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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숙 Nov 07. 2024

<홍까오량 가족>의 배경지  산둥성 가오미현

모옌(莫言)-201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홍까오량 가족>의 배경지

산둥성(山东省) 가오미현(县)     


중국의 프란츠 카프카 혹은 윌리엄 포크너로 불리는 모옌(莫言, Mo Yan)은 지난 2012년 <개구리>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개구리> 중국어판


원래 중국계 프랑스인 가오싱젠 작가가 2000년 <영혼의 산(Soul Mountain, 원제: 灵山)>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으나 그는 프랑스로 망명하였기에 모옌이 최초의 중국인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되었다.      


<영혼의 산>은 작가가 중국을 여행하면서 경험한 자아 탐색과 인간 존재에 대한 성찰을 다룬 소설로, 중국 전통 문학과 현대 문학의 기법을 결합하여 깊이 있는 철학적 주제를 탐구하고 있다.

     

<영혼의 산> 책


2012년의 노벨문학상은 한국도 관심이 집중되었다. 일본의 무라카미 하루키는 수상자 예측에서 줄곧 1위를 달렸으나 고배를 마셨고 한국 역시 고은 시인의 수상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중국의 모옌에게 노벨문학상이 주어지면서 한·중·일 3국 가운데 유일하게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한 국가가 됐다.      


그로부터 12년이 흘러 정말 다행스럽게도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해 한국의 위상을 널리 떨쳤다. 문학을 하는 사람으로 진심으로 고맙고 감사하다.


노벨위원회는 모옌을 “환상적 사실주의로 중국의 구전 전통을 결합해 사회적 비판을 더한 작품을 써온 작가”로 평가했다.     


모옌의 작품은 중국의 정치, 문화, 역사에 대한 깊은 비판과 탐구를 담고 있어 전 세계 독자들에게 중국 사회의 복잡성을 보여주는 창으로 여겨진다.


또한 그의 문학은 중국 현대사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면서도 인간에 대한 이해와 애정을 담고 있다.          


작가 소개

모옌은 1955년 중국 산둥성 가오미현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관모예(管谟业)이며, ‘모옌(莫言)’이라는 필명은 '말을 하지 않는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노벨문학상을 받는 모옌 작가


어린 시절 모옌은 가난한 농촌 마을에서 자라며 중국 정부의 강력한 검열과 통제 속에 살아야 했고, 부모로부터 항상 “말조심하라”는 말을 들어왔다. 그의 어머니는 말이 많으면 불운할 것이라고 늘 걱정했다.      


어느 날 그는 학교에서 입이 큰 류합마라는 선생의 별명을 ‘류하마’라고 지었다. 사실 ‘하마’라는 별명은 그가 지은 것도 아니었으나 모옌은 누명을 쓰고 학교에서 퇴학당했다. 그의 나이 12살이었다.    


학교를 나온 모옌은 농사를 짓다가 목화 가공 공장에 들어갔다. 그는 공장 생활을 하면서 자신은 출세할 수 없다고 절망했다. 가난하고 학벌 없는 사람이 출세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은 바로 입대였다.      


1976년 그는 인민해방군에 입대하면서 트럭을 모는 운전병을 희망했다. 그러나 운전병이 북경에서 오는 바람에 운전을 배울 행운은 따르지 않았다.     


그는 군대 생활을 하면서 문학에 눈을 떴다. 이후 해방군 예술단과대학에 입학해서 1986년 문학과를 졸업했고 중국 문과의 최고봉인 베이징사범대학과 루쉰 문학창작원에서 문학 석사학위를 따냈다.      


모옌은 1981년 격월간지 <연지(蓮池)>에 단편소설 <봄밤에 내리는 소나기(春夜雨霏霏)>로 데뷔했다.      


1984년에는  단편소설 <황금색 홍당무(金色的紅蘿蔔)>가 평단의 좋은 반응을 얻으며 주목받아야 할 작가로 손꼽혔다.      


노벨문학상을 받기 이전에도 그는 잘 나가는 작가였다.


2007년에는 중국 문학평론가들이 뽑은 중국 최고작가 1위에 선정됐으며 프랑스 루얼 파타이아 문학상, 이탈리아 노니로 문학상, 프랑스 예술문화훈장, 홍콩 아시아문학상, 일본 후쿠오카 아시아 문화 대상 등을 받았다.


2011년에는 중국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마오둔(茅盾) 문학상을 수상했고, 같은 해 우리나라 만해대상 문학 부문을 수상했다.


후일 그는 필명을 지을 때 ‘모옌’이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물론 말을 조심하라는 부모님의 바람도 있었지만, ‘말을 하지 않는다’라는 ‘모옌’의 뜻은 표현의 자유가 제한된 중국 사회에서 작가로서의 신념을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모옌은 농촌의 생활과 역사를 바탕으로 독특한 문학적 세계를 구축했다.


그의 작품은 주로 중국 농촌 사회의 모습, 특히 농민들이 겪는 어려움과 변화하는 사회의 모습을 다루고 있으며, 때때로 초현실적인 기법을 동원해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독특한 서사를 만들어내고 있다.     


대표작으로 <홍까오량 가족>(홍고량 가족, 1987), <술의 나라>, <개구리> 등이 있다. 이중 <홍까오량 가족>은 장이머우(張藝謀) 감독에 의해 <붉은 수수밭>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었다.      


모옌 책


그 외에도 <티엔탕 마늘종 노래(天堂蒜S之歌)>(1988), <열세 걸음(十三步)>,  <풀을 먹는 가족(食草家族)>(1993), <풍유비둔(豊乳肥臀)>(1995), <탄샹싱(檀香刑)>(2001), <사십일포>(2003), <생사피로(生死疲勞)>(2006) 등이 있고, <환락>, <생화를 품은 여인>, <사부님은 갈수록 유머러스해진다>, <그네 틀의 흰둥이>, <메마른 강>, <엄지수갑> 등의 중단편 소설이 있다.     



