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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숙 Nov 14. 2024

중국에서 가장  문제적인 작가,
옌렌커

옌롄커(阎连科)-<일광유년(日光流年)


중국에서 가장 문제적인 작가, 옌렌커               


그동안 라오서, 위화, 김용, 모옌의 작품을 정리해 글을 올리면서 이제 중국 편을 마무리하려고 했다. 그러나 위화, 모옌과 더불어 중국 현역 3대 문호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옌렌커를 언급하지 않자니 뭔가 개운하지 않았다.      


옌롄커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중국에서 가장 문제적인 작가라 할 수 있다. 


작가 옌롄커(자료-나무위키)


그는 중국작가협회 1급 작가로 정부에서 주는 월급을 받으며 글을 쓴다. 그런데도 국가를 비판하는 작품을 쓴다는 것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옌렌커의 작품은 금서가 많아서 어떤 작품을 선택해야 할지도 무척 고민이었다.


그의 저서들은 나오는 족족 금서로 지정되어 그에게는 금서대사(禁書大師)’라는 별명이 뒤따른다.


문단의 이단아’, ‘반역의 작가라고도 불리는데 그래서 중국 출판사 측에서는 옌롄커의 작품 출간을 꺼리기도 한다고.     


그의 작품 <물처럼 단단하게(堅硬如水)>는 ‘혁명’과 ‘성적인 주제’ 면에서 모두 금기를 범해 금서가 되었고 <레닌의 키스(受活)>를 발표하며 군인이었던 옌렌커는 군복을 벗어야 했다.     


군인의 신분을 벗어나면서 옌롄커는 해방을 느끼며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爲人民服務)>를 썼는데, 이 책은 마오쩌둥 사상을 욕보였다는 이유로 출판, 광고, 게재, 비평, 각색이 금지된 5금 조치를 당했으며, 문예지 <화청>에 실린 초판까지 전량 회수되었다.

     

또한 중국 현실 세계에 대한 도피와 풍자가 담긴 <사서(四書)><작렬지(炸裂誌)> 역시 금서가 되었다.


옌롄커 책들

<풍아송(風雅頌>은 책이 나오자마자 베이징 대학교를 겨냥했다는 평을 들으며 학계가 발칵 뒤집혔다. 옌롄커는 이미 자신이 비난받을 것을 예상했다고 한다.


<딩씨 마을의 꿈(丁莊夢)>은 중국의 체면을 구겼다는 이유로 금서가 되었다.      


옌렌커는 그동안 중국 사회에 비판 정신이 강한 작품을 써왔고, 이에 중국 정부는 총 여덟 권의 책에 대하여 판매금지 처분을 내렸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세계 20여 개국에서 작품이 번역·출간되어 지금도 읽히고 있다.     


그는 중국에서 제1~2회 루쉰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제3회 라오서문학상, 2014년 카프카문학상, 홍루몽상 최고상, 2020년 뉴마인중국어문학상을 수상했다.


2021년에는 로열문학학회로부터 국제작가종신영예상, 2022년 제6회 이호철 통일로 문학상 수상 등 20여 개의 문학상을 받았다.


그는 2023년 노벨문학상 수상 가능성 랭킹 7위였고 올해도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다.     


옌렌커의 여러 소설 중 흐르는 세월의 뜻을 가진 <일광유년(日光流年)>이라는 작품을 소개하기로 한 것은 이 책을 매우 인상 깊게 읽은 탓이다. 저자가 약 4년에 걸쳐 썼고, 중국어 원본 분량이 40만 자에 이르는 이 대작을 읽으면서 나는 삶과 죽음의 경계와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인간스럽게 살아가는 것일까를 생각했다.  

   

일광유년 책


이 책의 공간적 배경지는 중국 허난성, 가상의 골짜기 마을 산씽촌(三性村)이다.


허난성은 내가 가본 곳은 아니나 옌렌커를 정리하는 차원에서 그냥 써보기로 했다. 어차피 가상의 마을이기 때문에 별 관계는 없을 듯하다.     


