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고, 아프지 말았어야 해.
나는 한동안 글을 올리지 않았고, 이유는 참 단순했다.
무서워서 그랬다. 글을 쓰는 게 싫었고, 내 모습을 본 부모님의 반응이 두려웠고, 내 글을 본 사람들의 시선이 무서웠다. 시험기간이라는 핑계도 없지는 않았지만, 내가 나를 포기하는 과정이 제일 컸던 것 같다.
며칠 전에, 부모님께서 나누시는 이야기를 들었다. 자식을 잘못 키웠다는 한탄 비슷한 이야기였다. 나는 첫째고, 장녀이다. 때문에 부모님께서 기대를 많이 하셨던 건 사실이고, 실제로 여러 가지를 시켜가며 나에게 기대 아닌 기대를 하셨다. 그런데 이제는 아니었다. 아빠께선 '난 할 만큼 했어'라고 하셨고, 엄마께선 '나는 그냥 애들을 바르게만 키우고 싶었어'라고 하셨다. 엄마는 나를 바르게 키우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아빠는 내가 틀렸다고 생각했다. 물론 나는 이해한다, 부모는 자식이 전부라고들 하니까. 그러나 계속 이어지는 대화를 들으면 들을수록 부모님께서 나를 포기하셨다는 생각 밖에는 들지 않았고,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내가 괜히 태어났어'였다. 사실 나는 아직도 저 이야기가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맞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내가 태어나지만 않았어도 엄마아빠는 상처받지 않았을 것이고, 더욱더 행복하게 살 것 같았다. 급기야 나는 아빠가 한 적도 없는 말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아빠는 나를 낳은 걸 후회하나, 싶은 생각이 스멀스멀 몰려온 게 그 이유였다.
예전에는 어떤 상황에서의 사람들의 옷차림까지 기억하곤 했던 나였는데, 이제는 구름처럼 두루뭉술하게 기억날 뿐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이기적 이게도 내가 상처받고 내가 아픈 것만 흐릿하게 기억났다. 참 이상했다. 아, 이래서 늙었다고들 하는 걸까 싶었지만 아직 고등학생인 나에게 늙었다는 말이 웬 말인가.
아마도 그날 밤부터였던 것 같다. 밤마다 몰래 숨죽여 울었던 게, 베개에 눈물이 물든 게, 웃는 것조차 버거워진 게, 엄마아빠의 모습에 이질감이 느껴진 게. 다음날, 내가 펑펑 울고 부은 눈으로 일어나니 내 책상에 처음 보는 책이 놓여있었다. 엄마가 선물이라고 준 책이었고, 책 위에는 작은 쪽지가 붙여져 있었다. 쪽지를 흘끔 읽어본 나는 마지막 문장을 보자마자 공황이 온 것처럼 느껴져 도망치듯 집을 나왔다. 쪽지의 마지막 문장은 '사랑해, 딸'이었다.
그냥, 그냥... 스트레스를 받아서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내 손목을 그은 것도, 보이지 않는 곳을 찾아 사정없이 칼집을 낸 것도, 밤마다 숨죽여 울던 것도 모두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엄마아빠의 그 대화 때문에, 그간 나에게 보여주었던 모습과 대비되는 것 때문에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탓을 하고 싶은데, 탓할 사람이 없으니 나를 붙잡고 스스로 손가락질했다. 너 때문이라고, 네가 태어나서 그렇다고, 네가 진작 죽었어야 했다고. 아니면 2학년 때 그렇게 힘들지 말았어야 한다고, 자해를 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애초에 네가 정신병에 걸리지 말았어야 했다고.
그렇게 끊임없이 나를 탓하고 스스로의 감옥에 가두어 쉼 없이 채찍질만 해댔다. 당연히 지쳤고, 세상이 온통 흑백으로 보였다. 그래서 나는 시험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도서관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집에 오면 바로 씻고 잠에 들었다. 아침에 더 일찍 일어나 더 빨리 학교에 갔고, 도서관에 가지 못하면 방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 그게 내가 살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만약 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나의 부모님의 미래는 달라졌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