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위해, 자살을 위해, 마지막을 위해.
“유을씨, 오늘도 수고했어요.”
후드득 비가 쏟아지던 날. 가게를 정리하고 퇴근하려던 나에게 매니저님이 조용히 말을 건넸다. 평소 누군가에게 먼저 말을 붙이던 사람이 아니었던 매니저님은 그간 보지 못했던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 다가왔고, 나는 그런 매니저님이 퍽 낯설어 시선을 피하며 답했다.
“아, 네.”
나는 어색하게 매니저님의 인사를 받았고, 매니저님도 내 모습을 보고 이상하단걸 어느 정도 눈치챘는지 더는 다가오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사비로 나의 교통비를 채워 줄 뿐.
“유을씨 집 멀잖아. 이걸로 택시 타고 가요.”
나는 그 부담스러운 돈을 꾸역꾸역 쥐여주시는 매니저님 때문에 만 원짜리 다섯 개를 받아 들고 근처 편의점으로 향했다. 이것이 오늘의 마지막 일과였다.
“유을씨, 왜 이렇게 늦게 와요? 시간 늦은 거 알면서.”
“죄송합니다, 얼른 가보세요. 나머진 제가 할게요.”
“쯧, 그래야죠. 그럼 수고해요.”
전 타임의 알바는 내게 혀를 차며 신경질적으로 편의점을 나갔다. 기껏해야 5분 늦었는데, 뭐 저리 신경질적이람. 그래서 그런가 평소엔 아무런 생각이 없던 종소리가 어쩐지 거슬리게 들려왔다. 하지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미 지난 일인걸. 지금 나에겐 변명거리와 체면보다 돈이 필요했다. 그것도 아주 많이. 그래서 내가 하루에 알바만 3개를 뛰고 있는 거겠지.
내가 필요한 돈은 총 1억. 그리고 현재 모은 돈은 8천만 원. 2천만 원만 더 모으면 나는 내 인생에서의 첫 번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바로 불안했던 삶의 평안한 마지막.
현재 스물넷 인 내가 저만큼의 돈이 필요한 이유는 딱 하나였다. 평안한 자살을, 죽음을 위해서. 지금 나는 죽기 위해 돈을 모으고 있다. 명예로운 죽음도, 자랑스러운 죽음도 내 앞에서는 그저 똑같은 자살일 뿐이었으나, 몇 년 전에 접한 평안한 죽음은 달랐다.
3년 전이었나,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엄마께서 침대에 누워 계셨다. 처음에는 주무시는 줄 알고 조용히 했지만 열두 시간이 넘도록 계속 잠들어 계시는 탓에 나는 혹시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조심스레 침실로 들어가 엄마를 흔들어 깨워 보았지만 이미 늦은 뒤였고, 그렇게 나는 엄마의 마지막 모습을 보았다. 그러나 흘러간 시간과는 다르게 엄마는 굉장히 평안한 얼굴이었다. 그때 엄마의 옆에는 통장이 하나 있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엄마가 죽기 직전에 1억이란 돈이 빠져나가 있었다. 이건 자다가 돌아가는 죽음에 대한 비용이었다.
그때 나는 엄마가 죽었단 슬픔보다 세상의 매정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죽는 것조차 저작권이 있다는 세상이 이렇게 매정하게 다가오긴 처음이었다. 현재 내가 사는 세상은 새로운 죽음을, 평안한 죽음을 발견한 사람이 그 죽음의 저작권을 가지고 죽음에 대한 저작권료는 자연스레 후대에게 물려지게 되는 시스템이었다. 그러니까 우리 엄마는 수면 중 사망의 저작권료를 위해 내가 준 용돈을 꼬박꼬박 모았고, 끝끝내 1억이란 돈을 마련해 죽음에 성공한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엄마의 길을 따라가기 위해 돈을 모으고 있던 참이고. 물론 싸고 아픈 죽음도 없지는 않았다. 투신해서 고통스럽게 죽는 방법은 30만 원의 값어치를 가졌고, 그보다 저렴한 죽음으로는 20만 원의 사지절단, 10만 원의 목매달기가 있었다. 때문에 돈이 없는 사람은 죽는 것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했다. 지긋지긋한 삶을 끝내려면 단 돈 십만 원이라도 마련해야 했기에.
“안녕하세요~”
그때, 경쾌한 종소리와 함께 손님이 들어왔다. 나는 정신없던 잡생각을 저기 구석으로 밀어 넣고 손님을 맞았다. 그러나 그 잡생각은 구석으로 들어가지 않았고, 슬그머니 고개를 쳐들어 나의 생각을 잠식했다. 그건 편의점에 손님으로 들어온 매니저님 때문이었다.