총페이지가 960쪽에 달하는 이 책은 우리나라 소설이라면 3권으로 내도 될 정도의 분량이다. 시리즈물이나 분량이 많은 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읽어내기 힘든 소설이지만 한번 손에 쥐면 그리 난해한 글은 아니어서 잘 읽히는 편이다.     


옌롄커는 작가의 말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저는 이 작품을 쓰는 데 4년이라는 시간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4년이라는 시간은 제가 심각한 요추 부상과 경부 질환을 겪어야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이 소설의 전반부를 침대에 엎드려서 써야 했고 후반부는 특수 제작한 글쓰기용 선반에서 완성했습니다. 그것은 장애인들을 위한 가구 및 설비를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베이징의 한 공장에서 저의 몸 상태에 맞게 특별히 제작한 선반으로, 누워서도 글을 쓸 수 있고 자유로운 이동도 가능한 책상과 의자의 결합체였습니다. 매일 글쓰기용 선반에 엎드려 글을 쓰다 보면 팔이 거의 제 얼굴과 평행을 이룬 채 안정적으로 글쓰기용 판자와 함께 허공에 걸려 있었습니다. 너무나 고통스러웠던 그 4년의 글쓰기를 지금은 감히 되돌아보지도 못합니다. 다시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시간이지요. 하지만 다행히 <일광유년>은 중국에서 출판된 뒤로 제 일생의 글쓰기에서 비교적 쟁의가 적은 책, 많은 사람에게 칭송받는 책이 되었습니다.”     


작가 소개

옌롄커(阎连科, Yán Liánkē)는 현대 중국 사회를 예리하고 풍자적으로 묘사한 것으로 유명한 중국의 저명한 작가다.


옌롄커 작가(자료-나무위키)


그는 특히 중국 정부와 중국 농촌의 사회 문제에 대해 대담하고 비판적인 접근 방식으로 글을 쓴다.


그의 작품은 부패, 빈곤, 환경 파괴, 공중 보건 위기 등 민감한 주제를 다룬 것이 대부분인데 호평과 논란을 동시에 받고 있다.     


옌롄커는 1958년 8월 허난(河南)성 뤄양(洛陽) 시 충(崇) 현의 가난한 농민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릴 때부터 글을 잘 써서 담임이나 문학 교사들이 앞으로 작가로서 크게 될 것이라고 칭찬을 받으며 자랐다.


그러나 집안이 너무 가난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일했고 결국 고등학교 1학년 때 중퇴했다. 그 뒤 그는 소를 먹이거나 밭을 갈면서 농부로서의 삶을 살았다.


이 경험은 후일 소설에서 시골 생활을 묘사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1978년 그는 인민해방군으로 입대해 28년간 직업군인으로 복무했다. 그는 군대 내 문학창작반에서 활동하던 1979년 잡지 『전투보』에 단편 「천마 이야기」를 쓰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군에 있으면서 1985년 허난대학교 정치교육학과를 거쳐 1989년 해방군예술대학 문학과에 들어가 작가로서의 두각을 드러냈다.


그리고 군 복무 중에 틈틈이 창작활동을 펼쳐 작가로서의 명성을 쌓았다. 이후 그는 중국작가협회 소속 1급 작가로 활약해 왔다.


주요 작품으로 장편소설 <물처럼 단단하게(堅硬如水)>(2001) <레닌의 키스(受活)>(2004) <딩씨 마을의 꿈(丁莊夢)>(2006)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爲人民服務)>(2005) <풍아송(風雅頌)>(2008) <사서(四書)>(2011) <작렬지(炸裂誌)>, 산문집 <나와 아버지(我與父輩)> 등이 있다.           


일광유년 줄거리

<일광유년(日光流年)>은 옌롄커가 1998년에 쓴 작품으로 중국 산골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비극사를 3대에 걸쳐 그려낸 역순행적 구성의 소설이다.


이 소설은 옌롄커 스스로 가장 큰 전환점이자 가장 기념할 만한 글쓰기 프로젝트라고 평가했다. 소설은 총 5부로 나누어져 있다.     


1부 천의(天意)에 주석을 달다

2부 낙엽과 시간

3부 갈황민요(褐黃民謠)

4부 젖과 꿀

5부 가원(家園)의 역사          


<일광유년>의 시대적 배경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년(1949년) 전후이며 공간적 배경은 하남성 가상의 골짜기 마을 싼씽촌이다.

