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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내가 포기한 것들

by 미지수

0. 12일.

10월 20일과 11월 1일.

잠시 쉬겠다고 선언한 날짜로부터 12일이 지났다. 그동안 나는 당연하게도 열일곱이란 숫자에 멈춰 있었고, 그 숫자들은 곧 그간 내가 배워 왔던 것들을 정리하는 시기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가장 중요했던 것을 내려놓아 포기하기도 했고, 그로 인해 나의 또 다른 면모를 발견하기도 했다. 이 글은 내가 놓아버린 것과, 내가 포기한 것, 그리고 그로 인해 얻은 결과를 쓴 글이다. 한 사람의 별 볼일 없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에겐 큰 결심인 데다 추후에 기억하고 싶은 일이기에 이리 글로 남겨본다. 본래의 목적은 나의 에세이를 작성하고자 하는 목적이었으나, 아직 나는 그 정도의 실력이 못 된다고 판단하여 '독립선언-자유일기'라는 제목의 매거진으로 그간의 이야기들을 그려보고자 한다. 나는 12일이란 시간을 쉬며 더욱 단단해진 생각을 마주할 수 있었고, 그 기억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기에. 때문에 미지수 특유의 비유와 은유, 소설적인 문장이 없더라도 너그러이 이해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1.

나는 인간관계에서 스트레스를 정말 많이 받는 사람이었다. 대표적인 예시로 가족관계가 있는데, 나는 특히 나의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깊은 스트레스를 느꼈다. 아버지 역시 그랬을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나는 아버지에게 꽤나 상처를 받았다. 마치 외줄타기를 하는것 마냥 위태롭다가도, 금세 뻥 뚤린 도로를 지나가듯 편안할 때도 있었다. 적어도 나는 그런줄 알았다. 그러나 이런 줄타기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버지와의 관계를 놓아버리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는데, 그건 바로 나의 부탁으로부터 시작된 일이었다. 아버지는 내가 노는 일을 가지고 종종 짓궂게 놀리곤 하셨다. 나는 현재 인터넷 상에서 타인들과 이야기하는 일을 즐겨 하고 있는데, 아버지께선 그 일이 여간 마음에 들지 않으셨나 보다. 때문에 나는 그럴 때마다 무안하고 쑥스러워서 여느 때처럼 나를 놀리던 아버지께 한번 진지하게 말씀드려 보았다.

"아빠. 나 아빠가 그렇게 놀릴 때마다 정말 기분 나쁜데, 그렇게 말 안 하면 안 돼?"

당시에는 아무 말 없던 아버지께서 추후에 나에게 한 말은 가히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는

"너는 나의 말을 듣지 않으면서 나는 왜 네 부탁을 들어줘야 해?"라고 말씀하시며 꿋꿋이 나를 놀리셨다. 나는 정말 기분 나빴던 말이, 정말 무안했던 말이, 정말 부끄러웠던 말이 아버지에겐 그저 '장난'에 불과했다. 나는 그때 느꼈다. 아, 나의 아버지는 나와 대화를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구나. 아버지는 나와 대화를 하고 싶지 않구나. 아버지는 나와 대화가 통하지 않는구나. 그래서 나는 아마 그때부터 포기했던 것 같다. 아버지와의 관계를, 더 나아가선 상처받길 원하지 않던 내 모습을. 생각해 보면 아버지는 늘 이런 식이 었다. 자신의 감정을 남에게 빗대어 표현하고 남을 탓하고 비난하며 표현하는 그런 사람. 그럴 때면 나는 문득 어머니의 '너네 아빠는 감정표현으론 초등학생이야.'라던 말이 생각났다. 나는 그 말을 들은 순간 정말 온 마음 다 해 동의할 자신이 있었다. 초등학생이 뭐야, 유치원생으로도 모자란 마당인데. 아버지는 나에게 그런 사람이었다. 17년을 살아가며 다 받아냈으니, 마음속에 칼을 새겨가면서까지 품어냈으니 무얼 더 바라랴. 그래서 나는 포기했다. 아버지와의 관계를, 아버지에게 상처받기 싫어하던 어린 나를. 이젠 내가 나를 지키고 싶어서, 그러면 안 되는 걸 알지만 아버지라는 단어만 들어도 진절머리가 나서.

다음장에선 내가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해 했던 생각을 정리해 보도록 하겠다, 다음 주에 보길 약속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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