모옌의 책


모옌의 작품은 대부분 그의 고향인 산둥성 가오미현을 배경으로 하며, 가난한 농촌에서 벌어지는 가족사와 고난을 다루는 경우가 많다.      


노벨문학상 수상 당시의 반응

2012년, 모옌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자 중국 내외에서 많은 찬사와 비판이 동시에 쏟아졌다.


중국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모옌을 많은 사람이 자랑스러워했으나, 일부에서는 그가 체제 순응적이라며 비판하기도 했다.      


특히 그는 수상 소감에서 정치적 이슈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피하면서 중국 정부와 대립하는 작가들과 다른 행보를 보여 논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모옌은 “작가의 역할은 정치적 논쟁을 촉발하기보다는 작품으로 사회를 비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작품들

모옌은 어린 시절 가난과 배고픔을 경험했고, 특히 문화 대혁명 시기에 학교를 그만두고 농장에서 일해야 했다.


이러한 경험은 그의 작품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농민의 삶과 가난, 억압된 사회에서의 고통을 진정성 있게 묘사할 수 있는 원천이 되었다.


또한 군 생활을 하며 다양한 사회 경험을 쌓은 것도 그의 작품에 큰 영감을 주었다. 군 생활 중 그는 독서를 통해 자기 성찰과 학습을 이어가며 작가로서 성장했다.     


노벨상 이후 말조심에 대한 역설적 상황

노벨문학상 수상 후 모옌은 인터뷰에서 “진정한 작가라면 자기 목소리를 숨기지 않고 표현해야 한다”라고 밝혔지만, 중국에서 직접적인 정치적 발언을 피하려는 태도로 보여 논란이 되었다.


일부 언론과 작가들은 그가 중국 정부와 거리를 두지 않는다고 비판했으나, 모옌은 그의 작품이 이미 사회적 비판을 담고 있음을 강조하며 작가의 책임을 지켜나갔다.      


‘모옌’이라는 이름을 통해 더 많은 이야기를 전달하면서도, 그의 삶은 중국 작가로서 균형을 잡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모옌의 이러한 이야기는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배경이 되며, 작품 속 주제와 캐릭터에 작가의 철학과 경험이 어떻게 녹아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홍까오량 가족> 핵심 플롯

모옌(莫言)의 소설 <홍까오량 가족>(Red Sorghum, 红高粱家族)은 중국 산둥(山东) 지방의 가난한 농촌 마을을 배경으로 가족, 사랑, 폭력, 그리고 저항을 그려낸 작품이다.


이 소설은 주인공의 가족사를 중심으로 펼쳐지며, 중국의 전통과 역사의 변화 속에서 고통과 생존을 이어가는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모옌 생가


구술 형식

소설은 주인공의 후손인 화자가 과거 이야기를 회상하며 들려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를 통해 가족의 역사뿐만 아니라 당시 중국 사회의 현실과 일본 침략기의 고난을 서술한다.     


주요 인물과 사건

이야기의 중심에는 주인공의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있다. 할머니는 원치 않는 결혼으로 인해 할아버지를 만나게 되지만, 두 사람은 독특한 애정 관계를 형성한다. 할아버지는 용감하고 반항적인 인물로 일본군과 맞서 싸우며, 이는 작품의 주된 갈등 요소로 작용한다.     


까오량(붉은 수수)의 상징성

붉은 수수는 중국 대륙의 강인함과 저항의 상징으로 묘사된다. 소설 속 붉은 수수는 이들의 생존과 투쟁의 배경이자, 민족적 상징으로 등장한다.     


붉은 수수밭


전쟁과 폭력의 묘사

일본군의 잔혹한 점령 과정에서 이 가족이 겪는 고통과 끔찍한 폭력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모옌은 전쟁의 잔인함과 이를 견뎌내는 인간의 강인함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모옌의 작품은 중국의 농촌 풍경과 전통문화를 사실적으로 재현함과 동시에, 인간의 감정과 고통을 깊이 있게 탐구하여 독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고 있다.     


<홍까오량 가족> 줄거리

소설은 주인공 다이펑롄과 유잔아오의 삶을 중심으로 다섯 부분으로 나뉘어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러나 이 소설은 서술 시점이 복잡해서 그리 쉽게 읽히는 소설은 아니다.  때로는 장면의 묘사가 너무 자세하고 잔인하여 몇 장을 그냥 넘기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

   

왼쪽은 <홍까오량 가족> 한국판, 오른쪽은 중국판

1부 붉은 수수밭

2부 고량주

3부 개의 길

4부 수수 장례

5부 기이한 죽음     


이 소설은 1920~30년대 중국의 혼란기 속에서 일본군의 침략과 전통 농민들의 삶을 그리고 있다.

      

모옌은 처음부터 장편을 쓴 것이 아니라 1986년 1부 <붉은 수수밭>을 먼저 발표하였다. 그런데 이 단편이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자, 나머지 2부에서 5부까지의 소설을 발표하고 차례대로 묶어서 <붉은 수수밭 가족>이라는 완성된 형태로 출간하였다.     


소설은 주인공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할머니 다이펑롄은 가난한 농촌인 산동성 까오미현 둥베이향에서 가장 아름다웠을 뿐만 아니라 작고 귀여운 발을 가졌다. 그런데 그녀는 고작 검은 노새 한 마리를 받고 문둥병 환자인 단 씨에게 팔려간다.      


다이펑롄이 시집가는 날, 가마를 들었던 사람 중에 위잔아오라는 청년이 있었다. 위잔아오는 건장하고 패기 넘치는 젊은이였다.