    

일광유년 책표지


중국 바러우산맥의 깊은 골짜기에 쓰마(司馬) 씨, 란(藍) 씨, 두(杜) 씨 세 성으로 이루어진 삼성촌(三性村)이 살고 있었다.


이 마을에는 희한한 풍토병이 있는데 그것은 마흔이 되기 전에 목구멍이 막혀서 죽는 것이다.      


‘목구멍 병’이라고 부르는 이 병은 목구멍 안이 부어올라 마시지도 먹지도 못하다 결국 숨이 막혀 죽게 된다.      

촌장들은 죽음을 막기 위해 저마다의 방법으로 마을의 문제점을 고쳐나가려고 분투한다.     


마을의 인원은 고작 200명 내외에 불과하기에 마을 자체의 힘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웠다.


마을 사람들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도구를 살 돈을 모아야 했는데 피부를 팔거나 매춘하는 등 정상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돈을 모은다.     


1부에 등장하는 촌장 쓰마란은 ‘링인거’라는 둑을 뚫어 마을에 깨끗한 물을 공급하려고 하고 3부에 등장하는 촌장 란바이수이는 마을의 흙을 갈아엎어 계단식 논밭을 일구려 한다.


그 과정에서 마을 사람들에게 참혹한 일들이 닥친다.     


주인공인 쓰마란(司馬藍)을 중심으로 아름다운 여인, ()쓰스와 질투심이 많고 못생긴 여인 ()주추이 사이에서 많은 이야기들이 가지를 친다.     


이 책은 1부가 가장 최근의 일, 그리고 5부가 쓰마란이 태어나기 직전으로 돌아가 이야기가 전개되기에 거꾸로 5부부터 읽어도 되는 책이다.     


1부 천의(天意)에 주석을 달다

산씽촌의 현 촌장 쓰마란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39살이 되어 목구멍 병에 걸린 쓰마란은 ‘황제내경’ 같은 전통 의학에 의존했다가 실패하자 외부 병원 치료를 시도한다.


병원비가 부족하자 마을 주민들은 피부이식을 하여 돈을 보태기도 하고 그의 연인 란쓰스는 성매매하여 돈을 보탠다.      


쓰마란은 마을의 가장 아름다운 여인인 란쓰스를 어릴 때부터 사랑하여 아내로 맞고 싶었지만, 권력을 위해 두주추이와 결혼한다.


두주추이는 영양실조에 걸린 어린아이처럼 깡마르고 아주 못생긴 여인이다.      


쓰마란은 두주추이가 싫어서 그녀를 함부로 대하지만 그녀는 아내로서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 성심성의껏 그를 위한다.      


쓰마란은 병을 고쳐 돌아왔으나 란쓰쓰가 성매매를 하다 옮겨온 몹쓸 병에 걸려 죽음을 맞는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쓰마란이 죽음을 맞게 되었다. 마을 촌장인 쓰마란은 무려 서른아홉 살까지 살았다. 죽음이 기왓장처럼 쿵 하는 소리를 내며 자기 머리 위로 떨어지자 그는 죽음이라는 것이 예정된 대로 찾아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선명하고 생동감 넘치는 이 세상을 떠나야 했다. <일광유년 본문 p.16>          


관 사진


2부 낙엽과 시간

쓰마란이 촌장이 되어 마을을 변화시키려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가 사랑하는 란쓰스와 결혼하지 않고 마을 사람들이 꺼리는 못생긴 여인 두주추이와 결혼하기까지의 과정이 나온다.      


쓰마란은 촌장이 된 후 마을을 도망치는 여자들을 잡아다 매질하고 강제로 결혼시킨다.     


그는 40세 이상의 수명을 목표로 수로 공사를 시작하지만, 공사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집마다 돈이 될 만한 것들을 모두 마을 공동 경비로 착출 한다.


그래도 공사경비가 부족하자 공사에 참여하지 못한, 다치거나 아픈 남자들의 피부를 팔게 하고 여자들은 성매매를 강요해 자금을 벌어오게 한다.      


