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자해 일지 (D+2)
요 며칠간 정말 죽는 줄 알았다.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살려달라고 싹싹 빌 정도로 무섭고 두려웠다. 육체적으로 느껴지는 아픔보단 언제 쓰러질지 모른다는 불안함과 다시금 병원에 입원해 생활해야 한다는 두려움이 더욱더 컸다.
D-DAY
저녁 6시쯤, 나는 정신과에서 받아온 약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항우울제와 약간의 조증 증세를 완화하는 그런 효과가 있었다. 과다복용의 부작용을 살펴보다가 '약물 과다복용 시 구토, 설사, 어지럼증을 유발하며 심하게는 실신까지 이를 수 있음.'이라는 문구를 발견했다. (흐릿한 기억상으로는 죽음까지 이를 수 있다고 했던 것 같은데, 정확하지 않으니 넘어가기로 하자.)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정신과에서 받아온 약 12일 치를 챙겨 방에 들어왔다. 그리고는 연결되어 있는 두 갈래의 약을 쭉 찢어 그대로 물과 함께 털어 넣었다. 목구멍이 묵직하니 아려왔다. 그렇게 나는 별로 좋지 않은 기분으로 잠에 들었다.
D+1
다음날 새벽 4시 55분. 손과 발이 너무 뜨겁고 장기들이 날뛰는 것만 같은 기분에 잠에서 깼다. 손발이 마치 화덕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아 가만히 누워 있을 수 없었고, 장기들이 서로 나가겠다고 아우성치는 느낌이어서 제정신으로 있을 수 없었다. 그렇게 손발을 달달 떨며 겨우겨우 잠을 청했다. 그러나 그것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현재 나의 학교는 지금 다니는 학교와 꽤 멀어서 적어도 7시에는 집에서 출발해야 했다. 준비하고, 짐 챙기고 하는 시간까지 챙기면 적어도 1시간 전에는 일어나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전날 약을 왕창 털어 넣은 나는 현재 제정신이 아니었다. 몸이 이상하다는 신호는 곧 엄청난 정신적 두려움으로 바뀌어 다가왔다. 그때 나는 평생 믿지도 않던 신에게 처음으로 기도를 했다. 제발 살려달라고, 살려만 주시면 정말 열심히 살겠다고.
정신과 마찬가지로 육체도 제정신이 아닌 듯했다. 높고 커다란 산을 오르고 다시 내려오는 길에 다리가 덜덜 떨리는 기억이 있는가? 내가 딱 그랬다. 산을 오른 것도, 운동을 한 것도 아니고 그저 자고 일어났을 뿐인데 다리가 미치도록 떨렸다. 손을 비롯한 팔과 발, 다리도 미친 듯이 덜덜덜 떨렸다. 장기들은 있는 힘껏 떨고 있는 듯 뱃속에 나비 대신에 나방이 들어찬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학교에 갔다. 버스를 기다리는데, 이때 정말 미치는 줄 알았다. 다리는 제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손은 휴대폰을 쥐지 못할 정도로 떨리고 숨은 연신 가쁜 숨이 내쉬어졌다. 뿐만 아니라 시야는 너무 어질어질해서 가만히 서있는 것조차 버거웠다. 때문에 학교에 가서는 내내 잠만 잤다. 친구들이 걱정할 정도로 잠만 잤고, 밥도 먹지 못할 정도로 잠만 잤다. 아니, 잔 게 아니라 거의 기절이었다. 그렇게 나는 6교시의 쉬는 시간 동안 내내 기절했고, 수업시간에도 간혹 기절해 있었다. 머리는 울렸고, 정신은 미친 듯했다. 학원을 다녀와서 밥을 욱여넣고, 내 상태를 들킬까 봐 두려워 6시에 잠에 들었다.
D+2
전날 일찍 잤던 탓일까,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아마 5시 50분쯤이었을 것이다. 손과 발을 살폈다. 전날 느껴졌던 열기는 더 이상 느낄 수 없었고, 어지러운 시야도 나아져 있었다.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살면서 내가 살아남기를 이토록 간절히 바랐던 적이 없는데, 지금 생각해도 참 웃긴 것 같다. 나는 조금은 더 편안한 마음으로 학교에 갔고, 학원에 갔고, 사람들과 농담을 주고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