      

<붉은 수수밭> 여주인공 궁리


붉은 수수밭이 끝없이 이어진 길을 걷던 가마는 산적을 만나게 되고 위잔아오는 그 무리를 뒤쫓아가 납치된 다이펑롄을 구한다. 이 일을 계기로 그들 둘 사이에는 호감이 싹튼다.      


단 씨와의 첫날밤, 닭발처럼 갈라진 괴물 손이 어두컴컴한 베일 뒤에서 튀어나오자 다이펑롄은 소리를 지르며 날카로운 가위를 집어 든다. 그날 밤 다이펑롄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다.          


중국에는 시집간 처녀가 첫날밤을 치른 후 친정으로 돌아가 사흘 동안 지내고 오는 풍습이 있었다. 다이펑롄이 친정으로 돌아가는 날, 위잔아오는 가마를 타고 가는 다이펑롄 일행을 습격해 그녀를 납치한다. 눈부신 햇살이 내리쬐는 붉은 수수밭에 누워 두 사람은 사랑을 나눈다.  

    

<붉은 수수밭> 영화 스틸


3일이 지난 후 다이펑롄은 시댁으로 다시 돌아왔으나 시아버지와 남편이 누군가에 의해 살해되어 마을의 연못이 피로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다이펑롄은 소환되어 조사를 받지만, 곧 풀려나고 이 사건은 미제사건으로 남는다. 화자인 나는 이 살해범이 할아버지 위잔아오라고 확신한다.

    

붉은 수수밭 영화 스틸


주인 단 씨가 죽자 양조장 식구들은 떠나려고 짐을 꾸리고 양조장을 물려받은 다이펑롄은 그들을 붙잡는다. 다이펑롄은 라워한이라는 충직한 일꾼의 도움을 받으며 양조장을 경영해 나간다.     


어느 날 위잔아오가 나타나 다이펑롄의 일꾼이 된다. 위잔아오의 출현으로 다이펑롄을 여러 모로 도왔던 라워한은 양조장을 떠난다. 위잔아오는 곧 그녀의 안방을 차지하고 두 사람 사이에서 아들 더우관이 태어난다. 후일 더우관의 아들이 바로 이 소설의 화자인 ‘나’이다.     


“가족이란 피와 뼈가 이어지는 끈이다. 어떤 고난 속에서도 끊어질 수 없는 유일한 줄기이다.”(본문 중에서)     


얼마 후 위잔아오는 롄얼이라는 첩을 들이면서 다이펑롄의 속을 뒤집는다. 위진아오는 두 여자 사이를 중재하며 옆 마을에 롄얼의 집을 얻어주고 두 집 살림을 한다.     


세월은 흘러 그로부터 9년 후, 평화로운 마을에 일본군이 등장한다.


일본군은 롄얼이 사는 마을에 쳐들어와 그녀를 끔찍하게 성폭행하고 어린 딸을 살해한다. 몸과 마음이 참혹하게 망가진 롄얼은 곧 사망하는데 이 일을 계기로 위잔아오는 항일운동에 투신하게 된다.


붉은 수수밭


한여름인 7월, 일본군은 도로를 만든다며 마을의 수수밭을 베어버린다. 이후 항일 게릴라로 활약하던 라오한이 잡힌다. 라오한은 일본군에 의해 산 채로 가죽이 벗겨지고 수수밭은 피로 물든다.     


위잔아오는 마을 사람들을 독려하여 일본군에 맞설 계획을 세운다. 그는 마을의 전통과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며, 일본군의 잔인한 만행을 막아내려 한다. 그러나 전쟁은 이들 가족과 마을 사람들에게 끊임없는 고통을 안겨준다.     


“그들은 황량한 땅 위에서 피와 땀을 흘리며 생존을 위한 끈질긴 투쟁을 이어갔다.”(본문 중에서)     


술도가에서는 홍까오량(붉은 수수)으로 만든 술을 생산하는데, 붉은 수수는 마을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붉은 수수는 가족의 생계와 연결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마을의 저항정신을 상징하는 상징물이기도 하다.

 

붉은 수수로 만든 술, 고량주


일본군과의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면서 붉은 수수밭은 수차례 불에 타고 다시 자란다.


수많은 희생을 치르면서도 붉은 수수밭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위잔아오와 마을 사람들의 모습은 중국 농민들의 강인한 생명력과 저항 의지를 상징한다.

     

“홍까오량 밭은 우리의 희망이자 삶이다. 그것은 피로 물든 대지의 얼굴이며, 우리의 모든 것이다.”(본문 중에서)     


위잔아오와 마을 사람들은 마침내 일본군에 맞서 직접적인 저항을 결심하고, 일종의 게릴라전을 벌인다. 이 과정에서 많은 희생이 따르지만, 마을 사람들은 굴하지 않고 저항을 이어간다. 그러나 이들의 운명은 결국 전쟁의 흐름 속에 휘말리며 비극적으로 향해간다.     


당시 그 지역 항일투쟁 전선에는 국민당의 렁 부대, 공산당의 장 부대가 서로 견제하며 활동하고 있었다. 위잔아오는 어디에도 가담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활동을 펼친다.      


어느 날 렁의 정보로 일본군 고위 장교를 태운 차량이 일대를 지나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 위잔아오는 아들 더우관과 부하들을 이끌고 매복했다가 일본군을 공격한다.


일본군 소장을 살해하기는 했으나 도와준다고 약속했던 렁의 배신으로 지원은 받지 못했다. 위잔아오는 부하들을 모두 잃었고 하필이면 그 순간 새참을 가져오던 다이펑롄은 일본군의 총에 맞아 죽는다.


일본군 소장이 살해되자 일본군의 복수극이 시작되고 대규모 병력으로 마을을 에워싸 주민을 학살한다. 이 전투에서 위잔아오와 더우관은 간신히 목숨을 건진다.