화상 환자에게 이식해 줄 피부를 팔아 1/10은 본인과 가족들이 쓰고, 나머지 9/10는 마을 공동 자금으로 내는 것이다.


이들은 피부를 도려내어 파는데 피부를 한 번 팔면 2년 치의 생활비를 마련할 수 있다.      


이 부분에서는 <허삼관매혈기>에서 피를 뽑아 생계를 연명하는 허삼관이 떠올랐다.     


많은 사람의 희생으로 대규모 수로 공사가 시작되지만, 정작 완료 후에 흘러나오는 물은 악취가 가득한 구정물이었다.


또 물을 방류하러 간 사람 중 한 사람이 물속에서 시체로 떠오른다.


그들이 수원지로 꼽았던 도시는 이미 양옥집과 공장들이 가득했고 맑았던 물은 오염될 대로 오염되었는데 그 물을 공들여 끌어온 셈이었다.     


2부는 마을 주민들의 희생과 비극, 권력의 남용이 강하게 묘사되고 있다.     


3부 갈황민요(褐黃民謠)

이전 촌장이었던 란(藍)쓰스의 아버지 란(藍)바이수 시절에 벌어지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는 목구멍 병의 예방책으로 토양 교체를 주장하며 대규모 토지 개간 작업을 추진한다.      


현의 시범사업으로 루주임이란 사람의 도움으로 계단식 전답도 만들고 흙을 교체하는 사업도 벌인다.


루주임이 공사를 중단시키자 여자를 보내 성(性) 접대를 하는 장면도 있다.


그러나 루주임의 도움으로 시작한 공사가 결국 실패하면서 마을 사람들의 삶은 더 큰 혼란에 빠지게 된다.      


4부 젖과 꿀

4부는 그 이전 촌장인 쓰마란의 아버지 쓰마(司馬)샤오샤오 시절에 벌어지는 마을의 재앙 이야기가 전개된다.

      

당시 쓰마란의 나이는 7살이다.      


메뚜기떼들이 하늘을 덮을 정도로 몰려와 모든 들판이 황폐화되자 마을 사람들은 견디기 힘든 대기근을 맞는다.


이 시절에는 유채밭에서 나온 기름을 통해 수명 연장을 꿈꾸던 시기라 마을 사람들은 모두 유채밭에 매달린다.      


먹을 것이 없자 사람들은 쥐와 죽은 메뚜기를 식량으로 먹는다.      


그래도 식량이 부족하자 촌장은 자신의 세 아들을 포함하여 마을의 장애아 수십 명을 몰래 산골짜기에 내다 버린다.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수만 마리 까마귀들이 달려들어 죽어가는 아이들을 쪼아 먹는다.


촌장은 아이들의 시체를 미끼로 모인 까마귀들을 몽둥이로 때려잡아 식량을 조달한다.


까마귀


이 부분에서는 모옌의 소설에서 사람을 잡아먹은 개를 다시 사람이 먹는 장면이 겹쳐졌다.     


또 소금이 없어 사람들이 배탈이 나자 피부를 팔아서 소금을 사 온다. 그래도 기근이 사라지지 않자 귀환계약서를 만들어 사람들을 외지로 보내 돈을 벌어오게 한다.     


이 장에서는 인간성의 비극과 생존의 잔혹함이 처절하게 드러난다.      


5부 가원(家園)의 역사

이전 촌장이었던 두주추이의 아버지인 두(杜)상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는 은빛 수염이 길게 자란 84세의 할아버지로 마을의 장수를 위해서는 유채 기름을 먹어야 한다며 유채 기름의 중요성을 주장한다.


유채꽃밭


그는 죽어가면서 아이를 많이 낳아야 마을이 번성한다고 유언을 남긴다. 이후 마을에는 임신한 부인들이 넘쳐난다.      


마을은 다산을 목표로 하지만, 인간 본능과 생존 본능의 갈등 속에서 희생과 생존의 어려움이 더욱 부각된다.

