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곡>의 처음 인쇄본은 1472년 4월 11일, <라 코메디아 디 단테 알레기에르(La Comedia di Dante Alleghieri)>이며 이탈리아 페루자의 폴리뇨(Foligno)에서 나왔다. 또 1477년 베네치아에서 나온 판본도 <라 코메디아(La Comedia)>였다.
이처럼 <신곡>의 원래 제목은 <LA COMMEDIA DI DANTE ALIGHIERI>로, 번역하면 <단테 알리기에리의 코미디(희극)>다.
여기서 쓰인 코미디라는 장르는 결말이 비극과 반대인 해피 엔딩으로 끝났기 때문에 쓰였다. 단테가 지옥에서 연옥으로 갔다가 다시 천국으로 갔으니 해피 엔딩인 것이다.
그러나 최초로 희극(Comedy)이란 장르를 개발했던 그리스인 작가들은 권력을 가진 힘 있는 자들을 풍자해서 웃겼다. 그것이 진짜 코미디였다. 당연히 통치자들은 코미디가 좋을 리 없었다.
그래서 코미디언들을 도시에서 멀리 쫓아내어 그들은 시골을 돌아다니며 공연해야 했는데 바로 이것이 코미디의 기원이다.
즉 단테는 자신의 작품이 중세의 체제를 뒤흔드는 기존의 질서에 저항하는 위협적인 책이라는 생각으로 제목을 <LA COMMEDIA DI DANTE ALIGHIERI>로 정한 것이다.
실제로 단테가 신곡을 쓰던 시기는 정든 피렌체를 떠나 유럽의 여러 나라들과 이탈리아 곳곳을 순례하면서 때로는 거친 음식을 얻어먹기도 하고 때로는 시를 읊어 연명하는 지옥과 같은 삶을 살았다. 그래서 일부러 코미디라고 썼던 것이라 추측된다.
<베로나의 단테>- 안토니오 코티 작품
단테는 천국편에서 자신을 추방한 피렌체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오랜 세월 뼈를 깎는 듯한 고생을 거듭해 몸도 야위었지만,
그 옛날 아직 어린양이었던 시절
저 아름다운 양 우리(피렌체)에서 자던 나를 몰아낸
흉악한 이리들의 잔혹 무도함을
만약 이 시가 무찌를 수 있다면
그때는 목소리도 머리털도 이미 변해버렸을 것이지만, 나는
거기 시인으로 되돌아가 나의 세례당의 우물가에서
머리에 관을 쓰게 되리라.
이 시를 보면 단테가 피렌체에서 추방된 고통으로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또 제목이 <신곡>으로 바뀌게 된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바로 단테의 추종자인 보카치오 때문이다.
보카치오(출처 - 네이버)
보카치오는 단테의 숭고한 주제와 신성함을 강조하기 위해 제목 앞에 ‘신성한’이라는 형용사를 추가하여 <La Divina Commedia>라고 썼다.
이 용어는 16세기에 이르러 엄청난 문화적, 학문적 중요성을 갖게 되면서 표준이 되었다.
<데카메론>의 저자인 보카치오(Giovanni Boccaccio)는 평생 단테를 연구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으며 <신곡>을 필사한 사람이다.
단테에 대한 깊은 존경심
보카치오는 단테의 시와 세계관에서 깊은 영감을 받았다. 그는 <코미디>를 단지 문학적 걸작이 아니라 특별한 도덕적, 신학적 중요성을 지닌 작품으로 여겼다.
그의 눈에는 신성한 정의, 구원, 인류와 하나님의 관계라는 주제가 일반적인 문학적 경계를 초월한 것으로 보였다.
단테의 명성 높이기
당시 단테는 여전히 문학 천재로 명성이 자자했다. 보카치오는 <신곡> 앞에 ‘신성한’을 붙여 부름으로써 <코미디>의 비범한 성격을 강조하고 이를 신성하거나 고귀한 문학과 일치시켰다.
이는 단테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한 사람이라는 입지를 확고히 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보카치오의 단테 강의
보카치오는 1370년대 피렌체에서 <코미디>에 대한 공개 강연을 시작했고 이후 죽을 때까지 단테를 알리는 강의를 했다.
강의에서 그는 단테의 정신적, 예술적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일관되게 ‘신성한’ 작품이라고 언급했다.
이 용어는 인기를 끌었고 이후 학자와 독자들은 이를 제목으로 채택했다.
문화적 맥락
르네상스 시대 학자들은 고전적 이상을 되살리고 평범한 인간의 창의성을 초월한 작품을 인정하려고 노력했다.
<코미디>를 ‘신성한’으로 분류한 것은 특별한 인간 업적, 특히 신성하고 영원한 주제를 다루는 업적을 축하하려는 르네상스의 이상과 일치했다.
결국 보카치오의 존경심은 단테의 작품을 동시대와 미래의 관객 모두의 눈으로 끌어올리려 했고 그의 노력은 이 작품을 <신곡(Divina Commedia)>으로 부르는 데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후 이 제목은 그 웅장함과 지속적인 영적 중요성을 강조하는 제목이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신곡>으로 쓰지 않는 판본도 존재한다.
