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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같은 선배

죽어서도 나를 기다린 참 미련맞은 선배

by 미지수

월요일 아침, 창문에서 새어 나오는 햇빛에 부스스 눈을 떴다. 시간은 벌써 오후 열 두시를 훌쩍 넘겨 있었고, 큰 마음먹고 구매한 휴대폰은 알람을 울리다가 포기한 듯 전원이 나가 있었다. 반지하에 사는 나에게 사람들의 발소리와 그림자가 아니라 햇빛이 쬐여진다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었으나, 다 귀찮았던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다시 눈을 감았다. 그러다 문득, 오늘이 선배의 기일이라는 게 떠올랐다.

"현서우, 안에 있냐?"

그때,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우리 집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났다. 나는 현관문을 흘끗 쳐다보고는 다시 침대에 픽 쓰러지듯 누웠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기 싫어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렸고, 내 이름을 듣기 싫어 베개로 귀를 막았다. 짜증 났다. 누가 우리 집 문을 두드린다는 게, 내 이름을 안다는 게, 내가 살아있다는 게, 짜증을 넘어 혐오스러웠다.

"야, 없나 봐."

또 다른 목소리가 나의 짜증을 보태주었다. 나는 더 이상 아무런 소리도 듣기 싫어 침대 안으로, 이불속으로 더욱더 파고 들어갔다. 무언갈 들으면 내가 살아있다는 게 너무나도 생생히 느껴졌기 때문에 나는 소리 자체가 싫었다. 내가 살아있다는 건, 곧 나만 살아있다는 뜻이니까.

눈을 질끈 감고 다시 잠에 빠지려던 찰나.

"서우야, 우리 연이 보러 갈 건데..."

연이. 연이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눈이 번쩍 떠졌다. 그렇게 듣기 좋아하던 말이었는데, 지금은 정말 끔찍이도 듣기 싫은 말이다. 내 선배였던 이 연은 내가 가장 좋아하던, 존경하던, 애정하던 선배였다. 선배는 자신의 일은 물론 남의 일까지 모두 완벽하게 해내는 상식 밖의 인간이었다. 너무나도 뛰어난 인간이어서 로봇이 아닌가 하고 의심될 정도로 뛰어난 인간. 그게 바로 나의 선배였다. 학교에서 유명세를 떨치진 못했지만 선생님들에겐 모범생 중 모범생으로 알려져 이쁨도 많이 받았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찰대까지 졸업한 선배는 취직에 성공해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선배는 무슨 사건이든 척척 해결했고, 뒤늦게 합류한 내가 일을 하다 낑낑대는 부분이 있으면 마법처럼 고쳐주었다. 그런 선배의 모습에 내가 홀딱 반했고, 이듬해 우리는 결혼을 약속했다. 너무 급작스러운 전개 같겠지만, 선배와 나는 같이 일을 한 지 8년이 다 되었었고, 우리가 결혼을 약속한 건 같은 일을 한 지 7년째의 일이었다. 그리고 일 년 후, 선배는 죽었다. 죽기 전에 검거한 범인의 소행이었다. 범인은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었는데, 잔인하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 새끼가 내 선배를 죽였다. 내가 끔찍이도 아끼는 사람을 무자비하게 죽였다. 물론 직접적으로 칼을 들고 선배의 몸에 후벼 파며 죽인 건 아니었다. 그저 죽게 이끌었을 뿐이었다. 정신적으로 끊임없이 죽음을 강요하고, 신체적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선배가 죽은 뒤에야 이 사실을 알아낸 나는 장례식에서도, 화장터에서도 울지 않았다. 울지 못했다. 울고 싶지 않았다. 여러 가지 감정들이 교차하며 서로 순위를 다투는 듯, 내 머릿속과 마음속은 복잡한 실타래처럼 엉켜 있었다.

선배가 죽은 그 뒤로, 나는 집에 틀어박혀 나가지 않았다. 온 세상 사람들의 얼굴이 범인 얼굴처럼 보였고, 눈앞에는 죽은 선배가 아른거렸다. 목을 매달고 축 쳐진 채 앙상한 몸을 드러내고 있는 선배가 너무나도 선명히 보였다.

"서우야, 같이 갈 생각 없어?"

한참 과거에 젖어있던 나에게 조심스레 말을 건네는 연화선배의 목소리를, 나는 못 들은 체 가만히 누워있었다. 들은 척하고 싶지 않았고, 듣고 싶지 않았다. 저 선배의 목소리를 들을 때면 어김없이 연이선배가 떠올랐기에 더욱더 고통스러웠다. 이제 더는 고통스럽고 싶지 않았다. 나에겐 이 정도도 너무나 버거웠는데, 자꾸만 선배가 당한 고통이 생각났다.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괴로웠을까. 나는 왜 조금 더 빨리 알아채지 못했을까.

내가 한참 동안 입을 다물고 있자, 선배는 체념한 듯 말했다.

"서우야, 우리 갈 테니까 생각 있으면... 연락해 줘. 여기 둘게."

흥, 전 애인 같은 저 말투는 뭐람. 여기 둔다는 건 뭘 둔다는 거지? 뭐든 상관없다. 어차피 나랑 상관없을 테니까.