     

쓰마란이 란쓰스 엄마의 젖을 나누어 먹고 크게 되는 이야기와 쓰마란이 어머니의 양수 속에서 자궁 밖으로 나오는 이야기를 끝으로 소설은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마치 생명의 순환과 생존의 역설을 암시하며 이야기를 맺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쓰마란은 사람이 영원히 사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먹고 입는 것이 부실하고, 매일 괭이와 삽을 메고 일을 해야 하며, 광주리와 바구니마다 흙과 퇴비를 담아 날라야 한다고 해도 살아 있는 것이 죽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일광유년 본문 p.870>     


어느 날인지 모르지만, 죽는다는 말 한마디와 함께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해도 보지 못하고 달도 보지 못하며 바람 부는 것과 비 오는 것도 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나무 위에서 참새들이 다투는 것도 볼 수 없고 마당에서 닭과 개가 먹을 것을 놓고 다투는 모습도 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남들이 자신을 부르고 흔들어도 그는 빛나는 수의를 입고 관 속에 누워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일광유년 본문 p.870>     


<일광유년의 주제>

<일광유년>은 한 마을의 대를 잇는 참혹한 세월을 기록하며, 권력과 성과 생육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담아낸 소설이다.     


문명에서 외따로 떨어져 있는 마을 산씽촌. 그곳에서는 몇 대에 걸쳐 원인 모를 목구멍 병이 횡행하고 있다.

      

이 때문에 길어야 마흔까지밖에 못 사는 마을 주민들은 그 병의 기원과 예방법을 파헤치려 대규모의 노력을 기울인다.      


소설은 그 어둠의 역사 속에서 삶과 한 몸인 죽음에 대해 뜨겁게 성찰하고 있다.     


옌롄커는 말한다.     


소설에서 죽음이 곧 삶이고, 삶이 곧 죽음입니다. 시간을 역류시킨 건 삶과 죽음에 대한 사유에 기인하기도 하지만, 특별한 구조와 서술을 희망했기 때문이지요. 문학과 예술의 창의성을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제 소설이 새로운 시간관과 서사방식을 갖출 수 있기를 희망했고, 그래서 이야기의 역류’, ‘역전서사의 방식을 시도한 것이죠.”     


옌롄커는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산씽촌이 소설에 나오게 된 동기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산씽촌은 완전한 상상의 공간입니다. 산씽촌이 생겨나게 된 것은 제가 유년시절부터 죽음에 대해 극도의 두려움을 갖고 살아온 사람이기 때문이죠. 저는 항상 인생 허무주의에 빠지곤 했어요. 장기간에 걸친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서른 살부터 시작된 요추 및 경추 질환이 더해졌고요.”     


옌롄커는 이 소설에 중국의 토지개혁과 대약진운동, 문화 대혁명, 개혁개방 등 정치사회적 상황을 배경으로 3대에 걸친 처절한 생존기를 녹여냈다.


옌롄커는 삶과 생명이란 죽음을 전제로 하는, 죽음의 다른 이름이라고 말한다.     


옌롄커의 작품 소개

<물처럼 단단하게(堅硬如水)>(2001)


<물처럼 단단하게 책>

낮에는 혁명을, 밤에는 사랑을!     


1960~70년대 중국 문화 대혁명을 배경으로 욕망과 야망을 불태운 두 남녀가 구시대적 사상, 문화, 풍속을 척결하는 내용이 펼쳐진다.


억압된 욕망이 낳은 혁명의 시대와 혁명적 사랑을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은 군부 사회와 그 내부의 권력 구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주인공은 중국 군대의 장교로, 그와 그의 가족이 맞닥뜨리는 사회적, 정치적 압력 속에서 개인적인 갈등과 도덕적 고민을 토로한다.     


전반부에서는 두 남녀가 하급 계급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반을 꾀하며 권력욕과 성욕이 결합되는 과정을, 후반부에서는 그들이 더 큰 권력의 치부를 숨기기 위해 희생양이 되는 파국을 그려냈다.
 

<레닌의 키스(受活)>(2004)

<레닌의 키스>의 원제는 ‘고통 속의 즐거움’을 뜻하는 ‘수활(受活ㆍ서우훠)’이다.


한여름에 내린 폭설로 장애인 마을이 큰 피해를 입는다.


