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책, 꽃, 그리고 여행을 좋아한다.
소설을 쓰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책은 내 삶의 중심에 있었다. 10대 후반부터 나는 늘 책을 손에 쥐고 살았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전쟁과 평화> 등 세계명작과 한국문학전집을 탐독하며 황금 같은 20대와 30대를 보냈다.
독서는 곧 습작으로 이어졌고, 다양한 창작물로 꽃을 피워냈다. 덕분에 지금까지도 나는 글쟁이로서의 타이틀을 지키고 있다.
책이 늘 내 곁에 있었듯이 꽃도 언제나 내 주변에 있었다.
하지만 꽃이 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해 전의 일이다. 젊었을 때는 무심코 지나쳤던 꽃들이 어느 날 갑자기 나를 찾아온 느낌이랄까?
나는 일 년 내내 피어나는 꽃을 따라 전국을 여행했다. 지심도, 황매산, 미르섬, 지리산, 육백마지기, 궁남지, 황룡강, 위양지 등 꽃으로 유명한 명소가 셀 수 없이 많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샤스타데이지, 배롱나무, 능소화, 꽃무릇, 라벤더 등 계절마다 피어나는 꽃들은 나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었고, 그 덕분에 나는 자연 속에서 글을 쓰는 기쁨을 누렸다.
여행은 나의 또 다른 일상이었다.
역마살이 끼었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싸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나는 짬이 날 때마다 배낭을 꾸려 가까운 경기도부터 해남 땅끝마을까지, 또 제주도를 비롯한 크고 작은 섬들을 찾아 떠났다.
여행지에서 숨이 멎을 만큼 나를 유혹하는 풍경을 마주하면 가던 길을 멈추고 오래도록 그 시간을 즐겼다.
여행은 피곤에 지친 나를 쉬게 해 주었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일할 수 있는 에너지를 선물했다.
해외여행도 마찬가지였다.
휴가 날짜와 예산에 맞춰 계획을 세우고 겁 없이 떠났다. 때로는 예매해 두었던 기차를 놓치기도 하고 길을 잘못 들어 헤매기도 했다.
덩치 큰 사람들이 뒤따라오거나 마주 오면 혹시 해코지당할까 두려워 잰걸음으로 뛰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유명 여행지에서 몇 정거장 떨어진 곳에 숙소를 잡고 버스와 전철을 이용해 경비를 아끼는 팁도 터득했다.
여행에서 돌아온 뒤 밀린 일을 처리하느라 찍어놓은 사진들은 D드라이브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언젠가는 사진과 여행기를 정리해야지 했으나 우선순위에서 매번 뒤로 밀렸다.
그러나 꼭 마감일에 과제를 제출하지 않은 것처럼 찜찜했다. 시간을 따로 내지 않는 한 쓰레기통으로 들어가 영원히 사장될 것 같았다. 결국 나는 밀린 숙제를 하기로 결심했다.
이 글을 브런치스토리에 연재하기로 마음먹었다.
더는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사진을 꺼내 정리하며 몇 날 며칠을 고민했다.
내가 좋아하는 책과 꽃, 그리고 여행을 접목시키고 싶었으나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무릎을 탁 쳤다. 꽃과 책, 그리고 여행은 따로국밥 같았는데 여행이라는 테마 안에 넣어 이리저리 버무려보니 괜찮은 글이 나올 것 같았다.
그동안 눈과 가슴으로 담아두었던 내용이 뇌를 통해 어떤 결과물로 나오게 될지 나도 기대가 된다.
혹시 내가 쓴 글이 억지스럽다고 느껴진다면, 어디까지나 글솜씨가 부족한 탓이니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 주길 바란다.
2024년 장마가 시작되는 7월 초순 김인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