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꽃 (2)

by 미지수
시간이 많이 지난 만큼 [바늘꽃 1]을 읽고 오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1.

때 늦은 아침, 아마 아홉 시쯤 되었을까요. 저는 여느 때와 같이 크로켓을 사 들고 와 선배의 앞에 내밀었습니다.

"선배, 고로켓 드세요."

"생각 없다니까 왜 또 사 왔어."

그러나 선배는 건성으로 대답만 할 뿐, 그렇게 좋아하시던 고로켓을 쳐다보지도 않고 자신이 작성하던 연구일지에만 시선을 주었습니다. 저는 못내 속이 상해서 고0로켓을 선배의 일지 위에 올려놓고는 그대로 옆자리에 앉아버렸죠. 선배는 제 행동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으시고 그저 연필을 잡은 손만 바쁘게 움직이실 뿐이었습니다. 저는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다 선배가 미처 처리하지 못한 실험 샘플로 시선을 옮겼습니다. 할 일은 산더미처럼 많았지만 선배님께서 고로켓을 식기 전에 드셨으면 싶었기에 저는 샘플 앞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거 조심해서 다뤄. 잘못하면 깨진다."

선배님께선 참 신기한 존재였습니다. 연구 일지에서 눈을 떼지 않으시면서 제가 샘플 앞으로 자리를 옮긴 건 어떻게 아셨을까요.

"선배, 저도 이제 2년 차예요. 다 안다고요."

저는 나지막이 중얼거리곤 샘플에 눈을 가져다 댔습니다. 정확히는 샘플을 담은 현미경이지만요. 저는 샘플 확인을 마치고 선배님을 쳐다보았습니다. 연구 일지는 이미 다 작성하신 후였고, 저와 눈이 마주친 지금은 자신이 작성한 일지들을 정리하고 계셨습니다. 제가 내민 고로켓은 어느새 밀려나 책상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었고요. 참 이상했습니다. 평소라면 지금쯤 고로켓의 포장지를 까고 계셔야 할 선배가, 여전히 연구일지에 집중하고 계셨으니까요.

"선배, 좀 드시고 하세요. 벌써 열두 시예요."

저는 참다못해 고로켓을 집어 선배에게 내밀며 말했습니다. 그러나 선배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했습니다.

"요새 바쁜 거 몰라? 2년 차니까 잘 알 거 아니야. 밥 먹을 시간 쪼개서 연구하고 있는 거 안 보여?"

선배의 말에 저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원래도 날 선 말투를 사용하는 것은 알았지만, 저에게 쓴 경우는 드물었으니까요. 저는 그 자리에 얼어서 선배의 옷자락에 시선을 두었습니다. 연구가 마감될 때면 선배님께선 늘 조금씩 나사가 풀리곤 하셨습니다. 날짜를 잘못 적는 실수를 하신다거나, 자신의 물건을 잃어버린다는 그런 실수 말입니다. 옛것을 보내기 싫어서일까요, 아니면 사람 대신 연구에 정을 붙인 탓일까요. 지금 선배님의 자리엔 예전의 연구일지까지 가득해 자리가 어지러웠습니다.

"바쁜 건 알지만 몸은 챙겨야죠, 선배. 이러다 사람 하나 쓰러지겠어요."

이번엔 저 역시 지지 않고 말했습니다. 선배의 옆 자리에 놓인 달력은 12월을 가리키고 있었고, 30일에는 빨간색 색연필로 '연구 마감'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오늘이 지나면 연구 마감은 삼일밖에 남지 않았지요. 저 역시 그 일정을 잘 알고 있었으나, 저에겐 연구보다 먼저인 것이 있었고, 그게 바로 선배였습니다.


2.

선배의 모습은 참으로 지쳐 보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밤낮 가리지 않고 연구에 매진하여 눈 밑에는 진한 다크서클이, 밥도 잘 챙겨 먹지 않아 살도 꽤나 빠져 있었습니다. 저는 그러한 선배의 모습이 너무나 안쓰러워 맨날 몸에도 그다지 좋지 않은 크로켓을 건넸지만, 이젠 그마저도 선배님께서 거부하고 계셨습니다. 대체 무엇이 그리도 두려운지, 선배는 무언가에 쫓기듯 연구를 해나갔습니다.

그렇게 잠시의 소란이 지나고,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오후가 되었습니다. 저는 선배의 시간을 존중하려 잠시 나갔다 온 터라, 그동안 선배가 무얼 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요. 저는 조심히 연구실의 문을 열고 발을 딛었습니다. 그러나 익숙한 실루엣 대신, 한 공책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선배님께서 그토록 애지중지 대하던 연구일지였습니다. '열여섯 프로젝트'라는 제목의 공책을, 저는 최대한 조심히 펼쳤고, 이내 그 마지막 장에서 선배님의 행방을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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