이 마을을 구제하기 위해 관리와 마을 사람들은 장애인 묘기 공연단을 조직, 레닌의 유해를 사 오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레닌의 키스 책>


허구의 마을을 배경으로 주민들이 정부의 ‘레닌의 석고상’을 가져와 관광 명소로 이용하려는 기이한 계획을 세운다.


마을 사람들은 이를 통해 경제적 혜택을 얻으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사회적 충돌과 부패가 발생하며 현대 중국 사회의 여러 부조리를 비판하고 있다.     


옌렌커는 이 소설 속에 혁명주의자와 반혁명주의자의 치열한 대립 등을 넣었는데 자연스럽게 중국의 근현대사가 겹쳐진다.     


이 소설은 27년간 직업군인이었던 옌롄커를 군대에서 옷 벗고 나오게 했던 바로 그 문제의 작품이다.      


<딩씨 마을의 꿈(丁莊夢)>(2006)

<딩씨 마을의 꿈>은 아시아 소설 중에서도 주목할 만한 사회 비판적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 2014년에는 맨부커 국제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딩씨 마을의 꿈 책>


이 책은 중국 허난성에서 실제로 일어난 에이즈 사건을 모티브로 했으며, 현실을 직면으로 다뤘다는 이유로 중국 내에서 금서가 된 책이다.     


<딩씨 마을의 꿈>은 허난성의 작은 마을에서 에이즈가 창궐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농민들은 피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려 하고, 이러한 상황에서 주인공의 가족은 병에 걸리게 된다.


중국의 경제 발전과 사회적 희생, 그로 인한 윤리적 딜레마를 심도 있게 묘사하고 있다.     


옌롄커는 중국의 한 마을에서 비위생적인 헌혈 바늘을 사용해 에이즈에 집단 감염된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 특히 자본주의라는 유토피아적 환상이 처참하게 붕괴되는 풍경을 세밀하게 묘사해 냈다.


피를 사고파는 과정에서 딩씨 마을 전체가 에이즈에 점령당하는 지독한 현실을 이미 죽어 땅에 묻힌 열두 살 소년의 시선으로 그려낸 이 작품은 리얼리즘과 판타지가 결합된 21세기 중국 문단 최고의 문제작이다.     


옌롄커가 자신의 작품 중 단연 최고라고 자부하는 <딩씨 마을의 꿈>은 국가의 명예를 손상시켰다는 이유로 금서가 되었다.     


사실 작가는 검열을 피해 중국이 아닌 허구의 공간으로, 다큐멘터리가 아닌 소설 장르로 작품을 썼지만 정부의 눈을 속일 수 없었다.


후일 작가는 “사실 그대로 작품을 쓰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실패지만 그마저 금서로 지정될 줄 알았다면 원래 구상대로 썼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爲人民服務)>(2005)

마오쩌둥 시절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상급자의 부인과 불륜에 빠진 한 병사의 이야기를 통해 중국 공산주의 체제의 이면을 드러내고 있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영화 포스터>


“인민을 위해 봉사하라”라는 슬로건이 조롱과 풍자의 도구로 사용되며 정치적, 사회적 비판을 담고 있다.

     

2005년에 발표된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군부대 내에서 발생한 권력욕, 인간적 욕망, 성욕 등이 한데 얽힌 이야기로 통속 소설들과 달리 사물과 심리 묘사가 뛰어나다.      


혁명의 성스러운 언어를 가장 낭만적 수사로 풍자해 낸 이 작품은 “쾌락의 끝을 향해 치닫는 남녀의 사랑 행위와 문화 대혁명의 집단적 광기를 대비시킴으로써 혁명 서사에 억눌렸던 인간의 감성을 부활시킨 옌롄커의 대표적 걸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동명의 영화가 만들어져 상영되었다.   


<풍아송(風雅頌)>(2008)  

옌롄커 부조리 서사문학의 결정판으로 중국 당대 문학에서 최초로 지식인계를 전면적으로 다룬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대대적인 논쟁을 불러일으킨 작품이다.      

