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인숙 Oct 31. 2024

중국의 신필(神筆)로 불리는 김용의 <사조영웅전>

김용(金庸)

     

또 하나의 신세계를 발견하다

어려서부터 나는 하늘을 나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중국 영화를 보면 사람이 하늘을 날아다니고 물을 가르고 절벽을 가뿐하게 오르는 것이 신기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나는 계단에서 뛰어내리기를 시도했다. 계단을 3개, 4개, 5개 높이에서 계속 뛰어내리면 언젠가는 높은 담장 위에서도 뛰어내릴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다음에는 하늘을 나는 연습을 하려고 했다.      


물론 계단은 7개를 넘지 못하고 발을 헛디디고 굴러서 왼쪽 눈썹 위를 꿰매는 슬픈 결말을 맞이했다.


6학년이면 그리 어린 나이도 아니었는데, 어쩌면 그것은 책의 힘(?)에 매료된 탓이 아닐까 핑계를 대본다.     


내 독서의 시작은 초등학교 6학년 때 본 <플루타르크 영웅전>이었다. 그동안 스스로 읽은 책 중에 가장 감명 깊은 책이었다.


그러나 어쩌면 내 독서의 시작은 더 어렸을 때 읽었던 만화책이었는지도 모른다.     


오빠가 무협만화를 좋아해서 집에는 늘 만화책이 뒹굴었다. 집에 동화책 따위는 없었다.


부모님은 책을 읽히며 자녀 교육에 일일이 관여하는 분이 아니셨고 먹고살기 분주해서 우리는 스스로 커야 했다.      


지금도 느끼는 거지만 만화책은 과장된 부분이 많다. 동작도 매우 크게 그려놓는다. 그러나 만화책은 쉽게 읽을 수 있고 쉽게 빨려든다. 그래서 스펀지처럼 내용이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것 같다.      


내가 어려서 읽었던 그 만화의 어떤 부분은 머릿속에 각인되었을 것이고 아마 내 어린 시절의 인격을 형성하는 데 적지 않게 기여했다고 믿는다.   


<사조영웅전> 책


이 글을 쓰면서 사실 염려스러운 점도 있다. 아직도 김용의 소설을 무협소설로 치부하는 독자들에게는 흥분해서 쓰는 나의 글이 우스꽝스러울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먹는 욕은 상관이 없으나 이미 작고하신 김용 작가를 알고 싶지 않다면 이 부분에서 더는 읽지 않았으면 좋겠다.     


또 하나 걸리는 것이 있다. 광저우를 소개하면서 김용 작가가 웬 말이냐 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김용 작가는 저장성 하이닝현에서 태어나 상해, 북경, 항저우 등에서 공부를 마치고 홍콩으로 건너가 홍콩 양화병환에서 노환으로 사망했다.      


그가 쓴 소설들의 주무대는 주로 중원과 사막이다. 그리고 꼭 짚어서 어디라고 나오는 지명은 별로 없다.


가령 산악 휴양지, 무술 종파, 번화한 고대 도시, 험난한 산, 숨겨진 무술 수련장, 요새, 사원, 숨겨진 계곡, 드넓은 사막, 신비로운 숲, 궁전 등인 경우가 많다.


물론 시대적 배경은 있기에 대충 짐작은 할 수 있으나 김용 소설은 중국의 중원 쪽이면 어느 도시에 넣어도 별 무리가 없어 보인다. 따라서 널리 이해를 바란다.


<사조영웅전>을 중국 드라마로 본 것은 아들이 군입대했을 때였다.


올해 새로 제작된 <사조영웅전> 드라마


나는 심심하면 아들 방에 들어가 넷플릭스를 검색해 <삼국지> 95부작, <의천도룡기> 50부작, <신조협려> 41부작, <천룡팔부> 54부작, <소오강호> 37부작, <녹정기> 45부작, <삼생삼세 십리도화> 58부작, <삼생삼세 침상서> 56부작 등 아들이 제대하기 전까지 중국 드라마를 거의 섭렵했다.      


나는 원래 한 권으로 끝나는 책 보다 전집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전집을 다 읽고 난 후에 느끼는 그 뿌듯함과 희열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긴 중국 드라마에 도전했고 아들이 제대하고 돌아올 몇 계절은 푹 빠져 살았다.      


그러다 어느 날 김용이라는 이름이 내 눈에 꽂혔다.