후세 사람들은 조반니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을 ‘인곡(人曲, Human comedy)’이라 부른다.
<데카메론>은 피렌체에 퍼진 페스트를 피하기 위해 피에솔레 언덕에 모인 젊은 남녀 10명이 10일 동안 하루에 하나씩 100편의 이야기를 주고받는 이야기를 다루었다.
'데카메론'이라는 말에는 그리스어로 '10'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우선 모인 인원이 10명이고 10일 동안 100개의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이야기의 주제는 날마다 정해져 있으며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춤과 노래로 마무리 한다.
단테 역시 '10'을 완전체로 보아 <신곡>도 총 100곡으로 되어 있다. 일부 사람들은 보카치오가 단테를 따라 했다는 말을 하기도 하나 워낙 단테를 좋아했던 보카치오가 일부러 단테와 똑같은 방법으로 했다는 말이 더 지배적이다.
<신곡>의 지옥편
제7환: 폭력
7환은 폭력 행위를 저지른 사람들이 있는 곳이다. 이곳은 세 개의 고리로 나누어져 있으며 각각 다양한 유형의 폭력이 있다.
이곳은 폭력이 대상에 따라 분류되는 단테의 죄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적 관점을 반영하고 있다.
첫 번째 고리에는 타인에 대한 폭력을 가한 자들이 있다.
그들이 지은 죄는 살인자, 전쟁광, 타인에게 신체적 위해를 가한 죄이다.
죄인들은 그들이 일으킨 유혈 사태를 상징하는 끓는 피의 강(플레게톤)에 잠겨있다. 이때 피의 강에 잠긴 깊이는 범죄의 강도에 비례한다.
켄타우로스는 강둑을 순찰하다가 할당된 수심 이상으로 올라오는 사람들에게 화살을 쏜다.
등장인물은 알렉산드로스 대왕, 디오니시우스 1세, 에첼리노 다 로마노, 오피초 다 에스테, 구이도 드 몽포르, 아틸라, 피로스 1세, 섹스투스 폼페이우스 등이다.
두 번째 고리는 자신에 대한 폭력(자살)을 행한 자이다.
그들의 죄는 자살 및 자신의 생명이나 재산을 낭비한 것이다. 타인에게 폭력을 휘두른 자가 지옥에 가는 것은 당연하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살자 역시 당대 기독교에서 범죄로 취급되었다.
그들에게 내려지는 처벌은 영혼은 황량한 숲에서 울퉁불퉁하고 가시가 많은 나무로 변하는데 하피(반은 여자이고 반은 새인 생물)가 나무를 먹어 고통을 준다.
또한 이들은 스스로 육신을 버렸기에 최후의 심판 때 자신의 몸을 되찾지 못하고 나무가 된 자신들의 가지에 자기 육신을 매달게 된다. 그래도 그냥 자살자는 몸을 찾지 못하는 것으로 끝이지만 재산 탕진자들은 숲 속에서 괴물 개들에게 쫓긴다.
다만 신념에 따라 자살한 사람들은 예외다. 예를 들어 로마 시대 카이사르에 맞서 공화정을 옹호하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카토를 들 수 있다.
단테는 자신의 비극적인 운명을 설명하고 자신의 선택에 대한 후회를 표현하는 영혼과 대화를 나눈다.
등장인물은 하르피아, 피에르 델라 비냐, 자코모 다 산토 안드레아, 라노 등이다.
세 번째 고리는 신, 자연, 예술에 대한 폭력을 행한 자가 가는 곳이다.
이들의 죄는 신성모독(신에 대한 폭력), 남색(자연에 대한 폭력), 고리대금(예술과 산업에 대한 폭력) 등이다.
신성모독자는 뜨거운 사막 위에서 불의 비를 맞으며 고통받고 있다.
소돔 사람들은 맹렬한 비가 내리는 곳에서 목적 없이 방황한다.
고리대금업자들은 불타는 비 아래 앉아 목에 걸고 있는 지갑을 바라보고 있는데 이는 부에 대한 집착을 상징한다.
등장인물은 카파네우스, 브루네토 라티니, 프리시아누스, 프란체스코 다코르소, 안드레아드 모지, 구이도 구에르라, 야코포 루스티쿠치, 테기아이오 알도 브란디 등이다.
<최후의 심판> 미켈란젤로 작품
제8환 : 사기
말레볼게(Malebolge-‘사악한 주머니’)라고 불리는 8환은 지능과 속임수가 필요한 사기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위한 곳이다.
이곳은 10개의 볼게(도랑)로 나누어져 있으며, 각각은 서로 다른 사기꾼 영혼 그룹들이 있다.
제1원 - 금전 등을 목적으로 하여 남을 성적으로 착취한 인신매매자, 뚜쟁이들 등이 악마들에게 채찍을 맞으며 고통스러워한다. 등장인물로 이아손, 베네티코 카치아네이코 등이 있다.
제2원 - 아첨꾼들은 오물에 처박혀 역한 냄새를 맡고 오염된 손으로 자신의 몸을 긁으며 신음하고 있다. 등장인물은 알레시오 인테르미네이, 타이데 등이다.