<풍아송 책>


베이징 대학을 겨냥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던 이 작품은 대학에 대해, 교수들에 대해, 오늘날 중국 지식인들의 나약함과 무력함, 비열함과 불쌍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시경》에서 주요한 형식과 내용의 모티브를 가져온 이 작품은 바러우산맥의 시골 출신이지만 현재 입신양명하여 베이징 유명 대학의 교수이자 《시경》을 연구한 권위자인 양커 교수를 주인공으로 귀향에 대한 염원과 지식인의 정신적 고향 상실에 대해 이야기한다.      


시경》에 나오는 내용별 분류 체제를 가리키는 ‘풍아송’의 체제를 차용해 소설 형식을 변주하여 밀도감 있는 심리 묘사와 빠른 이야기 전개로 양커 교수가 자신의 붕괴된 학문적 이상과 누락되어 사라진 시, 황폐해진 사랑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사서(四書)>(2011)

이 책은 중국 문화 대혁명 시기에 이루어진 지식인 탄압을 다룬 내용으로 인해 중국 공산당 정권을 모욕했다는 이유로 금서가 되었다.     


<사서 책>


문화 대혁명 당시 황허강변에 자리 잡은 강제노동수용소 99구.      


사상이 불충하다는 중앙 정부의 판단이 내려져 그곳에 보내진 종교인, 교수, 예술가, 작가, 과학자 등의 지식인들.      


‘작가’는 자진해서 <죄인록>이라는 밀고서를 쓴다. 그리고 동시에 <죄인록>을 쓰라고 받은 종이와 잉크를 일부 빼돌려 남몰래 자신의 최대 걸작 <옛길>을 쓰기 시작한다.     


이 책은 문화 대혁명으로 말살당한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려는 어느 지식인의 처절한 글쓰기를 보여준다.     

이 작품은 사서, 즉 네 권의 책인 <죄인록>, <옛길>, <하늘의 아이>, <시지포스의 신화>를 액자 소설처럼 배치하여 각기 다른 인물과 장르를 넘나들며 서사를 진행시킨다.      


미완의 장편소설, 일부 삭제된 정부 보고서, 미완의 철학 연구서, 신화적 상징을 내포한 장편소설을 겹쳐가며 문화를 혁명한다는 이름으로 국가 차원에서 금지당하고 부정당했던 인민들의 이야기를 복원시켰다.     


<나와 아버지(我與父輩)>

이 책은 옌롄커의 자전적 에세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그간 저자가 써온 수많은 작품의 밑바탕이 된 자신의 실제 이야기를 어떤 기교와 기술도 없이 평범하고 소박한 언어로 담아냈다.  

    

<나의 아버지 책>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혹독한 자연재해로 3년 동안 이어진 보릿고개와 문화 대혁명 시기의 혼란, 끝나지 않는 도시 농촌의 빈부 격차 속에서 굶주리고 가난했지만 살아 있기 위해 노력하며 살았던 아버지 세대의 삶을 적었다.     


농촌을 떠나 도시로 가게 되기를 갈망하던 저자의 유년, 소년 시절과 낮이나 밤이나 일을 해야만 자신이 살아있음을 체감하고 생존의 의의를 깨달을 수 있었던 아버지를 추억한다.


더불어 자신의 넷째 삼촌의 일생을 빌려 삶이 무엇이고 행복이 무엇인지 이야기하는 등 오로지 자신의 내면에 충실한 글쓰기로 지나온 세월을 되새기고 있다.     


영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2022)

영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옌롄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우리나라 영화다. 원작 소설의 깊이가 많이 사라졌다는 평을 받았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영화 포스터와 스틸 사진>


모범 사병으로 사단장 사택의 취사병이 된 무광(연우진), 그의 목표는 오직 아내와 아이를 위해 출세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사단장이 출장을 간 사이 사단장의 젊은 아내 수련(지안)이 무광을 유혹해 오기 시작하고. 무광은 자신의 목표와 신념, 그리고 빠져보고 싶은 금기의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기 시작한다.     


영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은밀하게 위대하게’를 연출한 장철수 감독의 9년 만의 신작이다.     