그전까지 나는 드라마만 보았기에 원작이 누군지는 관심도 없었고 내가 본 대부분의 드라마가 책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도 몰랐다. 그래서 김용이 누군가 인터넷을 뒤졌다.     


내가 찾은 자료는 어마무시했다. 중국의 셰익스피어, 신필(神筆)이라 불리는 김용 작가의 책은 전 세계적으로 1억 부 이상 팔려 나갔다고 한다.


그는 지난 2018년 9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의 반향은 여전히 식지 않았다. 대만에는 그의 삶과 작품 세계를 연구하는 학회(金學)가 있고 대학 전공과목도 개설되었다. 또 그가 쓴 논문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김용의 이름은 '1억 뷰 클럽'에 올랐다. '1억 뷰 클럽'은 문화와 세대를 초월해 시간이 지나면서 엄청난 독자층을 확보한 상징적인 작가를 가리킨다.


이 작가들은 그들의 작품을 수백만 명이 연구하고 즐기며 때로는 수억 명의 독자층에 도달하는 등 영향력이 있는 것으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이 클럽에는 셰익스피어, 세르반테스,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조앤 롤링, 애거서 크리스티, 존 그리셤, 찰스 디킨스, 마르케스, 호머, 생텍쥐베리 등의 이름이 올라 있다.


현재 이 클럽에는 약 50여 명 미만의 영향력 있는 작가가 올라 있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작가를 무협 작가라 치부한 나만 몰랐던 것이다.


이후 교보문고 인터넷서점에서 김용의 책들을 구매해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신세계가 펼쳐졌다.      


작가 소개

김용(金庸, 본명 차량융, 查良镛, 1924~2018)은 중국 출신의 전설적인 무협 소설 작가이자 언론인, 문화인으로, 무협 소설 장르를 대중적으로 확립하고 크게 발전시킨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김용 작가(자료-나무위키)


그는 무협 소설뿐 아니라 중국의 전통 가치와 역사적 배경을 결합한 스토리텔링으로 동아시아 문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의 작품은 중국은 물론이고 한국, 일본, 동남아, 그리고 서구권에서도 널리 사랑받고 있으며, 영화, 드라마, 만화 등으로도 수없이 각색되었다.     


생애와 경력

김용은 1924년 3월 중국 저장성 하이닝(海寧) 현 위안화(袁花) 진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자량융(査良鏞), 하이닝현의 자(査)씨 가문은 명문거족이었다.      


그는 1938년 저장성립연합고중 중학부에 입학했다. 당시 동기생들과 ‘급투고초중자(給投考初中者·중학생 입시를 위한 참고서)’를 출판했는데 베스트셀러가 됐다.      


1941년 김용은 학교 훈도(訓導) 주임의 투항주의를 풍자한 글 ‘아려사만유기(阿麗絲漫遊記)’를 벽보로 게재한 게 문제가 되어 퇴학당했다.      


다행히 그의 재능을 아낀 학교장 권유로 저장성 취저우중학(衢州中學)으로 전학하여 졸업하였다.      


1944년 국민당이 당(黨)·정(政) 간부 양성을 위해 설립한 중국국민당중앙정치학교(中國國民黨中央政治學校·대만국립정치대 전신) 외교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시절 김용은 급진 개혁주의자였다. 그는 국민당의 학생 통제 행위에 불만을 품고 항의하다 또 퇴학 처분을 받았다.


이후 중앙정치학교 교장을 겸임한 장제스(蔣介石) 대만 총통과도 거리를 두게 된다.      


이때부터 김용은 중앙도서관 임시 사서로 일하며 각종 책을 두루 탐독했고, 1945년 일본 패망 후 고향으로 돌아와 항저우(杭州) 동남일보(東南日報)에서 외신 번역 일을 했다.     


당시 동남일보는 중국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발행되던 영향력 있는 신문사 중 하나였고, 김용은 이곳의 경험을 통해 글쓰기와 사회 이슈에 대한 감각을 키웠다.


항저우에서의 경험은 김용 작가가 훗날 무협 소설의 대가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단순한 이야기를 넘어 독자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감정 표현과 스토리텔링에 대한 능력을 키우게 된 것이다.


쑤저우대학 시절 상하이(上海) 대공보(大公報)에 입사, 국제부 외신 번역 기자로 일하다 졸업 후 홍콩지사에 발령받았다.     


