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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아바초코송이 Aug 09. 2024

타인에게 친절해지는 법 -2

홍콩에 살면서 감사함을 배운 방법

한국에 살 때, 집 앞 지하철역에는 항상 전단지를 나눠주는 아주머니들이 많이 계셨다. 끈적거리는 여름이건 눈에 발이 푹푹 빠지는 겨울이건 전단지를 나눠주는 분들은 매 계절 있었다.


그럴 때면 입시에, 그 뒤에는 더욱 커져만 가는 인생의 숙제들에 치인다는 변명을 내세워 다소 짜증스러운 얼굴로 차갑게 지나치곤 했다.


그렇게 낯선 땅 홍콩에 왔고,

외국인과 연애를 시작했다.


한국보다 훨씬 더 따뜻한 동남아의 어느 나라에서 온 남자친구는 내가 전에 만났던 그 누구보다도 마음이 따뜻했다. 홍콩에 1년도 안 되었을 때, 그와 길을 걷는데 어떤 할머니가 전단지를 나눠주고 계셨다.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게 이곳에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잰걸음으로 지나치고 할머니를 못 본 사람 취급했다. 대부분의 전단지는 10퍼센트 할인 쿠폰이 붙어있는 식당 홍보 전단지이다. 나 또한 그냥 지나치려던 찰나, 남자친구 C군은 내 앞으로 팔을 쭉 내밀어 할머니의 전단지를 받고 살짝 목례까지 하더라.


"너는 이걸 항상 받아? 바쁘면 어떡해?"
"이거 받는데 몇 초나 걸린다고. 이 분들은 이거 한 장 한 장 주는 걸로 돈을 벌텐데."


그 말이 나에게는 너무 충격적이었다. 더운 날씨에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면서 전단지를 한 장이라도 더 나눠주려고 뻗은 손이 안쓰럽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정신없는 몽콕 거리를 지나가면서 보이는 전단지들을 다 받고 나면 어느새 손에 5~6개가 들려있는데 그게 그렇게 귀찮아 보일 수가 없었다.


사실 받고 버리면 그만인데, 쓸데없이 까칠함으로 무장하고 있었던 내가 한심했다.

동시에, 저렇게 한 푼 두 푼 모아 더럽게 비싼 홍콩 물가에서 살아남으실 분들을 생각하며 내 월급은 나에게는 쥐꼬리만 하게 느껴지지만 저분들의 몇십 배일지도 모르는데 왜 그렇게 힘든 "척"을 하느냐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사실 우리 모두 그렇지 않은가 - 모두가 힘들지만 나보다 더 힘든 그 누군가가 항상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 시간이 아무리 소중하더라도 그 몇 초, 몇 분을 나누는 건 정말 별 것이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행복과 불행이라는 것은 내가 보는 관점에 따라 많이 달라진다. 내가 좋아하는 커피를 느긋하게 마실 시간과 돈이 있고, 어떤 커피를 마실지 선택할 수 있는 맑은 정신이 있으며, 향기로운 커피 향과 어울리는 파란 하늘이 내 머리 위에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지 않은가?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저녁을 먹었다. 인당 2만 2천 원짜리 연어초밥과 연어샐러드다. 홍콩의 살인적인 물가에 살아남을 수 있음에 감사한다.
흐르는 강물과 같이, 때로는 이어지고 때로는 갈라지는 형태로 연재를 할 예정이니 저의 구독자가 되어 꾸준히 읽어보시는 건 어떠신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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