가장 잔인한 장면은 일본군의 포위 공격을 받아 쑥대밭이 된 마을에서 사람들의 시체를 들개 떼로부터 지켜내는 장면이다.


계속되는 전쟁으로 들개 떼는 엄청나게 불어나 떼 지어 몰려다니며 사람의 시체를 뜯어먹는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개를 잡아서 먹는다. 개가 사람을 먹고 사람은 개를 먹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전쟁은 사람을 괴물로 만들기도 하고, 동시에 인간다운 존재로 돌아오게도 한다.”(본문 중에서)     


위잔아오는 아내의 장례식을 치르려고 하는데 장례식날 공산당의 장 부대가 공격해 온다. 두 집단은 혈투를 벌이고, 마침 국민당의 렁 부대가 쳐들어와 위잔아오와 장은 모두 포로로 잡힌다.      


때마침 일본군이 쳐들어오자 렁 부대는 응전하고 포로로 잡혀있던 공산당 부대도 합세해 전투를 시작한다.      


사랑과 가족의 연대

다이펑롄과 위잔아오의 관계는 단순한 사랑을 넘어서, 그들이 속한 가족과 마을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연대로 발전한다. 가족의 연대감은 소설에서 일본군과 맞서는 저항 정신의 기반이 된다.     


전통과 혁명

모옌은 이 소설을 통해 중국 전통 사회와 변화하는 혁명적 사회 간의 충돌을 묘사하고 있다. 다이펑롄과 위잔아오의 관계는 구습을 벗어난 혁명적인 결합이자 새로운 사회를 향한 변화의 상징으로 해석될 수 있다.     


<홍까오량 가족>은 다양한 주제를 통해 중국 민중들의 강인함과 역사적 비극을 묵직하게 다루고 있다. 모옌은 이 작품을 통해 중국 농민들의 삶과 투쟁을 사실적이고도 환상적으로 묘사하여 독자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했다.          


모옌의 주요 작품과 특징

<홍까오량 가족(红高粱家族)>(1986년)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1920~1930년대 일본 침략기에 고향인 산둥성을 배경으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 작품은 중국의 항일 전쟁 시기를 다루며 농민들의 강인한 생명력과 가족, 혈연의 유대를 그려내고 있다.      


이야기는 대대로 내려오는 가족과 그들이 기른 붉은 수수로 빚은 술, 전통 의식을 통해 전통과 혁명 사이의 갈등을 표현하고 있다.

     

이 소설은 장이머우 감독의 영화 <붉은 수수밭>으로 만들어져 큰 인기를 끌었고, 모옌을 국제적으로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술의 나라(酒国)>(1993년)

중국 사회의 부정부패와 권력 구조를 풍자적으로 묘사한 작품으로, <술의 나라>라는 상징적 장소를 배경으로 다양한 사건과 음모가 펼쳐진다.


이 작품에서 모옌은 초현실주의적 기법과 현실의 풍자를 결합하여 사회적 문제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독특한 서사와 인물들이 등장하며, 술이 권력과 부패의 상징으로 사용되는 등 모옌 특유의 상징성과 비판 의식이 두드러지는 소설이다.     


<풍유비둔(丰乳肥臀)>(1995년)

이 작품은 중국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서사 대작으로, 산둥 지방에서 성장한 한 여성과 그 가족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소설의 주인공은 모옌의 어머니를 모델로 삼고 있다. 중국의 농촌에서 여성이 겪는 삶의 고통과 인내를 중심으로, 모계 사회와 어머니의 존재가 중요한 주제로 부각된다.


<풍유비둔> 책

중국 사회에서 억압받고 희생되는 인물들이 생생하게 그려지며, 현실주의적 접근과 역사적 맥락을 통해 현대 중국의 변화를 비판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모옌의 작품들은 중국 사회의 현실을 다룰 뿐만 아니라 인간의 본질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하며, 복합적인 서사와 상징으로 독자들에게 큰 여운을 남기고 있다.     


<인생은 고달파(生死疲劳)>(2006년)

농촌에서 환생한 주인공을 통해 중국의 사회 변화와 농민들의 삶을 비판적으로 바라본 작품이다. 이 소설에서 모옌은 특유의 환상적 리얼리즘을 통해 독특한 이야기 구조를 선보인다.

    

<인생은 고달파> 책


<개구리()>(2009년)

2011년 마오쩌둥의 산아제한 정책을 배경으로 한 <개구리>는 농촌에서 산부인과 의사로 일하는 주인공이 국가의 정책을 시행하며 겪는 딜레마와 갈등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개인의 삶이 사회 정책의 변화와 맞물리면서 겪는 고통과 희생을 다루며, 생명과 선택, 인간성에 대한 깊은 고찰을 담고 있다.

     

<개구리> 책

이 작품은 2011년 중국의 문학상인 마오둔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인간과 국가 사이의 관계,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모옌은 <개구리>로 201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모옌의 문학적 특징

모옌의 작품은 환상적 리얼리즘과 현실적 비판이 결합된 독특한 문체가 특징이다. 그의 글은 때로는 거칠고 충격적이기도 하지만, 농촌 사회의 현실을 사실과 풍자적으로 그려내며, 중국의 사회적 문제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다.      


또한 모옌은 중국의 역사적 배경과 사회적 혼란을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표현함으로써, 개개인의 고통과 역경을 묵직하게 전달한다.     


모옌은 중국 내에서 정치적 이슈를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는 중립적인 작가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중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와 현대사의 아픔을 직간접적으로 반영하고 있어 독자들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모옌의 가족 이야기

어머니

가난한 농촌에서 자란 모옌은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곤 했다.      


특히 어머니는 모옌의 삶과 문학적 영감의 중요한 인물이었으며, 그의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강인한 여성의 원형이 되었다.     