1950년 김용은 청운의 꿈(입신출세)을 품고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도 베이징으로 갔다. 출중한 영어 실력을 살려 정무원(현 국무원) 외교부에서 일했으나, 중국공산당 이념과 대외정책은 그와 맞지 않았다.      


외교관직에서 물러난 그는 다시 홍콩 대공보로 돌아갔고, 1952년 신만보(新晩報)로 자리를 옮겨 부편집장을 맡았다.      


안타깝게도 이 시기에 김용의 아버지는 중국 공산화 이후인 1951년 반동지주로 몰려 총살당했다.


김용의 팬으로 알려진 덩샤오핑은 훗날 그에게 아버지 처형 문제를 직접 사과하기도 했다.     


1959년 홍콩에서 신문 <명보(明報)>를 창간해 편집장으로 활약하며 언론계에서도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명보>는 김용의 신작 무협 소설을 연재하여 인기를 끌면서 그의 작품이 대중적으로 사랑받게 되는 매개체였다.     


주요 작품과 문학적 성과


<천룡팔부> 영화 스틸


김용은 생애 동안 총 15편의 무협 소설을 남겼다. 시대순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월녀검(춘추전국시대)-1970년

 2. 천룡팔부(북송)-1966년

 3. 사조영웅전(남송)-1959년

 4. 신조협려(남송말)-1961년

 5. 의천도룡기(원말)-1961년

 6. 소오강호(명)-1967년

 7. 협객행(명)-1965년

 8. 벽혈검(명말)-1956년

 9. 녹정기(청-강희제)-1972년

10. 서검은구록(청-건륭제)-1955년(데뷔작)

11. 비호외전(청-건륭제) 1961년

12. 설산비호(청-건륭제)-1959년

13. 원앙도(청)-1961년

14. 연성결(청말)-1963년

15. 백마소서풍(시대가 정확하지 않음)-1961년     


이 15편 중 연작 시리즈는 사조삼부곡(사조영웅전-신조협려-의천도룡기)과 녹정기(소오강호-벽혈검-녹정기), 그리고 설산비호(서검은구록-비호외전-설산비호)다.


이 작품들은 대부분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사조삼부곡 – <사조영웅전(射雕英雄传)>, <신조협려(神雕侠侣)>, <의천도룡기(倚天屠龙记)>

이 3부작은 중국 역사 속 가상의 무림 세계를 배경으로 하여, 정의와 악의 대립, 영웅들의 사랑과 고난을 다루고 있다.


이 시리즈는 김용의 대표작 중 하나로, 방대한 세계관과 독창적인 인물들로 이루어진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을 자랑한다.     


<사조영웅전>은 1977년과 1982년에 홍콩에서 영화로 제작되었으며, 이후에도 여러 차례 리메이크되었다.


2021년작

    

<신조협려>

주인공 양과와 그의 스승 소용녀 사이의 애절한 사랑을 그린 작품으로, 무협 소설 중에서도 특히 로맨스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1982년 홍콩 영화로 제작되었으며, 다양한 시리즈와 리메이크로 이어졌다.     


신조협려 책과 영화 포스터


<의천도룡기>

명나라 말기를 배경으로 권력 다툼과 비밀 무공을 둘러싼 이야기로, 주인공 장무기의 성장을 그리고 있다.     


1978년 홍콩 영화로 제작되었으며, 특히 1993년에 제작된 이연걸 주연의 영화로도 유명하다.     



<의천도룡기> 영화 포스터와 책


<소오강호(笑傲江湖)>

검술의 달인 영호충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무림의 갈등과 자유를 향한 갈망을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은 무림 내 세력 다툼과 인간의 고독, 자유를 주제로 한 이야기로, 김용의 철학적 성찰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무림 내 갈등과 권력 투쟁, 그리고 인물들의 고뇌가 현실적으로 묘사되어 깊은 감동을 주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1990년에 주윤발 주연의 영화로 제작되었으며, 이후로도 여러 번 영화와 드라마로 각색되었다.     



<소오강호> 영화 포스터


<녹정기(鹿鼎记)>

김용의 마지막 작품이자 무협 소설의 틀을 깨는 작품으로, 전통적 영웅 대신 교활하면서도 재치 넘치는 인물 위소보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무협 소설의 고정관념을 깨고 신선한 전개와 독특한 캐릭터로 새로운 시도를 선보인 작품이다.     