제3원 - 성직 매매자들, 즉 종교를 상업적으로 이용한 자들이 거꾸로 처박히고 발에 불이 붙어 괴로워하고 있다.
다음 대상자가 이 지옥에 떨어지면 이전에 벌을 받던 죄인은 밑으로 떨어진다.
여기서 단테는 자신의 죄를 뉘우치지 않는 한 성직자를 일갈하여 그가 괴로움에 흐느끼게 만든다.
등장인물은 교황 니콜라오 3세, 교황 보니파시오 8세, 교황 클레멘스 5세 등이다.
제4원 - 미신을 이용한 마법사, 점쟁이, 거짓 예언가들이 머리가 뒤로 뒤틀린 상태로 걷고 있다. 하나같이 울고 있는데 그 눈물이 엉덩이를 적시고 있다고 묘사되어 있다.
등장인물은 암아라오스, 테이레시아스, 아론타, 만토, 칼카스, 에우리 필로스 등이다.
제5원 - 탐관오리(부패한 정치인들)들이 끓는 역청 속에 빠져 있다. 빠져나오려고 하면 악마들이 갈기갈기 찢어버린다.
악마들은 인간인 단테를 잡으려고 하지만 악마의 대장이 그들을 막으며, 단테와 베르길리우스 일행을 에스코트해 줄 악마 열 명을 뽑아준다.
제2구역 ‘안테노라’(안테노르의 이름을 따서 명명) : 국가나 정당을 배신한 자들. 즉 매국노·역적들이 가는 곳으로 죄인들은 목까지 얼어붙어 머리를 움직일 수 없다.
등장인물은 보카 델리 아바티, 베케리아, 가넬로네, 파엔차, 테발델로, 솔다니에르 등이다.
제3구역 ‘프톨로메아’(프톨레마이오스의 이름을 따서 명명) : 손님(은인)을 배반한 자들을 위한 곳으로 완전히 얼음 속에 갇혀 영원히 움직이지 못한다.
손님을 해한 자들은 그 즉시 영혼이 지옥에 떨어지고, 지상에 남은 육신은 남은 일생 동안 악마가 차지해 살아간다는 식으로 묘사된다. 왜 손님을 배신한 죄가 따로 있고 심한 벌을 받는지는 이탈리아 접대 관습에 따른 것이다.
등장인물은 루지에리 추기경, 우골리노 델라 게라르데스카, 알베리고, 브랑카 도리아 등이다.
제4구역 루시퍼의 영역 : 지옥의 중심에는 루시퍼(사탄)가 얼음 속에 있으며, 가장 큰 반역자인 가룟 유다(예수를 배반한 자), 브루투스, 카시우스(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배신자)가 있다. 이 루시퍼의 세 얼굴은 삼위일체를 왜곡하는 궁극적인 악에 대한 단테의 상징적 표현을 반영한다.
이곳은 은인을 배신한, 배은망덕의 죄를 저지른 자들이 가는 곳이다. 이곳의 죄인들에게는 말을 걸 수도 없다. 괴물 루시퍼는 역사상 가장 큰 반역자인 가롯 유다, 브루투스, 카시우스를 씹어먹고 있다.
또한 루시퍼는 지구의 중심에 있기에 루시퍼의 하체 쪽으로 내려가면 남반구의 연옥 섬으로 갈 수 있다.
등장인물: 가롯 유다, 마르쿠스 브루투스,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루시퍼 등이다.
저기 드높이 가장 무서운
벌을 받는 영혼이 유다이니
그 골통이 쑥 들어가고 정강이만 쑥 내밀었구나.
머리를 처박고 있는 다른 두 놈 가운데 시꺼먼
부리에 대롱대롱 매달린 게 브루투스인데
그 비틀리고 말 없는 꼴을 보아 두려무나.
또 한 놈 몸집이 커 보이는 게 카시우스
허나 밤이 다시 접어드나니, 자, 이제
떠나야겠도다. 볼 것은 다 본 것이로다.
단테와 베르길리우스는 루시퍼의 몸을 타고 내려와 지구 반대편으로 나타나 연옥산으로의 여행을 시작할 준비를 한다.
연옥편
연옥(Purgatorio)은 3부 서사시의 두 번째로 인페르노(지옥)와 파라디소(천국) 사이에 있다. 연옥은 천국으로 향하는 영혼들이 자신의 죄를 깨끗이 하기 위해 고행을 겪는 도덕적 정화의 영역을 나타낸다.
연옥의 구조도
연옥은 바다 가운데 돌출한 분화구처럼 생겼는데, 영원히 정죄될 수 없는 자들이 죗값을 받는 지옥과 달리 지옥처럼 형벌은 있을지라도, 이곳에서 죄를 씻으면 천국으로 갈 수 있는 희망의 여지가 있는 곳이다.
연옥의 문지기는 소(小) 카토다. 카토는 자살했지만 지옥의 7환으로 가지 않았는데, 윤리에 대한 의무를 지켰다는 점을 높이 숭상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옥의 산을 오를 수는 없다고 한다.