모옌은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 매우 존경심을 가지고 있고, 그녀를 통해 강한 생명력과 인내심을 배웠다. 어머니는 전통적인 농촌 여성으로, 가난 속에서도 강한 생활력을 보여주었다.      


모옌은 어머니가 농촌의 여성들이 겪는 어려움 속에서도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으며, 이 경험은 그의 대표작 <풍유비둔(丰乳肥臀)> 속 여성 주인공의 모델이 되었다.      


이 작품은 어머니 세대의 고난과 가족을 위해 헌신한 농촌 여성을 기리는 작품으로, 어머니와의 유대와 감사가 담겨 있다.     


아버지

모옌의 아버지는 가난한 환경에서도 자녀들에게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모옌의 필명 ‘말을 하지 않는다’라는 의미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어린 시절 문화 대혁명의 혼란 속에서 말을 삼가고 조심해야 했던 시기를 반영한 것으로, 이는 아버지가 늘 강조했던 “조심해야 한다”라는 교육에서 나온 것이다.     


형제자매와 성장 배경

모옌은 형제자매와 함께 자라면서, 모두 농사를 도와야 할 정도로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다. 그 때문에 어려서부터 농촌 생활의 고단함과 함께 가족 간의 의존과 갈등을 경험했다.


모옌은 자신의 경험을 작품에 녹여냈고, 이러한 배경 덕분에 그의 작품에는 농민들의 현실과 사회적 갈등이 더욱 사실적으로 드러나 있다.     


가족과 관련된 에피소드

모옌은 한 인터뷰에서 어머니가 생전에 자신이 쓴 소설을 끝까지 이해하지 못했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문학 작품에 등장하는 어두운 이야기나 과장된 표현이 농촌 출신의 어머니에게는 낯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들이 글을 통해 성공하고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꼈으며, 항상 그를 응원해 주었다.      


모옌의 부인과 자녀

모옌의 가정사는 비교적 알려진 바가 없다. 모옌은 가족, 특히 부인과 자녀에 대한 사생활을 공개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모옌 부부는 가오미현의 한 아파트에서 외손녀와 함께 살고 있다. 부인의 이름은 두친란(杜芹蘭), 두 사람은 모옌의 등단(1981년) 전인 1979년 친구의 소개로 만나 결혼했다. 부인 두 씨도 모옌이 입대 전에 다니던 면화공장에서 일했다.      


모옌 부부는 친한(親韓) 인사이기도 하다. 모옌은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해 문인들과 교류하고 있다. 두 씨도 서울을 방문했다.      


모옌의 부인은 모옌이 작가로 성장하는 동안 내조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두 사람은 결혼 후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모옌이 작품을 쓰는 동안 부인은 가정의 경제를 책임지며 그를 지원했다.


이는 모옌이 경제적 어려움과 출판의 불확실성 속에서도 문학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준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모옌에게는 딸이 한 명 있으며, 그녀 또한 아버지의 작가적 재능을 이어받아 관샤오메이(管笑梅)라는 필명으로 작가 활동을 하고 있다.


그녀는 아버지와는 다른 장르와 스타일로 소설을 쓰고 있지만, 아버지의 문학적 재능을 인정받아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다.     


모옌의 가족은 그가 문학적 성취를 이루기까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헌신적으로 그를 지지한 사람들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모옌은 가족을 미디어에 공개하거나 작품의 소재로 삼는 것을 지양하고 있으며, 가족의 일상생활을 문학적 활동과는 별개로 보호하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영화 <붉은 수수밭>

모옌의 <홍까오량 가족>은 한국에서는 <붉은 수수밭>으로 더 유명하다.


<붉은 수수밭> 영화 포스터


영화는 전 5편의 연작 소설 가운데 <붉은 수수밭>과 <고량주> 2편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이 영화는 중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감독, 장이머우에 의해 영화화되고 궁리가 주연을 맡아 평단과 대중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붉은 수수밭>은 1988년 베를린 영화제 금곰상, 몬트리올 영화제 특별상, 이탈리아 듀브린 영화제 최우수상, 중국 백화상 작품상, 중국 금계상 작품상, 프랑스 낭트 영화제 촬영상 등을 수상했다.     


영화 <붉은 수수밭>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모옌이 본격적인 주목을 받고 이어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는 말이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키 큰 붉은 수수와 불타는 수수밭이 압권이었다. 음식을 지고 가다가 일본군 기관총에 맞는 여주인공, 그리고 뒤늦게 터진 폭탄으로 수수밭은 온통 화염에 싸여있다.


그 불타는 수수밭에 위잔아오 부자가 우뚝 서 있고 그들의 머리 위로 붉은 태양이 이글거린다.

    

<붉은 수수밭> 영화 포스터


중국인은 유난히 붉은색과 노란색을 좋아한다. 그러나 노란색은 일반인이 쓰지 않고 주로 왕가에서 사용한다.


<붉은 수수밭> 영화를 보고 나면 온통 붉은색으로 뒤덮인 수수밭이 오래도록 머릿속을 맴돈다.


황토와 붉은 수수밭, 불타는 붉은 수수밭, 붉은 고량주 등이 그들이 부르는 노래와 어우러져 긴 여운을 남긴다.  

    

중국인이 좋아하는 빨간색


소설과 영화의 공통점과 차이점     


기본 줄거리와 주요 주제

두 작품 모두 산둥성 농촌의 한 가족을 중심으로, 일본 점령기 동안 벌어지는 가족과 마을 사람들의 생존 투쟁과 저항을 그리고 있다.


붉은 수수는 두 작품에서 모두 강한 생명력과 저항 정신을 상징하는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며, 당시 중국 사회의 고난과 농민들의 투쟁을 상징한다.     


