데...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 게 있다. 그래서 다 은퇴라는 게 있는 거다. 아무리 한때 날렸던 소설가들도 70이 다가오면 은퇴하고, 80이 되면 타계하는데...나는 어쩌자고 이제 시작을 하면서...오락가락 하나? 이게 할 일인가? 그런데 왜 하려고 하지?


남의 책을 읽으면서 늘 그런 생각을 한다. 이렇게 잘 쓰는 사람들이 많은데 내가 왜 지금 와서....소설 쓴다고 이러지? 계속 묻게 된다. 무슨 인정을 받고 싶어서?...젊을 때라면 모르겠다. 지금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들고, 온몸이 아파 죽겠는데...무슨 부귀 영화를 누리자고...그렇게 과욕 부리다가 인생 망치지...그리고 여행기, 에세이 26권 내면서 독자들 사랑도 한 때 많이 받았다. 그래서 감사하고...또 시간 지나가면 다 잊혀진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안다. 제행무상...


그런데도, 여전히 뭔가를 쓰고, 심지어는 ai 이용해서 노래를 만들어 보고, 또 뭔가 새로운 게 나오면 또 해보려고 한다... 왜? 생각해보니 할 게 없는 거다. 공원에 앉아 햇볕을 쬐고, 카페 구석에 앉아 커피를 마셔도...변방으로 밀려난 사람들은 공허하고 초라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내가 그리 초라하지 않고, 쓸모없는 인간처럼 여겨지지 않는 이유는 '내가, 늘, 뭔가,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를 떠나서...


사람 사는 이치가 비슷하다. 먹고, 싸는 거다. 남의 것을 읽고, 자기 것을 표현하는 것...그거가 비슷하다. 이것을 원할하게 하면, 그런대로 살아갈 수 있다. 그런데 먹는 것 부실하고, 싸는 것 못 싸면 병 난다. 정신도 비슷한 것 같다. 혼자 있어도 뭔가를 읽고, 쓰면...나름 바쁘다. 그리고 배우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면 생기가 돈다. 그걸 안하면 아무리 사회활동 많이 해도 공허한 것이고...


사람은, 특히 현대 사회는, 죽을 때까지 뭔가를 해야만 살 수 있는 것 같다. 돈을 못 벌어도 그렇다. 그래야 무기력증에서 빠져 나오게 된다. 내가 요즘 관절염, 허리, 지금은 어깨, 등 통증을 겪으면서 뼈저리게 느끼는 게 있다. 어떤 자세든, 한 자세로 오래 있으면 탈이 난다는 것. 계속 적절하게 변화를 주면서 움직여줘야 건강하다는 것.


정신도 마찬가지다. 한 자세, 하나의 가치, 태도에 집착하고, 그것이 너무 오래 가면 굳는다. 그럼 정신병이 생기는 거다. 치매....계속 새로운 환경에 접하면서, 뭔가를 해야지...활성화 된다. 그것이 번잡한 인간 관계 맺고, 바쁘게 산다는 것이 아니다. 나에겐 그런 것이 오히려 '굳어진 관습, 관계'다. 그걸 벗어나 독고다이로...외로운 늑대로...거리를 어슬렁거리나, 벤치에 앉아 있거나, 책을 읽고, 생각하는 것이 '나의 스타일'이다. 그런데, 이제 라이프 스타일도 더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나저나 소설이나 시를 읽는다는 것은 '다른 세계' 여행을 하는 것이고, 소설을 쓴다는 것은 '다른 세계'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것이다. 테크닉, 기법, 방향은...아직 잘 모르겠다. 일단 그 세계 속으로 들어가서, 또 헤매면서, 더듬어 가면서...터득하는 거지. 나만의 기법, 세계가 존재할 수 있는 건지...없는 건지...그런 것도 모르겠다. 뭘, 아는 게 많고, 경험한 게 많아야지...생각을 하지. 지금은 아무 생각없다. .


그러니까,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인생 경험 들이밀면서 무슨 결론 내거나, 교훈적인 이야기할 수도 없다. 그거 나이들면 생기는 고질병이다...늘 결론을 내고, 자기 스스로에게, 혹은 남에게 훈계질 하는 태도...지금 이글에도 그런 것이 좀 있을 수도 있는데...에전에 비해서...그런 기운이 많이 빠져가고 있다.


그냥, 나는 초보 중의 초보고, 내 한몸, 한 마음 끌고 가는 것만 해도 힘들다. 남에게, 세상에 신경 쓸 여력도 없어졌다. 며칠 동안 팔과 등이 아프니까, 잠도 못자고...뱃속까지 미식거렸다. 근육통도 만만한 게 아니다.


요즘에 나는 저기 다른 세계에서 뭐가 오는 것을 잡아내는 기분으로 쓰다 보니, 사실 글 그 자체보다도...도대체 이 세계, 혹은 이데아의 세계, 인간, 의식, 무의식...그리고 인간들이 모여사는 사회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안고 산다. 몸이 종종 아프니까, 더 그렇다. 내 인생, 마무리 잘 해야 하는데...하는 기분으로.


그러니까 일단, 나에게 글은 내 인생 잘 마무리 하고싶다는 표현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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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브런치는 소설가 지상, 여행작가 이지상의 블로그입니다.

문학수첩에서 작년에 '무인 카페(2024)' 올해 '가족인 줄 알았는데 사람이었어'(2025)를 출간했습니다.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46889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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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인 줄 알았는데, 사람이었어 - 예스24


“우리를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낯선 체온에 몸을 기대는 시간,가족이 아닌 ‘사람’과 함께하는 순간들첫 소설 《무인카페》를 통해 소외된 개인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아내 사라져 가는 유대를 회복하고자 했던 지상 작가의 두 번째 장편소설 《가족인 줄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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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인 줄 알았는데, 사람이었어 : 알라딘


첫 소설 《무인카페》를 통해 소외된 개인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아내 사라져 가는 유대를 회복하고자 했던 지상 작가의 두 번째 장편소설. 30여 년간 여행작가로 활동하며 장소를 넘어 그곳에 사는 사람과 그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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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인 줄 알았는데, 사람이었어 | 지상 - 교보문고


가족인 줄 알았는데, 사람이었어 | 우리를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낯선 체온에 몸을 기대는 시간, 가족이 아닌 ‘사람’과 함께하는 순간들첫 소설 《무인카페》를 통해 소외된 개인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아내 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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