연옥의 구조는 피라미드와 같은 형태로 각 층은 일곱 가지의 대죄, 즉 교만, 질투, 분노, 나태, 탐욕, 탐식, 색욕에 할당되어 있다. 참회가 늦었던 자들은 연옥에 바로 입장할 수 없고, 연옥의 바깥에서 파문 후 인생의 30배만큼(파문당했다가 뉘우쳤을 경우) 또는 자신의 인생만큼(참회에 태만했을 경우) 기다려야 한다.
연옥에서는 특히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가 중요하다.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를 하면 그들의 형량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옥 영혼들이 바라는 것은 그들이 뒤에 남기고 온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도 안에서 기억되는 것이다.
살아 있는 자들이 기도를 많이 하면 그들의 천국행은 빨라진다. 그래서 연옥 영혼들도 뒤에 남은 자들을 위해 기도한다.
지옥은 씻지 못할 죄를 짓는 사람이 가는 곳이라면 연옥은 죄를 씻는 곳이다. 이곳에서 교만, 질투, 분노, 나태, 탐욕, 탐식, 색욕의 죄를 씻게 되면 에덴동산으로 가게 된다.
연옥에 이르자 하나님의 천사가 금강석으로 만든 문지방 위에 앉아 있었다. 베르길리우스는 단테에게 눈짓하여 천사에게 연옥문을 열어달라고 부탁하라고 했다.
단테는 진실로 참회하는 자의 표시인 ‘내 탓이오’를 하면서 가슴을 세 번 두드렸다. 그러자 천사는 단테의 이마에 번쩍이는 칼로 일곱 글자를 새겨주었는데, ‘Peccati’(페카티)의 머릿글자인 P자로 새겨진 그 상처는 일곱 가지 죄악의 뿌리(오만, 시기, 분노, 태만, 인색, 탐욕, 애욕의 죄)를 상징한다.
P자는 단테가 각 층을 통과할 때마다 천사들이 하나씩 지워준다.
천사가 P자를 하나씩 이마에서 지워주면 몸이 한결 가벼워진다. 특히 교만은 7가지 죄 중에서 가장 무겁다. 질투는 남을 잃게 하고 분노는 나를 잃게 하지만 교만은 하나님을 잃게 하는 대죄에 속하기 때문이다.
연옥편은 지옥편에 비해 평화롭지만 사실 심한 형벌도 있다. 다만 힘들어도 속죄를 마치면 천국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어 희망이 있고 지옥과는 비교할 수 없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연옥의 구조
연옥 전 : 연옥산의 입구에 해당하는 곳으로 인생에서 회개를 미룬 영혼들이 올라가기 전에 기다려야 하는 산기슭 지역이다.
이곳에는 파문당한 자와 후기 회개자(죽음의 순간에 회개하거나 태만하게 생활한 자)가 머물고 있다.
정화의 일곱 테라스가 있는데 각 테라스는 일곱 가지 대죄 중 하나에 해당하며, 사랑에 대한 해로움에 대한 단테의 이해(그의 도덕적 틀의 중심 주제)에 따라 가장 작은 죄부터 가장 심각한 죄까지 배열되어 있다. 죄는 지옥편에 나타난 순서와 반대 순서로 정화된다.
첫 번째 테라스: 자존심—교만의 죄를 지은 영혼들이 등에 바위를 짊어지고 있다. 바위 무게가 어찌나 무거운지 가슴이 무릎에 닿을 정도이며 죄의 무게에 따라 바위의 무게도 다르다. 이곳에서 영혼은 자신을 낮추기 위해 무거운 돌을 옮긴다.
등장인물 : 오데리시
두 번째 테라스: 질투—질투의 죄를 지은 영혼들이 눈꺼풀을 철사로 꿰매진 채 벌을 받고 있다.
등장인물 : 사피아, 구이도 델 두카, 리니에르 다 칼볼리
세 번째 테라스 : 분노—분노의 죄를 지은 영혼들이 짙은 연기 속에서 벌을 받고 있다.
등장인물: 롬바르디아 사람 마르코
네 번째 테라스: 나태—나태의 죄를 지은 자들이 계속 달려야 하는 벌을 받고 있다.
등장인물: 산제노 수도원장
다섯 번째 테라스: 탐욕과 방탕—영혼은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자신의 잘못된 세속적 욕망을 반성하고 있다.
등장인물 : 교황 하드리아노 5세는 그가 살던 당시의 카페 왕조가 왕권 강화라는 명분 아래 온갖 더러운 정치공작과 모략을 일삼았다. 단테는 이런 행위를 탐욕으로 보았다.
스타티우스는 45~96년, 로마의 시인으로 속죄 기간이 끝나 단테 일행과 합류한다.
여섯 번째 테라스 : 폭식—탐식의 죄를 지은 자들이 절제의 열매를 묵상하는 동안 영혼은 배고픔과 목마름을 경험하여 비쩍 마른 모습으로 걸어가고 있다.
등장인물 : 포레세 도나티
일곱 번째 테라스: 욕정—색욕의 죄를 지은 영혼들이 불의 장막을 지나가는 벌을 받는다. 동시에 인사하며 서로의 죄를 각인시키고 있다.