생명력과 생존의 메시지

소설과 영화 모두 주인공들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살아남고자 하는 강한 의지와 생명력을 보여준다. 이들은 자신들의 삶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싸우며, 전쟁 속에서도 인간성과 생존 본능을 잃지 않으려 애쓴다.     


차이점-구조와 플롯 전개 방식

소설

모옌의 원작 소설은 여러 세대에 걸쳐 이야기가 진행되며, 복잡한 시간 구조를 통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방식을 취한다.


소설은 인물들의 심리와 가족사의 깊이를 부각하고 모옌 특유의 문체로 인간의 본성과 운명에 대한 탐구를 심화시킨다.     


영화

장이머우의 <붉은 수수밭>은 소설에서 여러 세대에 걸친 이야기를 단일 시간대와 사건에 집중하여 압축했다.


영화는 주로 1930년대 일본군의 침략이라는 역사적 배경 속에서 펼쳐지며, 스토리가 비교적 단순하게 전개된다.     


시각적 표현과 상징성

소설

모옌은 상세한 묘사와 은유적인 표현을 통해 <붉은 수수밭>을 주인공의 생명력과 투쟁의 상징으로 표현했다. 또 서술과 내면 묘사를 통해 독자가 각 인물의 심리와 배경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영화

장이머우는 <붉은 수수밭>을 영화의 시각적 중심으로 삼아 장엄하고 강렬한 장면을 만들어냈다.


붉은 색감은 강렬한 생명력과 저항 정신을 상징하며, 영상미와 컬러의 대비를 통해 감정을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영화에서 붉은 수수밭은 전투와 저항의 배경이 되면서, 독특한 미장센으로 인상 깊게 남는다.     


인물 표현과 감정 전달 방식

소설

모옌의 소설에서는 각 인물의 심리 상태와 감정이 상세하게 표현된다. 주인공들의 내면 갈등, 가족에 대한 애착, 공포와 용기 등이 내면 서사로 깊이 다뤄지며, 모옌의 문체를 통해 전해지는 감정이 크다.     


영화

영화에서는 인물들의 내면보다는 외적 행동과 표정에 집중하며, 긴장감과 감정을 장면을 통해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더 단순화된 방식으로 그려지며, 주로 행동과 상황을 통해 성격이 드러나기 때문에 감정 표현이 시각적인 연출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결말

소설

모옌의 소설은 다소 모호하고 열린 결말을 통해 독자가 결말 이후를 상상하게 하며, 전쟁과 고난 속에서 이어지는 가족사의 비극을 암시한다.     


영화

영화는 전쟁과 일본군의 잔혹함을 다루며 비극적인 분위기로 끝을 맺는다. 영화 결말은 더 직접적이고 시각적인 충격을 준다.

     

두 작품은 각각 문학과 영화라는 매체 특성에 따라 <홍까오량 가족>의 이야기를 다르게 해석하고 표현하면서, 같은 이야기를 다양한 시각과 방식으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산둥성 소개

<홍까오량 가족>은 산둥성 가오미현을 무대로 삼고 있다. 이곳은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중국, 산둥성의 도시다.


원래 산둥성의 가장 유명한 도시는 칭다오이고, 가오미현은 칭다오에서 차로 한 시간 반 정도 거리에 있는 소도시다.     


경제

산둥성에는 거대 디젤 엔진회사인 웨이차이와 그 공장이 있다. 그리고 양자부 마을은 민속 목판인쇄와 연 생산으로 유명하다.


문화

‘세계 연의 수도’로 불리는 웨이팡시는 중국 산둥성 중부에 있으며 고대 유적과 건축, 석각, 동상 등과 풍부하고 다채로운 무형문화재로 유명한 인구 900만 명의 유서 깊은 도시다.


연 박물관

산둥성은 ‘국제적인 연의 수도’로 매년 봄에 국제 연 축제를 개최한다.     


현재 웨이팡 시내에는 각 시대의 문화 유적이 남아 있으며, 고대 유적, 고대 건축, 고대 석각과 동상 등 고정 문화재가 1,800여 곳이 있다.


그중 국가급 중요 문화재 보호 지정을 받은 것이 3개, 성급 중요 문화재 보호 지정을 받은 것이 27개, 현급 중요 문화재 보호 지정을 받은 400여 개소가 있다.     


1984년 4월 1일, 웨이팡 인민정부는 한 미국인의 제안에 따라 제1회 세계 연날리기 대회를 개최하였고, 이후 매년 세계 연날리기 대형 이벤트가 개최되고 있다.

    

연 박물관


세계 연 박물관은 최초의 대규모 연 박물관이자 현재까지 세계 최대 규모의 연 박물관으로 1987년에 설립되어 1989년에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건축 면적은 8,100평방 미터로 현재 전국적으로 유명한 관광 명소다.     


십홀원(十笏园)

이곳은 명청() 시기에 관리가 거주하던 곳으로 후에 여러 차례 개축되면서 북방 양식의 건축구조로 변모하였다. 연못을 중심으로 동, 중, 서 3 개축으로 나뉘어 사방에 쓰허(合)식 정원이 조성되었다.

  

십홀원은 전체적으로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정원 구석구석이 아기자기하고 다양하게 꾸며져 있다. 미로 같은 길을 따라 한 곳도 놓치지 말고 빠짐없이 눈에 담으면 좋다.  


십홀원


청도 여행기

청도로 여행을 다녀온 것은 매우 즉흥적이었다. 다섯 명의 지인이 만나는 모임이 있는데 어느 날 중국 관광 여행이 도마 위에 올랐고 우리는 마치 당장이라도 떠날 듯이 앉은자리에서 검색을 통해 청도를 찾아냈다.      


가장 먼저 물망에 오른 곳은 북경, 그다음이 상해, 그리고 장가계, 태산 등이었다. 평소 나는 모임을 주도하지 않고 그냥 따라가는 편이었으나 그날은 계속 청도로 여행지 몰이를 했던 것 같다.      