1983년 홍콩에서 영화화되었고, 이후에도 주성치가 주연한 1992년 영화로 유명해졌다.  

   

<녹정기2>-1992년작


이외에도 <동방불패>, <동사서독>, <독구구패> 등도 그의 작품을 각색해 영화로 만들어졌다.     


<동방불패> DVD


이중 내가 10번도 더 본 영화 <동사서독>은 내가 좋아하는 중국 배우 장국영, 양가휘, 임청하, 장만옥, 양조위, 장학우, 유가령이 대거 포진해 보는 내내 행복했다.      


나는 지금도 컴퓨터 바탕화면에 이 영화를 띄워놓고 틈날 때마다 클릭해서 보고 있다. <동사서독>은 후일 따로 글을 쓸 기회가 있으면 써보려고 한다.



<동사서독> 영화 포스터


김용의 소설들은 영화뿐만 아니라 드라마와 애니메이션으로도 여러 차례 제작되어 큰 인기를 끌었고, 그의 작품 속 인물과 이야기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새로운 세대에게 사랑받고 있다.          


문학적 특징과 영향     

역사와 허구의 융합

김용은 실제 역사 속 사건과 인물을 바탕으로 허구의 스토리를 결합하는 데 탁월했다. 송나라와 금나라의 갈등, 몽골 제국의 확장 등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하여 스토리의 깊이를 더하고, 무협 세계를 사실감 있게 그렸다.     


무협의 철학적 깊이

단순히 싸움과 무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과 갈등, 의리, 배신, 자유 등의 주제를 다루면서 무협 소설을 철학적 깊이가 있는 장르로 승화시켰다.


특히 <소오강호>와 같은 작품에서는 무림 세계의 권력과 개인의 자유에 대한 성찰을 담아냈다.     


풍부한 캐릭터와 심리 묘사

김용의 인물들은 단순히 선과 악으로 구분되지 않고, 각기 고유의 성격과 내적 갈등을 가지고 있어 사실적이다.


대표적으로 곽정과 양강, 소용녀, 장무기 같은 인물들은 저마다 다른 가치관과 고민을 안고 있어 독자들에게 큰 인상을 남기고 있다.     


김용의 유산과 영향

김용의 소설은 중국과 동아시아 무협 문학의 고전으로 평가받으며, 현재까지도 그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와 영화, 만화, 게임 등이 꾸준히 제작되고 있다.


김용의 무협 세계는 단순한 소설을 넘어 동아시아 대중문화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고, 그의 작품은 많은 후대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김용은 1955년에서 1969년까지 15년 동안 15권에 이르는 책을 써낸 후 절필을 선언했다. 이후 그는 자신의 작품을 수정하는 데 몰두했다.


그가 주로 공을 들인 내용은 인명과 역사적 배경이다. 즉 ‘중화사상’에 대한 그의 정치관을 조금씩 첨가했던 것이다.     


김용은 2018년 홍콩에서 94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지만, 그의 작품은 여전히 전 세계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김용의 문학 세계는 한 시대를 대표하는 무협 소설의 금자탑으로, 무협 소설의 깊이와 가능성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린 작가로 기억될 것이다.     


<사조영웅전(射雕英雄传)>

<사조영웅전>을 해석하면 ‘독수리를 쏜 영웅 이야기’다.


<사조영웅전>은 김용(金庸)의 무협 소설로, 원래 1957년부터 신문에 연재되었고 이후 책으로 출판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사조영웅전>은 송나라와 금나라의 대립을 배경으로, 복수와 사랑, 성장과 모험이 어우러진 이야기다.      


이 소설은 김용의 ‘사조삼부곡’ 중 첫 번째 이야기로, 후속작인 <신조협려>, <의천도룡기>와 함께 이어지며 방대한 무협 세계관을 형성하고 있다.     


<사조영웅전> 책


<사조영웅전> 줄거리

배경 및 주요 인물 소개

북송 말기는 금나라와의 갈등 속에서 많은 무인들이 자신의 무예를 뽐내며 활약하던 시기다. 주인공 곽정과 양강은 태어날 때부터 두 가문 간의 인연으로 연결된 친구 사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인생은 다른 길을 걷게 된다.     


곽정은 어머니와 함께 몽골에서 자라게 되고, 양강은 원수의 손에 의해 금나라로 가서 그곳에서 복수를 다짐한다.     