등장인물 : 귀도 귀니첼리, 아르노 다니엘
지상 낙원(에덴동산) : 연옥의 꼭대기에서 단테는 지상 낙원에 도달하여 성서와 교리를 상징하는 행진을 목격한 후, 마침내 베아트리체를 만난다.
지옥과 연옥을 단테와 순례한 베르길리우스는 천국까지 단테와 같이하지 못하고 그를 베아트리체에게 인도하고 돌아간다. <신곡>에는 그 이유로 베르길리우스가 그리스도의 세례를 받지 못하고 죽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단테는 악을 잊게 해주는 레테 강물과 선의 기억을 되찾아주는 에우노에 강물을 마시고 드디어 천국으로 오르는 길을 떠난다.
연옥은 변화와 구원을 위한 인간의 능력을 상징한다. 즉 지옥에 있는 회개하지 않는 영혼들과는 달리, 연옥에 있는 영혼들은 개선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한다.
연옥의 전체 구조는 신적인 정의와 사랑을 변화시키는 힘에 대한 단테의 믿음을 반영하고 있다.
연옥은 지옥의 절망과 천국의 영광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하며 희망, 회개, 구원의 가능성을 강조한다. 결국 <신곡>은 인간의 도덕적 투쟁과 영적 쇄신을 향한 길에 대한 심오한 탐구를 제시한다.
천국(Paradiso) 편
단테의 <신곡> 서사시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부분이다. 천국편에서는 단테가 사랑하는 베아트리체의 인도를 받아 궁극적인 신의 비전을 향해 올라가는 천국 여행을 묘사하고 있다.
이곳에서 단테는 신성한 사랑, 정의, 그리고 하느님의 뜻에 따른 모든 창조물의 일치라는 주제를 탐구한다.
천국에 올라가기 전에 단테는 지상의 죄를 망각케 하는 레테 강에 몸을 씻고 선행의 기억을 새롭게 하는 에우노에 강물을 맛보는 정화과정을 거친다.
이윽고 수레를 탄 베아트리체가 모습을 드러내고, 천국 여행에 대비하여 자신과 그리핀의 눈에 비친 태양 빛을 단테의 눈에 반사시켜 눈을 단련시켜 준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 베르길리우스와 스타티우스에게 작별을 고하고 베아트리체의 안내를 받아 천국으로 오른다.
단테와 베아트리체
단테는 지옥과 연옥은 각각 3일씩 여행하지만 천국은 하루로 끝난다.
천국은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 모델에 해당하는 지구를 둘러싼 일련의 동심원 구로 묘사되고 있다. 이 구체는 물리적 위치가 아니지만 영혼의 세속적 공로와 미덕을 바탕으로 신과의 다양한 친밀도 수준을 반영한다.
천국의 모든 영혼은 신성한 행복 안에서 하나가 되지만, 그것을 경험할 수 있는 능력은 그들의 영적 완전성에 따라 다르다.
천국의 구조
천국은 낮과 밤이 없는 광명만 존재하는 곳이다. 천국은 아홉 개의 천구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은 특정 미덕과 연관되어 있고 천체에 의해 다스려진다.
이 구체 너머에는 신과 천사들의 거처인 황천이 있다. 단테는 이곳에서 고귀한 영혼들과 대화하며 천국의 비밀을 알아나간다.
천국을 묘사한 도식. 신곡이 쓰인 당대에는 천왕성, 해왕성은 발견되기 전이었으므로 등장하지 않는다.
천국은 옛 유럽인들의 믿음에 따라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겹의 하늘로 이루어진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각각의 죄에 따라 벌을 받는 지옥과 연옥처럼 각각의 선에 따라 행복을 누리고 있다. 사실 모든 영혼은 지고천에 살지만, 축복의 여러 계층을 단테에게 알려주고자 특별히 둘러본 것이다. 영혼들이 받는 축복은 모두 똑같다.
지구와 달의 중간 경로이자 불의 근원이 있는 곳이다. 연옥산을 비롯해 지구를 감싸고 있다.
월성천(Cielo della Luna, 달(변함)) : 착하긴 한데 끝까지 충실하지는 못했던 사람들이 머물고 있다. 대응되는 천사는 구품천사(Angeli).
등장인물 : 피카르다 도나티, 콘스탄자 왕비.
수성천(Cielo di Mercurio), 머큐리(야망) : 선한 일을 행했지만, 야심 있는 자들이 머물고 있다. 대응되는 천사는 팔품천사인 대천사(Arcangeli).
등장인물 : 유스티니아누스 1세, 로메오.
금성천(Cielo di Venere), 비너스(사랑)) : 사랑에서는 모범적이었지만 세속적인 열정으로 인해 산만해진 영혼들이 머물고 있다. 대응되는 천사는 칠품천사인 권품천사(Principati).
등장인물: 카롤루스 마르텔, 쿠니차 다 로마노, 포르케 드 마르셀, 라합.
태양천(Cielo del Sole), 지혜 : 하나님에 대한 지식으로 다른 사람들을 밝혀 준 지혜로운 자들 신학자, 학자, 현명한 교사의 영혼이 머물고 있다. 대응되는 천사는 육품천사인 능품천사(Potesta).
