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자가 없던 조직에서 PM으로 성장하며 배운 것들.
입사했을 때 우리 조직에는
기획자라는 직무 자체가 없었습니다.
회사는 오랫동안 SI/SM 업체로 일해 왔습니다.
고객사가 주는 요구사항을 빠르게 처리하는 것이 최우선이었고,
무엇을 왜 만드는지에 대한 논의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주요 제품에는 수많은 레거시가 쌓여 있었습니다.
고객사의 요청에 따라 급하게 붙인 기능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얽혔고,
언젠가부터는 아무도 전체 구조를 선명히 설명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PM 선배님들께서는 훨씬 더 다양한 경험과 깊이 있는 인사이트를 가지고 계시겠지만,
저도 지난 몇 년간 조직 안에서 PM으로 일하며
작은 배움을 쌓아왔습니다.
오늘은 그 과정을 기록으로 남겨보고 싶어 이 글을 씁니다.
입사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조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파악하는 것이었습니다.
업무의 흐름과 과거의 히스토리를 최대한 빨리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이 부분은 저의 작은 강점이기도 합니다.
어떤 환경에 있든 금방 적응하고
내가 해야 할 일을 찾아내는 편이니까요.
이렇게 몇 가지 프로젝트를 시도했지만,
대부분 중간에 멈추고 말았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기획자가 없는 조직에서 기획자 중심으로 움직이는 프로젝트가
자연스럽게 굴러가기는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목표도, 공감대도 충분히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일단 해보자”로만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관점을 바꿔
조직이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다시 생각했습니다.
회사는 업력 20년이 넘은 곳이었고,
주요 고객층이 점점 줄어드는 상황을 위기로 느끼고 있었습니다.
성장기를 지나
쇠퇴기에 접어든 회사였기에
새로운 먹거리를 찾는 것이 절실했습니다.
이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신청접수 플랫폼 ARA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기존에는 고객사 맞춤형으로 접수 시스템을 구축해왔는데,
저는 이걸 한 단계 더 확장해
일반 사용자가 직접 폼을 만들고 관리할 수 있는 SaaS 모델로 전환해보자고 제안했습니다.
우리의 노하우를 살리면서도
새로운 시장을 열어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작은 프로젝트 팀이 꾸려졌습니다.
기획자 1명, 개발자 2명, 디자이너 1명.
몇 가지 가설을 세우고 작은 MVP를 함께 만들어갔습니다.
아무리 조직에 기획자가 없고
기존의 관성과 레거시가 단단히 자리 잡고 있어도,
일이 되게끔 하려는 사람이 있으면 조금씩 진척이 생긴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특히 이 과정에서
함께 일하는 개발자와 디자이너가 각자의 목표를 찾고
공감할 수 있도록 대화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저 혼자만의 동기만으로는
프로젝트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여러 번 느꼈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 생각해봅니다.
그때 제 이야기에 공감해주고
함께 목표를 나눠준 동료들이 있었기에
이 작은 시도가 진짜로 일이 되게끔 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 점이 고맙고, 앞으로도 잊지 않으려 합니다.
아직도 저는 완벽한 기획자는 아니지만,
이 과정을 거치며 한 가지는 분명히 느꼈습니다.
PM이 하는 일은 결국, 어떻게든 일이 되게끔 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