<사조영웅전>에는 중국의 무술 고수들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들은 동사(황약사), 서독(구양봉), 남제(주백통), 북개(홍칠공)다.


곽정은 이들과 얽혀 무예를 익혀 최고수로 성장하고 그 무술을 나라와 백성을 지키는 데 사용한다. 그리고 그는 독수리를 쏜 영웅으로 우뚝 선다.     


“자고로 영웅이란 그 행동이 당대 사람들의 찬사를 받고 후세의 귀감이 되는 사람들을 일컫는 것입니다. 또한 백성들을 위해 공을 세운 분들이요, 백성들을 사랑하고 아낀 분들입니다. 제가 보기에 사람을 많이 죽였다 하여 영웅이 되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8권 영웅의 길 중에서 p341)     


곽정

순박하고 단순한 성격이지만, 의협심이 강하고 정의로워 많은 무공 고수에게 사랑받는다.


특히, 그는 전설적인 무공인 ‘구음진경’을 익히게 되어 강호에서 큰 활약을 펼친다.     


황용

절세 미녀이자 지혜로운 여성으로 곽정의 연인이자 동반자다. 음식을 잘 만들어 대접하며 사람을 구워삶는 재주가 있다.


황용은 곽정을 돕고 많은 위기에서 지혜롭게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한다.     


양강

곽정의 친구지만 복수심과 탐욕에 사로잡혀 점점 어두운 길을 걷게 된다. 그의 성격적 결함은 곽정과 대비되는 면을 보여준다.     


곽정의 성장과 무공 습득

곽정은 몽골에서 청년으로 자라면서 몽골 황제 칭기즈칸의 신임을 얻게 되고, 그의 장군으로 활약하기도 한다.


그는 이후 강호로 돌아와 무예를 연마하고, 각종 무림 고수들과 인연을 쌓는다.


이 과정에서 곽정은 일등 대협 홍칠공과 구양봉 같은 전설적 고수들에게서 무공을 배우며 성장한다.     


황용과의 만남과 사랑

곽정은 지혜롭고 총명한 황용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황용은 단순하지만 강직한 곽정의 성격에 끌리며 그의 곁에서 든든한 지원자가 된다.


두 사람은 수많은 모험과 시련을 함께 겪으며 서로의 사랑을 키워가고, 그들의 사랑은 곽정의 성장을 돕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양강의 어두운 길

양강은 원수를 갚고자 금나라 측에 붙고, 권력과 복수에 집착하며 점차 어두운 길을 걷게 된다.


그의 선택과 갈등은 곽정과 대조를 이루는데 곽정이 정의와 의리를 지키려는 모습과 반대되는 역할로써 강한 인상을 남긴다.


양강의 비극적 결말은 복수와 탐욕의 위험성을 상기시킨다.     


금나라와 송나라의 대립 속에서의 활약

곽정은 몽골과의 인연으로 인해 금나라와의 전쟁에도 휘말리게 된다.


그는 몽골군의 침략에 반대하여 송나라의 편에 서서 싸우기로 결심하고, 이후 무예를 통해 몽골의 침략을 막는 데 기여한다.     



광저우에서 본 기마 공연


구음진경과 무림 최고수가 되는 여정

곽정은 마침내 구음진경을 터득하여 강호의 최고 고수로 거듭나고, 정의로운 무림 영웅으로 자리매김한다.


그는 강호를 정의롭게 만들겠다는 신념으로 싸우며, 무협 세계 속에서 영웅으로서의 성장을 완성한다.


그의 의협심과 순수한 열정은 무협 세계에서 큰 존경을 받는다.     


작품의 주제 및 특징

곽정의 성장 과정을 통해 인간으로서의 의리, 정의를 중시하는 가치관을 드러낸다.     


사랑과 우정 

곽정과 황용의 사랑, 곽정과 양강의 우정 및 갈등이 이야기의 주요 동력으로 작용하며, 다양한 인간관계를 통해 인간의 복잡한 감정을 탐구하고 있다.     


무협 세계관 

김용은 이 소설을 통해 방대한 무협 세계를 구축했으며, 이후 <신조협려>와 <의천도룡기>로 이어지는 방대한 서사를 완성하였다.     