북경은 다녀왔고 상해와 장가계, 태산은 가 보지 못했다. 솔직히 내가 가장 가고 싶었던 곳은 서안이었다.


나는 비단길을 따라 사막을 걸어보고 싶었고 서안의 병마용도 직접 보고 싶었다. 그러나 서안은 2박 3일의 여정이면 차라리 안 가는 게 나았다.     


생각 외로 그 모임에는 해외여행을 자주 다니는 지인이 없었다. 그동안 한 번도 외국에 나가본 적이 없어서 여권부터 만들어야 하는 지인도 있었다.


나는 이렇게 들떠서 가자고 외치다가 슬그머니 하나둘 빠져나가고 급기야는 나만 가게 되는 여행도 있었기에 여행을 진짜 떠나게 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먼저 시간을 맞추는 것이 쉽지 않았다.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은 금요일에 떠나 일요일에 돌아올 수도 있으나 주말이라 항공편과 숙박이 비쌌다.      


나는 별로 관심이 없는 듯 뒤로 빠져 있다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금액에 대해 말했다.     


“여행은 월요일에 떠나서 수요일이나 목요일에 돌아오는 게 제일 싸. 항공권도 그렇고 숙박도 그렇고.”     


내 말에 일리가 있다고 느꼈는지 일행은 월요일에 떠나자고 호기롭게 말했다. 그러나 평일은 남편과 아이들을 챙겨야 하기에 막상 떠나기로 해 놓고도 가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왠지 느낌이 달랐다. 그중 아들이 하도 속을 썩여서 정말 어디라도 떠나지 않으면 미쳐버리겠다고 고개를 흔드는 A의 입김이 세게 작용했다.


나는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는 심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식어가는 커피를 다 마실 즈음 여행지는 청도로 정해졌다.     


“왜 하필 청도야?”

“청도가 제일 가까워.”

“우리가 뺄 수 있는 시간은 기껏해야 2박 3일인데 그러면 차라리 제주도를 가는 게 더 낫지.”

“청도는 두 시간도 채 걸리지 않고 다녀온 사람에 의하면 볼 곳도 꽤 많대.”

“그러면 언제 떠날까?”

“내가 아직 여권이 없어서 여권부터 만들어야 해.”

“여권 나오는 데 며칠 걸리지?”

“원래는 보름이지만 요새는 일주일 만에도 나오더라고.”

“그래도 떠나는 날까지 여권이 나오지 않으면 안 되니까 안전하게 한 달 뒤에 떠나자.”

“아휴, 너무 길다. 아, 그러게 여권 같은 건 미리미리 좀 만들어놓지. 쯧쯧”

“그러게, 난 참 한심하게 살았네.”     


웃자고 하는 이야기를 다큐로 받는 B의 넋두리에 나머지 지인들은 입을 다물었다.     


“돈은 얼마나 준비하면 될까?”

“우리는 단체여행이니까 다녀와서 엔 분의 일로 나누자. 청도면 경비가 많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아.”

“각자 쇼핑할 것 빼고 1인당 50만 원이면 되지 않을까?”

“그것밖에 안 들어?”

“더 들면 또 걷지 뭐.”

“마음 변하기 전에 입금부터 하자.”     


그렇게 입금은 A의 통장으로 하기로 정한 뒤 우리는 헤어졌다.


나는 잊어먹을까 봐 집으로 돌아와 A에게 송금부터 했다. 그리고 생활하다 보니 어느새 열흘이 지나 있었다.      


“B 여권이 벌써 나왔대.”

“이제 비자 신청하면 될 것 같아.”     


우리는 비자가 나오는 가장 빠른 날에 비행기표를 끊었다. 막상 떠나려고 계획이 구체적으로 정해지자 C와 D가 못 간다고 시무룩하게 말했다.


C는 여행 날짜에 하필이면 시어머니 생신이 걸려있고, D는 제사가 있었다. 대한민국 며느리들의 서글픈 현실이었다.     


나는 A와 B도 두 손 들고 안 갈 것이라 예측했기에 거의 포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의외로 두 사람의 의지는 확고했다.     


약속한 월요일, 우리는 C와 D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공항으로 향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내가 청도를 가고자 했던 것은 관광이 목적이 아니라 모옌의 생가와 붉은 수수밭 촬영지를 보고 오는 것이었다.


나는 비행기에 올라 두 사람에게 내 계획을 말했다.

    

“오늘과 마지막 날은 너희와 함께 청도를 구경할 거야. 그런데 내일은 내가 꼭 가봐야 할 곳이 있어.”

“우리도 같이 가면 안 돼?”

“너희들한테는 시간 낭비야. 거기 볼 것도 별로 없고 실제로 붉은 수수밭이 없을지도 모른대. 영화를 찍을 때도 원래는 옥수수밭이었는데 1년에 걸쳐 붉은 수수를 새로 심어서 세트장을 만들었다나 봐. 그러니까 너희들은 그냥 청도를 여행했으면 좋겠어.”     


지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청도에 도착해 시내로 들어가는 데, 길가에 한글 간판이 많았다. 베이징과 상하이에 각각 5만여 명의 한국인

이 살고 있다고 들었는데 의외로 산둥에는 8만여 명이 살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호텔에 짐을 풀고 먼저 칭다오 맥주박물관을 구경했다.

칭다오 맥주 박물관


칭다오 맥주박물관(青岛啤酒博物馆)은 칭다오맥주 최초의 공장으로 칭다오시 시베이구에 있다. 칭다오 지하철 2호선 리진루역 인근이라 지하철을 이용하면 편리하게 갈 수 있다.