중국 여행기를 정리하며

최근 중국을 여행하기가 수월해졌다. 한시적이긴 하지만 11월 8일부터 12월 31일까지 중국을 비자 없이 여행할 수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


가고 싶은 곳은 많지만, 올해는 할 일이 많아 그림의 떡이 되었다.


중국 공원
공원이나 유적지에 가면 사람의 이름을 써서 달아놓은 나무들이 많다


내가 가본 중국은 북경과 광저우, 항저우 그리고 산둥성이 전부다. 가고 싶은 곳은 장가계, 황산, 계림, 시안, 낙양 등으로 다녀온 곳보다 월등히 많다. 사실 다 갈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광저우에서 보았던 시안의 병마용

물론 책과 인터넷만 있으면 전 세계 어느 곳이든 앉아서도 여행할 수 있지만 백문이 불여일견(百聞 不如一見)이라고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훨씬 낫다는 것을 모르지 않기에 여행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는다.     


중국 역사에서 왕조의 도읍으로 융성했던 대표적인 고도(古都)는 모두 7군데다.


당나라 때의 장안(시안), 청나라 때의 베이징, 한나라의 뤄양(낙양), 명나라의 난징, 북송 때의 카이펑, 은나라의 안양, 남송의 항저우.     


“중국의 100년을 보려면 상하이, 600년을 보려면 베이징, 3000년을 보려면 시안, 그리고 5000년을 보려면 허난성을 가 봐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러니 최소한 중국을 알기 위해서는 상하이와 시안, 허난성을 두루 답습해야 한다. 꼴랑 세 번 중국을 다녀와서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마카오가 바로 건너편에 보이는 주해


그중 오늘의 주인공인 옌롄커 작가가 태어난 허난성 뤄양은 삼국지의 주요 배경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      


허난성에는 그 유명한 소림사와 룽먼(龍門) 석굴도 있다.


2300개가 넘는 석굴은 다 돌아볼 수도 없을 것이고 하루만 돌아다녀도 다리가 아파서 주저앉을 것 같다.


석굴에 만들어진 불상이 10만 개를 웃돈다고 하니 중국이라는 나라는 정말 스케일에서는 따라잡을 수가 없다.     


그러나 중국에서 인신매매, 장기 밀매와 관련된 괴담이 많은 지역 역시 허난이라 중국인들조차 허난으로 가는 것을 매우 꺼려해서 멀리 돌아간다는 말도 생겼다.     


또 ‘허난 사람(河南人)’이라는 말은 중국어로 못 믿을 사람, 속내가 시커먼 사람이라는 말과 같은 지역감정을 담고 있는 말이며, 실제로 중국공산당원이 되거나 대기업에 취직할 때 허난 출신은 불이익을 받는다는 소문도 있다.


물론 내가 직접 확인한 것은 아니며 자료를 취합하다가 어디에선가 읽은 글이다.     


하필이면 내가 가장 많이 갔던 나라가 미국과 중국이다. 두 나라의 크기는 우리나라와 비할 바가 되지 못한다.

광저우, 경치가 좋아서 찍었는데 어디인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소수민족의 전통혼례식을 보며


그야말로 어마무시하게 크고 넓다. 우리나라는 어지간히 다녔다고 자부하지만, 아직도 구석구석 가보지 못한 곳이 있고 보면 두 나라야 말해 무엇하랴.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경의 만리장성, 광저우의 민속촌에서 본 소수민족의 생활상, 항저우의 서호, 산둥성의 5.4 광장 등은 다시 한번 가보고 싶은 장소의 리스트에 들어 있다.     


<책과 꽃, 여행지가 있는 풍경>은 원고 분량이 많아 이미 한 권 분량을 훌쩍 넘겼다. 나야말로 이렇게 쓰다가는 1권이 2권으로 나누어 나오게 생겼다.


물론 쓸데없는 글을 정리하면 한 권으로도 충분할지 모르겠다. 앞으로 몇 편만 더 쓰고 이제 1권을 마무리할 생각이다.


그리고 2권에서는 국내로 눈을 돌려 남의 구역이 아닌 내 구역에서 글을 쓰고 싶다.     


이번 호는 옌롄커를 넣고 싶어 쓴 글이라 이만 마무리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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