<사조영웅전>은 곽정이라는 평범한 인물이 무협 세계에서 영웅으로 거듭나는 성장 서사로, 김용의 대표작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김용의 소설을 읽는 것은 5천 년의 찬란한 문화를 읽는 것이다.” 진건공(중국 작가협회 서기)     


“나도 당신의 소설을 읽었으니 우리는 친구입니다.” 덩샤오핑     


김용은 말한다.     


“실제로 사회에는 이러한 영웅 같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제가 이러한 영웅이 태어났으면 하고 상상해 본 것이지요. 어떤 소설의 영웅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독자들도 그러한 영웅이 사회에 나타나기를 바랄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실 우리가 원하는 것도 작가와 같은 맥락이 아닐까?


영웅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플루타르크 영웅전>의 강한 인물들처럼, 때로는 곽정이나 연호충 같은 영웅이 어디선가 튀어나와서 어지러운 세상을 다스려주었으면 하는 바람, 그 바람을 모두 가지고 있지 않은지…….     


광저우 여행기

중국 전역의 많은 사원, 공원, 명승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는 중국 반얀나무다.


우리에게는 인삼 무화과나무라고 알려져 있다.


중국에서 가장 많이 본 반얀나무


이 나무는 넓게 퍼지는 가지와 기근으로 유명하며, 기술적으로는 작은 무화과인 빨간색이나 오렌지색 열매가 종종 열린다. 물론 사람이 먹을 수는 없고 새와 동물에게 먹이로 준다.      


광둥성의 성도인 광저우는 중국에서 가장 활기차고 역사적으로 풍부한 도시 중 하나다.


이곳은 오랫동안 주요 무역항이자 문화 중심지였으며, 중국 전통과 현대 도시 생활이 역동적으로 융합된 곳이라는 명성을 얻고 있다.      


아열대 기후와 탄탄한 경제로 인해 광저우는 세계 방문객을 끌어모으고 있다.     


광저우와 항저우를 여행하면서 자서전도 진척이 있었다.


잠잘 때를 빼고 대부분 같이 생활하다 보니 문 사장의 하루일과와 그가 하는 일, 그가 어떤 마음으로 일을 하는지, 사람을 대할 때 어떻게 하는지, 중국에 와서 이루어 놓은 일은 뭐가 있는지, 여러 가지 다방면으로 알 수 있었다.      


그야말로 24시간 동행취재였다. 물론 한 사람의 일생이 일주일간의 동행취재로 해결되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 비해 쓸 이야기가 풍성한 것은 사실이었다.      


자서전이라는 것이 각각의 인생을 놓고 볼 때는 자신이 가장 힘들고 어려운 시절을 살아왔노라고 토로하지만, 쓰는 사람은 대상만 다를 뿐 비슷한 경우가 많다.      


성공한 사람들의 어린 시절은 한결같이 어렵고, 효심은 깊으며, 동생들을 책임져야 하는 부담감에, 자식을 위해서는 집을 팔아 학비를 대면서도, 정작 자신은 냉면 한 그릇이 아까워 선뜻 사 먹지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보통은 그것을 희생이라고 하고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여긴다. 그들을 폄하하려는 게 아니라 어찌 보면 그야말로 바보 같은 삶을 살아온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정작 있어야 할 내가 없다. 누구나 한번 왔다가 가는 생인데 다른 사람을 위한 삶을 살고 가는 것이 과연 잘 사는 것일까? 나는 늘 반문한다.      


황창연 신부님의 강연이 떠오른다.     


“먹고 싶으면 누가 사주기를 바라지 말고 사서 먹어요, 누구 돈으로? 내 돈으로~.”     


처음 강연을 듣고 웃었지만 정말 무릎을 치게 만드는 말이었다.


대부분 가정주부의 삶이 그렇다. 먹고 싶은 것도 가족 위주로, 나는 냉면이 먹고 싶어도 딸이 돈가스가 먹고 싶다면 돈가스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 그것이 우리의 일상 아닐까?


그러나 얼마 남지 않은 인생, 이제는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되지 않나? 반문해 본다.      


그래서 나이 많은 사람이 뒤늦게 글쓰기에 도전한다. 힘들다고 여기면서도 글을 쓰는 이유는 아마 “나”라는 알맹이를 만나고,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서일 것이다.     


각설하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여행 이야기를 계속해 본다.     


하루는 저녁을 먹은 뒤 재래시장 구경을 가자고 나섰다. 내가 핸드백을 챙겨 들고 일어서자 임신한 며느리가 손사래를 쳤다.     