등장인물 : 토마스 아퀴나스, 대 알베르토, 그라치아노, 피에트로, 솔로몬, 디오니시오, 파올로 오로시오, 세비니오 보에시오, 이시도로, 베다, 리카르도 산 빅토르, 시지에리 드 브라방, 보나벤투라, 일루미나토, 아우구스티노, 우고 다 산 비토레, 피에트로 만지아도레, 교황 요한 21세, 예언자 나산, 대주교 안셀모, 요한 크리소스토모, 도나토, 라바노, 조바키노.
화성천(Cielo di Marte), 인내력 : 신앙을 수호하는 데 용기를 보인 순교자와 전사들의 영혼이 머물고 있다. 대응되는 천사는 오품천사인 역품천사(Virtu).
등장인물 : 카치아구이다, 여호수아, 유다 마카베오, 카롤루스 대제, 오를란도, 굴리엘모, 레노아르도, 고티프레디, 로베르토 구이스카르도.
목성천(Cielo di Giove), 주피터(정의) : 통치에서 정의를 실천한 의로운 통치자와 지도자의 영혼이 머물고 있다. 대응되는 천사는 사품천사인 주품천사(Dominazioni).
등장인물 : 독수리(다윗, 트라야누스, 히즈키야, 콘스탄티누스 1세, 굴리엘모 2세, 리페우스).
목성천에 등장하는 영혼들은 천국의 다른 하늘들과는 다르게 개개인이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이 거대한 독수리의 일부로서 등장하며, 독수리 자체가 하나의 인격체로 나와 자신의 어느 부위에 어느 영혼이 속해 있는지 말해 준다.
토성천(Cielo di Saturno), 절제 : 기도와 사색, 금욕의 삶을 살았던 관상가들의 영혼이 머물고 있다. 대응되는 천사는 삼품천사인 좌품천사(Trani).
등장인물 : 베드로 다미아노, 베네딕토.
이곳에서 단테는 세 가지 신학적 덕목인 고정된 별(신앙, 희망, 자선), 성 베드로(믿음), 성 야고보(희망), 성 요한(사랑)을 대표하는 성인들을 만난다.
항성천(Cielo delle stelle fise) : 이곳에는 악과 싸워서 승천한 개선의 영혼들이 머물고 있다. 단테는 쌍둥이자리(단테의 별자리)에서 지구와 지금까지의 천국의 7영역이 다 보인다고 말한다.
또 사도들과 믿음, 소망, 사랑에 대해서 의논한다. 대응되는 천사는 이품천사인 지품천사(Cherubini).
등장인물: 초대 교황 베드로, 야고보, 사도 요한.
원동천(Cielo cristallino o Primo mobile) : 이곳은 물리적 우주의 마지막 영역이다. 하나님이 이 영역을 직접 회전시키고 있으며, 원동천에 둘러싸인 나머지 구역들은 원동천을 따라서 돌아간다.
여기까지가 베아트리체의 안내를 받은 곳이다. 대응되는 천사는 치품천사(Serafini).
등장인물 : 세라핌, 케루빔을 비롯한 천사들.
지복자의 장미(Candida rosa)-지고천으로 올라가기 전 지복자들의 영혼들이 머무르는 곳.
지고(至高)천 : 이곳은 하나님의 영역이자 천국 그 자체다. 천국의 모든 영혼의 본 거주지이기도 하다. 모든 하늘은 하느님(Dio)을 중심으로 돈다. 여기서 단테는 하나님의 모습을 산 상태에서 볼 수 있도록 빛에 감싸진다.
단테의 저승 여행기는 천국편을 마지막으로 끝났다. 천국은 유난히 빛이 강조된다. 천국은 빛을 통해 신비화되고 단테의 영혼은 숭고한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단테가 천국 편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의 지식과 능력으로는 일정한 한계가 있으며 하나님의 의지를 완전히 터득했을 때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천국에서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은총을 직관으로 받아들이고 믿음을 실천하는 것이며 계속 설명하는 빛은 하나남의 은총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편보다 천국 편은 특히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종교가 다른 사람에게는 별 감흥이 없을지도 모른다.
단테의 <신곡>은 죄, 구원, 신을 향한 인간 영혼의 여정을 주제로 탐구하는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단테가 전달하는 주요 요점은 죄와 절망에서 구원과 신성한 은총에 이르는 영혼의 영적 세계관이다.
단테는 그의 세계관을 지옥과 연옥 그리고 천국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각 파트는 인류와 개인의 도덕적, 영적 진화의 한 단계를 나타내고 있다.
지옥은 죄의 결과와 신의 형벌의 정의를 강조한다. 죄인은 자신의 행동에 따라 정죄되며, 이는 도덕적 선택이 영원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보여준다.
연옥은 자신의 죄를 기꺼이 화해하려는 사람들에게는 회개와 정화가 가능함을 보여준다. 즉 영혼이 자신을 정화하여 천국으로 올라가는 희망의 장소다.
천국은 신성한 사랑을 통한 하나님과의 궁극적인 연합을 기념하며, 하나님을 이해하고 경험하는 영혼의 성취를 나타낸다.