나는 콧방귀를 뀌고는 침대에 꼼짝 않고 눈을 감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무한하고 칠흑 같은 어둠이 펼쳐졌다. 그저 조그마한 미생물 같은 것이 둥실둥실 날아다니듯 떠돌 뿐이었다. 그러던 중, 나는 갑자기 짜증이 솟아올라 침대를 박차듯 일어나선 머리를 벅벅 긁으며 주방으로 향했다. 냉수를 가득 따라 벌컥벌컥 마셨다. 목이 묵직하니 아려왔다. 나는 선배의 목소리가 들렸던 현관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곤 잠시 고민하다 문을 열어 밖을 살펴보았다. 선배는 보이지 않았는데 대신에 작은 상자가 하나 놓여있었다. 택배는 올 게 없었으니, 연화선배가 놓고 간 게 뻔했다. 나는 잠시 주저하다가 상자를 들고 집으로 들어왔다.

"...... 선배도 참..."

상자를 열자, 조그마한 쪽지와 함께 검은색의 정장이 보였다.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쪽지를 집어 들어 읽기 시작했다.

<우리 오랜만에 한번 완전체가 되어보자. 하늘과 함께니까 걱정 없을 거야. 밑에 주소 적어둘게. 괜찮아, 서우야.>

툭. 따듯한 눈물이 한 방울 떨어져 쪽지를 물들였다. 완전체라는 이 말이 왜 그렇게 위로가 되는지, 괜찮다는 말이 어쩜 그리 듣기 좋은지, 나는 앉은자리에서 눈물을 한바탕 쏟아내었다. 선배가 죽고 나서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단어, 완전체. 나에겐 거의 금기시 여겨지던 단어를, 선배가 부드럽게 풀어서 써 주었다. 얼어있던 내 마음에 따뜻한 온기를 대어 한순간에 녹아내린듯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쪽지를 눈물로 적시고서야 나는 선배가 준비한 검은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갔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햇살은 제법 낯설었다. 날씨도 어느새 꽤 쌀쌀해졌음을 이제야 깨달았다. 나는 더 이상 다른 생각을 머리에 담지 않고, 바로 택시를 잡아 선배가 적어둔 주소로 향했다. 납골당이라는 글자는 언제 보아도 무겁고 답답한 글자였다. 특히 납골당에 자리한 선배의 이름을 볼 때면 더더욱 마음이 무거워졌고, 견딜 수 없이 아려왔다. 하지만 이미 온 이상, 돌이키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인기척이 느껴지는 곳으로, 연이선배의 납골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저 멀리에 연화선배가 보였다.

"선배, 저 왔..."

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연화선배는 나를 꼬옥 끌어안았다. 나는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때였다.

"서우야, 안녕?"

연이선배의 목소리가 창 안에 있는 MP3로 들려왔다. 나는 그대로 멈춰버렸다. 그토록 듣고 싶어 했지만, 그토록 괴로워하던 목소리가 지금 내 앞에서 들려오고 있다. 목소리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서우야, 와 줘서 고마워. 변해버린 내 앞에 서서 나를 보기가 정말 어려웠지?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 텐데... 장하네, 내 남편."

선배의 웃음소리가 너무나도 아름답게 들렸다. 나는 손을 덜덜 떨며 환하게 웃고 있는 선배의 사진을 쳐다보았다. 참을 수 없이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선배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고, 나는 끝까지 다 들었다. 그리고 끝까지 울었다. 미안하고, 고마웠고, 보고 싶었다. 너무너무 그리웠다. 이제야 용기를 낸 나 자신이 너무나도 부끄러웠고, 여기로 이끌어준 연화선배한테 처음으로 고마웠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 나서야, 한참을 쏟아내고 나서야 나는 진정이 되었다. 연화선배는 연신 내 등을 쓸어주었고,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연이선배가 살아있었던 때의 옛 추억에 잠겼다.

한참을 뒤풀이한 뒤, 이제 집에 가야지 싶어 뒤를 돌았는데 뒤에서 익숙한 음성이 또다시 들렸다.

"서우야, 안녕?"

또다시 들린 익숙한 음성은 전에 들었던 말들을 똑같이 뱉어냈다. 그리고 나는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선배는 늘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내가 몰랐다는 걸, 먼저 가버린 게 아니라 먼저 기다린 것이라는 걸.

뒤통수를 망치로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겨우겨우 정리한 마음은 다시 무너졌고, 또다시 정리하기까진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렇게 나는 이제야 선배를 추억할 수 있게 되었다.


-에필로그

정말 오랜만에 연이선배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연화선배의 차를 타고 갔다. 사실 연화선배는 저 음성을 처음 들었다고 했다. 저 음성 때문에 자신을 데려온 게 아니라, 너무 안에만 틀어박혀 혹여나 몸에 곰팡이가 필까 싶어 데려온 것이라 했다. 그래서인지 저 안에 든 MP3에 녹음 기능이 있었던걸 이제야 알았다고 했다.

연이는 죽어서도 끝까지 나를 기다려 줬고, 나는 늦게 잡아내긴 했지만,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았다. 나는 어느새 드리운 까만 하늘을 쳐다보며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오늘은 연이가 꿈에 나오더라도 참으로 달콤한 꿈이 될 것 같았다. 오늘만큼은 바보같은 선배가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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