“시장에 가방 가지고 가시면 안 돼요. 핸드폰도 손에 들고 계시면 안 되고요. 오늘 아침에도 공장 여직원이 휴대폰 뺏겼어요.”     


며느리의 말인즉 여직원이 아침에 출근하려고 공장에 들어서다가 마침 전화가 와서 통화를 하는데 한 남자가 다가오더니 전화기를 뺏더라는 것이다.


여직원은 안 빼앗기려고 몸부림을 치다가 주먹으로 배를 걷어차이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남자는 유유히 전화기를 챙겨 도망쳤다.     


“어머, 어떻게 아침에 그런 일이, 신고는 하셨어요?”


“신고해야 소용없어요. 여기 공안은 그런 거 눈도 깜빡 안 해요. 괜히 시간 낭비만 하는 거죠. 그리고 혹시, 작가님이야 그럴 일은 없겠지만 뺏으려고 덤벼들 때는 그게 뭐든지 그냥 주세요. 안 그러면 사람이 다칠 수 있어요.”     


나야 물론 혼자서 돌아다닐 일이 없지만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하다고 했다.      


한 번은 경리를 맡고 있는 큰딸이 직원들 월급을 주려고 은행에서 현금을 찾았는데 곧바로 공장으로 오지 않고 맥도널드에 들러 햄버거를 하나 사 먹었다.


돈은 가방에 넣어 자신이 앉은 의자 뒤에 놓고 바짝 앉아서 햄버거를 먹었다. 그런데 일어나 보니 그새 가방이 통째로 없어졌다.


월급을 주기위해 그날 문 사장이 백방으로 뛰어다녀 겨우 해결했다고 한다. 중국인은 월급을 주지 않으면 바로 다음 날부터 나오지 않기 때문에 급여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날짜를 맞춰야한다고.     


“그러면 사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돈은 어디에 넣어가요?”


“주로 바지 주머니 앞이나 잠바 깊숙이 넣으세요. 딱 돈만 넣고 가시면 돼요. 이렇게 두 손은 자유롭게, 그래야 이곳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따라붙는 사람이 없어요. 대부분 외지인들은 손에 뭘 들고 다니다가 뺏기거든요. 카메라가 제일 많아요.”     


그야말로 이곳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천국이었다. 아무튼 시장을 따라나섰다.


시장은 내가 어렸을 때 어머니를 따라다녔던, 20~30년 전의 시장을 많이 닮아 있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시대를 거슬러 되돌아간 듯한 느낌이었다.      


중국 재래시장


생닭을 사면 그 자리에서 칼로 목을 찔러 뜨거운 물에 담근 후 털을 뽑아주는 닭집이 보였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시장에서 흔히 보았던 모습이었다.      


우리나라는 살아있는 닭을 파는 것이 금지된 지 오래여서 신기하기도 했지만 마치 소, 돼지를 직접 잡는 살육 현장을 보기라도 한 듯 저절로 고개가 돌려졌다.     


리어카에서 미키마우스와 헬로키티 등 그림이 예쁜 짝퉁 시계를 팔았는데 하나에 천 원이었다.


아이들에게 선물로 나누어주려고 꽤 많이 샀던 것 같다. 시계는 금방 고장 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오래갔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 귀국해야 할 날을 하루 남겨놓고 문 사장은 중국 민속촌으로 나를 안내했다.


아, 그전에 광저우에서 가장 상징적인 랜드마크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캔턴 타워다. 이곳은 저녁에는 도시 스카이라인의 멋진 전망을 제공한다.      


캔턴타워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평 대관람차를 타거나 회전식 레스토랑에서 탁 트인 도시 전망을 감상하며 식사하는 것을 추천한다.      


문 사장이 안내한 민속촌은 금수중화와 중국 민속촌이 합쳐진 곳이다.


금수중화에는 중국의 유명한 명소가 미니어처로 만들어져 그야말로 ‘하루 만에 중국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서안의 병마용이 인상깊었다. 

   

소수민족의 공연과 쇼


이곳에는 민속 풍습을 체험하고 56개 민족의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건물이 있는 24개의 마을이 있다.


소수민족 사람들은 각자의 전통춤과 혼례 모습 등을 재현하여 볼거리가 풍성했다.  

   

민속촌은 대규모 공연을 진행했는데 화려함의 끝판왕을 본 듯하다.          



-다음 호에 계속-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