“유을씨? 여기서도 일해요?”
“아, 네.”
“참 열심히 사네, 의심스러울 정도로.”
매니저님은 의미심장한 말과 함께 나를 측은하게 바라보셨지만 상관없었다. 나는 당신들이 듣지도 보지도 못한 평온한 죽음을 맞이할 거니까. 나는 당신들과는 급이 다르니까.
“총 44,000원입니다. 봉투 필요하세요?”
“아뇨, 괜찮아요. 잠시만요.”
말을 마치고 한참 동안 자신의 가방을 뒤적이시던 매니저님은 곤란하단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유을씨, 미안해요. 내가 지갑을 안 가지고 왔네? 유을씨가 대신 결제해 주면, 내가 내일 꼭 갚을게요.”
어쩐지, 세상에 어느 누가 편의점에서 한 번에 44,000원을 쓰나 싶었는데 다 꿍꿍이가 있었구나. 나는 하는 수 없이 지갑에서 오만 원을 꺼내 대신 계산을 하고, 매니저님을 쳐다보았다. 나의 표정을 본 매니저님은 어정쩡하게 웃으며 편의점을 나가셨고, 나는 당최 그런 매니저님이 이해되지 않았다. 딱 보니까 죄 다 필요 없고 비싼 것만 사셨던데, 오죽하면 돈을 빌리려 일부러 비싼 걸 샀나, 하는 생각도 들었으니.
아무튼 다음날, 나는 어김없이 출근했고 매니저님을 뵈었다.
“유을씨, 잠깐 시간 돼?”
매니저님의 물음에 나는 별로 내키지 않는 기분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매니저님은 나를 피팅룸으로 안내했다. 그녀는 나에게 따뜻한 차를 한잔 쥐여주고 본론을 뱉었다.
“유을씨, 돈 왜 그렇게 열심히 모아?”
“그냥, 부모님 부양하려고요.”
물론 그 목적은 전혀 아니었다. 내게 부양할 부모님 따윈 없었으니까.
“정말? 그 목적이라면 대단한데?”
방실방실 웃던 매니저님은 곧 차분한 표정으로 되돌아와 내게 다시 물었다.
“그런데 진짜 그 목적이야?”
"네, 그 목적입니다."
"그렇다면 아주 칭찬하는데, 만약 저작권료 때문이라면 관두는 게 좋아."
순간 나의 모든 사고가 정지하는 기분이었다. 마치 해본 것 마냥 말하는 저 태도와 나를 말리는 것 같은 저 말투가 나의 머리를 조여왔다.
“유을씨도 알잖아요, 지금은 모든 게 다 저작권이고, 그게 곧 돈인 거. 하다못해 이름조차도 저작권이 있는걸.”
그러나 저딴 말 때문에 내 신념이 무너질 리 없었다. 나는 굳은 다짐을 했고, 그 다짐은 세차게 불어오는 비바람에도 풀어질 줄 몰랐으니까.
“매니저님,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 겁니까?”
“정말 모르겠어요? 지금 유을씨가 돈 모으는 그 이유, 그게 잘못됐다고요.”
아, 대체 나에게 왜 이러는 거지? 나는 그저 죽고 싶었을 뿐이었고, 되도록 안 아프게, 고통스럽지 않게 죽고 싶었을 뿐이었다. 일평생 살면서 해 온 노력이라곤 숨쉬기가 전부였던 내가 죽기 위해 돈을 긁어모으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죽을힘을 다 해 노력했는데 그게 틀린 노력이었다고? 그러나 그다음으로 들린 매니저님의 말은 나를 더욱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안 믿기겠지만 내가 해봤어요. 나 평소랑은 달랐을 텐데?”
저게 지금 대체 무슨 말인가? 자신이 죽어봤다고 하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죽는 걸 말리는 것인가?
“매니저님.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매니저님의 말에 지칠 대로 지친 나는 그대로 피팅룸을 나왔고, 다행스럽게도 매니저님은 나를 붙잡지 않았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월급을 받은 날, 나는 침대에 누웠다. 1억이란 거대한 돈을 들여 내일이면 모든 것이 끝나고, 나는 영원히 잠에 들게 된다. 아, 얼마나 바라던 순간이었던가.
그런데, 죽기 직전에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생겼다.
나는 무엇을 위해 돈을 모은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