중국 최초의 맥주 공장인 칭다오 1 공장 (青岛啤酒厂)도 옆에 있는데 100년 전의 주조 설비 등을 보존하여 전시하며, 관람객에게 맥주 한 잔과 땅콩 같은 간단한 안주 거리를 주었다.          


시내에서 저녁을 먹고 맛이 좋다는 칭다오 맥주를 샀다. 그리고 저녁에는 맥주를 마시며 회포를 풀었다.


칭다오 맥주


술이 거나하게 들어가자 A의 넋두리가 시작되었고 우리는 혀를 끌끌 차며 그의 인생을 함께 위로했다. 울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다음 날, 두 사람을 남겨두고 나는 기차를 탔다. 가기 전에 청도에서 꼭 보아야 할 곳을 프린트해 온 것을 두 사람에게 주고 약간의 설명을 해주었다.      


내가 출력한 용지에는 어제 다녀왔던 칭다오 맥주 박물관(칭다오 맥주 공장), 칭다오의 가장 상징적인 랜드마트인 잔차오 부두, 칭다오 동쪽에 있는 노산(老山), 팔대관 풍경구, 칭다오 언더워터 월드, 54 광장, 황금 모래 해변(진사탄 해변) 등이 있었다.     


“야, 여행 많이 다녀본 사람은 확실히 다르구나. 덕분에 헤매지 않고 잘 다녀볼게.”

“그럼 늦지 않게 숙소로 돌아올게.”

“그래, 잘 다녀와라.”     


나는 미리 검색해 모옌의 생가를 다녀오는 루트를 공부해 왔다. 일행과 헤어져 바로 칭다오 기차역으로 향했다.


시간만 잘 맞추면 가오미 역까지 30분~5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했다. 요금도 50위안 밑으로 그리 비싸지 않았다. 버스는 거의 두 시간이 걸렸고, 가오미 역까지 가는 기차는 자주 있었다.

    

모옌 생가 입구


나는 가오미 역에서 내려 택시를 잡아 타고 먼저 모옌의 생가에 들렀다.     


방 다섯 개에 60㎡ 규모의 단독주택인 모옌 생가는 20여 년 동안 아무도 살지 않아 폐가에 가까웠다고 한다.     


모옌은 이 생가에서 입대 전인 1976년까지 22년 동안 살았다. 그는 군 제대 후 가오미현 인근으로 이주했고 그의 어머니 역시 1990년부터 둘째 아들의 집으로 옮긴 이후 생가는 빈집이 되었다.

    

노벨상 수상을 계기로 모옌 생가를 찾는 사람이 많아지자 정부는 모옌 생가를 수리한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모옌의 생가 주변에 1억 700만 달러(약 1천181억 원)를 투자해 ‘모옌 문화 체험 구역’을 조성하고 650㏊의 수수밭을 만들겠다고 했다.


사실 1980년대 만든 수수밭은 수익이 나지 않자 모두 없애고 대신 옥수수밭이 된 지 오래였다.     


정부가 생가를 수리하겠다고 제안했지만, 모옌의 작은 형인 관모신(管謨欣)은 동생 모옌이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모옌의 가족은 생가 복원이 자원낭비라며 정부의 제안을 고사했다.     


모옌의 생가에는 과거 모옌이 사용하던 오래된 물건과 삶의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어 관광객들에게는 의미 있는 장소였다.  

  

모옌 생가


산둥성 여유국 인사는 모옌의 집이 너무 낡은 데다 사람조차 살고 있지 않아 늘어나는 방문객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보수와 복원작업이 필요하다고 밝혔고, 가족들은 공익성과 안정성을 고려해 복원 후 무료로 개방한다면 동의한다고 전했다.


마을 주민 역시 무료로 개방하는 것이 모옌의 뜻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대적으로 손을 본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모옌의 생가는 검소했다.      


생가를 둘러본 후 나는 파파고를 이용해 붉은 수수밭 소재지를 물어보고 다시 택시를 탔다. 마을 주민의 말로는 그곳까지 걸어가기에는 먼 거리라고 했다.     


그러나 예상했던 대로 마을에 붉은 수수밭은 없었다. 지금은 옥수수를 심는데 그나마 추수가 끝나서 휑한 들판이 전부였다.

  

휑한 벌판


한 가지 건진 것은 주인공들이 수수밭으로 가기 위해 건너 다녔던 칭사교(靑紗橋) 뿐이었다. 차라리 <붉은 수수밭> 촬영 세트장을 찾는 게 훨씬 나을뻔했다.     


영화를 찍은 가오미시 쑨자커우에 가면, 쑨자커우 항일 투쟁 승리 기념비가 있는데 1938년 4월 16일에 400여 명의 유격대가 일본군을 격퇴한 전적이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이날 전투는 아침 8시부터 오후 3시까지 계속됐는데, 매복해 있다가 일본군을 포위 공격해 장교를 포함한 39명의 일본군을 사살하고, 차량 7대를 파괴하고 1대를 노획했다고 적혀 있다.


원작자 모옌은 바로 이 이야기에 착안해 <홍까오량 가족>을 썼다고 한다.     


물론 모옌 생가를 찾아보는 임무는 완수했으나 기대와는 너무나도 다른 마을의 모습에 실망감이 들었다.     


나는 서둘러 청도로 돌아와 일행과 합류했다.


5.4 광장


마지막 날, 한국으로 귀국하기 전에 우리는 5.4(우쓰) 광장을 찾았다.


이 광장은 중국판 3.1 운동인 5.4 운동의 시발점이 칭다오인 것을 기념하는 공원으로, 밤마다 칭다오 맥주 가판대가 성업하는 곳이다.


붉은 조형물은 오월의 바람이란 작품으로, 높이 30m에 무게 700톤에 이른다. 청도를 다녀온 사람이면 누구나 이곳은 빼놓지 않고 들른다고 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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