단테의 여정은 베르길리우스와(이성)와 베아트리체(신성한 사랑)의 인도를 받아 영적 성장을 달성하는 데 있어 지혜와 믿음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이 시에는 단테의 개인적인 영적 여정뿐만 아니라 죄, 회개, 신성한 열망을 헤쳐나가는 모든 인류의 투쟁도 반영되어 있다.
결국 단테는 죄의 결과를 인식하고 진심으로 회개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영적인 깨달음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영원한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고 가르친다.
그는 또한 정치적 부패, 도덕적 부패, 개인 및 사회 개혁의 필요성을 비판하기도 한다.
<신곡>을 통해 단테는 신학, 철학, 문학을 혼합함으로써 희망과 변화에 대한 시대를 초월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이 걸작은 개인의 여정이자 인간 상태에 대한 보편적인 메시지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신곡>을 최대한 간단히 정리해 보았다. 역시 처음 생각했던 대로 글 두 편으로 <신곡>을 설명하는 데는 무리가 있었다. 그야말로 수박 겉핥기식이며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것과 진배없다. 따라서 진심으로 <신곡>을 알고 싶다면 책과 마주하기를 간곡히 권하는 바이다.
피사의 사탑
피렌체에서만도 볼 것은 넘쳐났다.
우피치 미술관, 두오모성당, 시뇨리아 광장, 보볼리 정원, 미켈란젤로 광장의 선셋, 그 외 주변의 시에나, 피사의 사탑 등이었다.
피렌체까지 와서 피사를 안 갈 수 없었다. 피사의 사탑은 피렌체에서 기차를 타고 1시간을 가야 하는 거리에 있었다.
또 기차에서 내려서도 버스나 택시를 이용해 더 들어가야 했다. 따라서 피사를 가려면 적어도 한나절 이상은 시간이 필요했다.
문제는 그렇게 시간을 투자하고 볼 것이 피사의 사탑 딱 하나뿐이라는 사실이었다.
물론 오가는 길에 풍경과 일행과의 대화 등등 여행의 묘미를 다른 곳에 둘 수는 있었지만 어찌해야 할지 참 난감했다.
피렌체를 하루 더 둘러봐야 할지 피사를 가야 할지 그야말로 계륵이었다.
아이들과 의논 끝에 가는 것으로 결정했다. 다른 곳은 시간이 남으면 들르면 되는데 피사는 따로 시간을 내야 했기 때문이다.
피사 대성당과 사탑
피사의 사탑(Torre Pendente di Pisa)은 의도치 않게 기울어진 것으로 유명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 랜드마크 중 하나다. 이탈리아 피사 시에 있으며 바로 옆에 있는 피사 대성당의 종탑 역할을 한다.
로마네스크 시대 1173에 건축이 시작된 이 탑은 피사 대성당과 세례당을 포함하는 기적의 광장(Piazza dei Miracoli)으로 알려진 대성당 단지의 일부로 건설되었다.
주로 흰색과 회색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타워의 높이는 약 56미터에 달한다. 탑은 종을 보관하는 방을 포함하여 8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탑은 건설 중 기초 아래의 부드럽고 불안정한 점토와 모래 토양으로 인해 구조물의 무게를 제대로 지탱할 수 없어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기울어진 원인은 피사가 아르노 강의 범람원 위에 세워진 도시여서 지반이 매우 약한 데다가 아래로 고작 3m밖에 파지 않아서 하중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공사 도중에 한쪽으로 서서히 쓰러지기 시작했다. 완공 후에 기울어졌다면 모를까 완공하기도 전에 기울어졌으면 중간에 헐고 처음부터 새로 짓는 것이 정상이지만, 무슨 이유로 포기하지 않고 계속 짓게 되었다.
이 상태에서 빨리 완공했다면 몇 년도 못 버티고 무너졌을 것이다. 그러나 전쟁 등으로 공사가 지연되면서 지반이 조금 더 다져지는 효과를 얻게 되었다.
사탑의 최종 완공 연도는 1372년, 거의 200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탑은 계속 보수 공사를 했다. 위층은 그 기울어진 각도를 반영해서 수직으로 탑을 쌓고, 또 기울어지면 그 위층도 다시 한번 수직의 탑을 세우는 식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공사가 완료된 이후에도 탑은 서서히 기울어갔고, 손 쓸 방도 없이 그 상태로 50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20세기에 와서야 기울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전면적인 보수 작업이 이루어졌다.
1993년부터 2001년 사이에 광범위한 작업을 통해 기울기를 5.5도에서 약 4도로 줄여 유명한 기울기를 유지하면서 안전성을 보장했다.
그런데 탑이 똑바로 서도 문제였다. 지금은 1년에 2mm 정도의 아주 느린 속도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한 2∼300년간은 기울어진 상태겠지만 결국 언젠가 똑바로 서게 될 것이다.
관광상품으로써의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마르코 필리페스키 피사 시장도 “우리는 사탑이 복구된 것은 환영하지만 똑바로 서는 것은 원치 않는다.”라며 우려를 표했다고 한다.
기울어진 탑이 똑바로 서도 문제가 되니 참 세상은 요지경이다.
