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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강정, 떡꼬치, 그리고 그릇.

닭강정과 떡꼬치를 담기에 나의 그릇은 너무나도 작다.

by 미지수

며칠간 수많은 감정의 소용돌이가 나를 지나갔다. 사채 이야기를 꺼냈던 오빠의 일부터, 나에 대한 인신공격을 하던 아빠, 지지리도 풀리지 않던 수학문제, 감정에 못 이겨 자해를 한 나, 그리고 그걸 발견한 엄마. 불과 며칠 만에 이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내 정신은 썩어 문드러졌다. 도저히 헤어 나올 수 없었다. 지금 내가 쉬는 숨이 마지막 숨이었으면, 지금 나의 발걸음이 마지막 한 발이었으면, 지금 나의 하루가 마지막 하루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그릇은 이미 다 깨져있었다.

어느 날, 엄마의 심부름으로 닭강정을 사 오다가 횡단보도를 마주쳤다. 신호등도 없고, 흰색과 검은색의 줄무늬만 있는 꼴이 제법 우스웠다. 도로를 달리는 차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문득 뛰어들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저 차도에 뛰어들면 편해지지 않을까? 정말 조금이라도 편해지지 않을까? 하는 그런 의문과 바람이었다. 나는 차도에 뛰어들어 그대로 생을 마감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에게 용기란 없었다. 살아갈 용기는 이미 진작에 바닥나 마이너스였고, 그건 죽을 용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는 죽는 걸 바라지 않았고, 그저 세상에서 영원히 없어지길 바랐다. 그러나 후자는 불가능하기에 늘 전자를 택하는 것뿐.

시간이 흘러 오늘, 학교를 마치고 친구와 함께 버스에 올라탔다. 여고생 특유의 농담과 헛소리를 주고받으며 정말 해맑게도 웃었더란다. 마치 전날의 감정을 다 잊은 것 마냥. 그러다가 친구가 먼저 내리고, 나는 혼자 남겨졌다. 문득 든 생각에 소매를 걷어 자해한 곳을 확인했다. 칼로 손등을 그은 얕고 긴 흔적들이 제법 그럴싸하게 남아있었다. 친구들한테 들켜서는 긁은 거라고 둘러대긴 했지만, 이건 내가 봐도 자해였다.

그러다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는데, 떡꼬치집이 보였다. 내가 제일 좋아하던, 맛있게 먹던 부평역의 떡꼬치집. 아마 장담하건대 나를 3번은 살렸을 거다. 아무튼, 나는 무의식적으로 정류장에서 내려 떡꼬치 3개를 샀다. 엄마, 아빠, 나, 이렇게 세 명이 먹을 몫이었다. 엄마한테 '떡꼬치 가는 중'이라고 톡을 보냈더니 'ㅋㅋㅋㅋㅋㅋㅋ'하고 웃었다. 내가 엄마아빠 드시라고 내 몫 제외하고 두 개 샀다니까 그 미운 아빠껀 왜 샀냐고 되물으셨다.

생각해 보니 그건 나도 의문이었다. 그러게, 왜 샀을까. 음, 생각해 보면 나는 아빠와 다르니까가 아닐까 싶다. 사실 떡꼬치를 사기 전에 아빠는 나에게 몇 차례고 인신공격을 했다. 대놓고 꼽준 건 물론이고 내 성격, 외모, 가능성, 심지어는 오지도 않은 미래를 가지고 나를 공격했다. 웬만하면 아빠에게 대들지 않던 내가 아빠에게 대든 첫 번째 이유였으니까. 그럼에도 내가 좋아하는 떡꼬치를 드셔보라고 산 이유는, 내가 다가가야 하니까가 맞을 것 같다. 우리 아빠는 나에게 다가오지 못하니까, 적어도 내가 가서 손가락이라도 내밀어야 하니까. 그래서 그런 것 같다. 그게 아니라면... 나는 아빠 같은 사람이 되기 싫어서?

이렇게 나의 며칠이 정리되었다. 지금은 사채 이야기를 꺼냈던 오빠를 차단하고 오는 길이다. 그 짧은 며칠에 나의 그릇엔 너무나도 많은 이야기가 담겼다. 그러나 나의 그릇은 그 이야기를 담기엔 턱없이 작았고, 나는 흘러내린 이야기들을 손등에 새겼다. 아아, 그렇게 나는 오늘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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