현재 타워는 미라콜리 광장(Piazza dei Miracoli) 전체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관광객들은 294 계단의 나선형 계단을 올라 피사의 탁 트인 전망을 즐길 수 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가 이 탑에서 납과 나무로 된 공을 떨어뜨려 중력에 대해 실험했다는 소문이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물체가 무게에 상관없이 같은 속도로 떨어지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갈릴레이가 했던 실험은 비탈을 만들어 거기에 무게가 다른 물체를 굴리는 실험이었다고 한다.
아침 일찍 일어나 우리는 산타마리아 노벨라 기차역으로 갔다.
피렌체에서 피사를 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었다.
먼저 피사 산로소레역(Pisa SanRossore)까지 가서 도보로 10분간 이용하는 방법이 있고 또 한 가지는 피렌체 피사 중앙역에서 버스를 타고 내려 도로로 5~10분간 이동하면 된다.
두 가지 다 걸어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표는 미리 예매하지 않아도 구할 수 있어서 우리는 표를 끊고 좌석에 앉았다.
겨울이라 그런지 기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보는 이탈리아 소도시들은 목가적인 풍경에 조용하고 쓸쓸했다.
피렌체의 그 활기차고 복잡함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멀리 보이는 집의 구조가 조금 다를 뿐 우리나라 농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기차도 목적지로 바로 가는 게 아니라 무궁화 기차처럼 정류장마다 다 섰다. 나는 시간과 정류장 이름을 계속 입으로 중얼거리며 내릴 정류장을 놓치지 않으려고 기를 썼다.
우리가 내리는 역 산로소레역이 방송에서 나오자 기차에 탔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의 다 내렸다. 굳이 긴장하고 있을 필요도 없었다. 자고 있는 아이들을 깨워 기차에서 내렸다.
“택시 타자.”
길을 잘 모르니 그게 편할 것 같았다. 말이 10분이지 대부분 틀린 경우가 많았다. 우리나라 부동산도 전철역에서 걸어서 5분이라고 해서 가보면 내 걸음으로는 배는 걸렸다.
“걸어가요. 저 사람들도 다 걸어가는데, 저 사람들 따라가면 되잖아요.”
“같이 내렸다고 다 사탑 보러 가는 건 아니잖아?”
“엄마, 여기는 볼 게 그거 딱 하나래요.”
아이들은 휴대폰 구글앱을 켜놓고 내게 보여주었다.
“저쪽이네요.”
하긴 기차에서 내린 사람들 대부분이 한쪽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우리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강이 나와서 다리를 건넜다. 얼마 걷지 않았는데 이탈리아 소도시 하나를 관통하는 느낌이었다.
10분이라던 거리는 어느새 25분을 지나고 있었다.
피사의 사탑까지 걸어가는 길에 만난 강
“거 봐라, 내가 분명히 10분은 아닐 거라고 했지?”
그나저나 가다 보니 어느새 아무도 없고 우리만 남았다.
“다 어디 갔지?”
“여기 지도를 보면 길이 여러 갈래예요. 큰길은 같이 가지만 작은 길은 여러 갈래가 있으니까 알아서들 갔겠지요.”
‘그러니까 내가 택시 타자고 했지?’ 하는 말이 목까지 올라왔는데 아들이 소리쳤다.
“저기다. 저기 보이지 엄마?”
아들이 가르치는 곳을 보니 커다란 사탑이 보였다. 굳이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피사의 사탑’이었다.
“와~ 크다.”
생각보다 사탑은 꽤 컸다.
사람들이 여러 각도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누워서 사탑을 가랑이 사이에 넣는 사진을 찍기도 하고 손가락으로 밀기도 하고, 장난치는 인증 샷이 많았다. 그래서 2022년부터는 사탑 가까이 갈 수 없도록 막아놓았다고 한다.
나도 사탑 앞으로 가서 손바닥을 뻗어 기울어 가는 사탑을 받치고 있는 듯한 인증 샷을 찍었다.
다른 사람들이 찍는 인증샷을 따라한 포즈
피사 대성당도 가보았다. 그곳은 사람이 없어 오히려 썰렁했다. 사람들은 사탑에만 관심이 있었다. 그래서 사탑을 보고 나니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그야말로 왜 계륵이라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우리는 다시 기차역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또 걸어가?”
“당연하지요. 아까 엄마가 사진 찍느라 조금 천천히 걸어서 그렇지 빠른 걸음으로 가면 15분도 안 걸려요.”
“그런가? 어차피 기차도 기다려야 하니까 밥 먹고 가자.”
우리는 검색해서 맛집을 찾았다.
“괜히 이상한 거 먹고 입 버리지 말고 유명한 집 아니면 피자 먹는 게 어때?”
피자는 어느 집이든 대충 맛이 있었다.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들이 소리쳤다.
“아, 저기 보이네요. 유명한 집.”
아들의 말에 바라보니 맥도널드 햄버거 간판이 보였다. 그야말로 아는 집이었다.
우리는 픽 웃으며 그쪽으로 걸었다.
매장은 자리가 없었다. 사탑에 다녀온 모든 사람의 집합소 같았다. 국적을 불문하고 아는 맛은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리가 나기를 기다려 햄버거를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