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리야, 누나는…
“돌리야.”
애꿎은 인형을 불러다 앉히고 말을 이었다. 인형은 당연하게도 말이 없었고, 그저 늘 똑같이 웃는 얼굴로 본인을 맞아 줄 뿐이었다.
“누나 정말 열심히 살았는데, 왜 이 모양일까.”
그렇게 인형을 앉혀두고 묵혀놨던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
“음, 그래, 뭐… 사실 그렇게 열심히 살지도 않았어. 그런데 하루하루 정말 치열하게 살았다고 생각하거든. 누나는 살아가기 위해 살았어. 엄마아빠는 누나더러 살아만 달라고 하는데, 누나한텐 그게 제일 힘들었거든. 누나가 왜 사는지도 모르겠고, 왜 태어났는지도 모르겠었어. 그냥 모든 게 다 싫었고, 마냥 죽고 싶었어.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니 누나가 이 세상에 태어난 사실을 원망하고 있더라고. 정말 증오를 넘어선 혐오였어. 누나의 존재에 대한 혐오였고, 누나를 태어나게 만든 엄마아빠에 대한 혐오였고, 누나가 존재하는 세상에 대한 혐오였어. 그래서 그냥 죽고 싶었던 것 같아.”
죽고 싶다는 말에도 인형은 그저 가만히 앉아 듣고만 있었다. 하긴, 인형이 말을 듣지 않으면 뭘 하랴. 뭐, 본인 의지로 듣고 있는 것도 아니겠지만. 그래도 그런 인형에게 마냥 고마움을 느낀 본인은 계속해서 독백을 이어나갔다.
“사실 죽고 싶은 건 지금도 똑같아. 살고 싶다면 그건 거짓말이지. 그런데 엄마한테는 말 못 해. 내가 나아진 것 같다고 했을 때 얼마나 좋아하셨는데, 또다시 죽고 싶다고 말하면… 어우. 엄마의 표정이 어떨지, 마음이 어떨지 상상도 안 가. 아니, 상상하고 싶지 않아. ‘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라거나 ‘아…’ 하는 표정이겠지.”
잠깐 한숨을 내쉬고, 다시 말을 이었다.
“요즘은 밤이 좋은데 싫어. 무슨 말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그냥 저렇게밖에 표현을 못 하겠어. 밤이라는 시간은 원래 좋아했지만, 자려고 누울 때면 좀 답답해. 하루동안 걱정을 모른 체하고 살다가 갑자기 한순간에 모여드는 느낌이야. 자려고 누웠다가 숨이 턱 막힐까 봐 두려워 벌떡 일어나는 것도 어느새 일주일째네. 미칠 것 같은데, 한편으론 내가 뭘 할 수 있나 싶어. 할 줄 아는 것도 없으면서 성격도 더럽고, 얼굴은 좀 못생겼나? 완전 못생겼지, 인간관계도 똥망이지, 나 대체 있는 게 뭐니.”
말을 마친 본인은 뭐가 웃기는지 헛웃음을 픽 내뱉었다.
“요즘은 집에 가고 싶단 말을 입에 달고 살아. 근데 웃긴 게 뭔지 아니? 집에 있어도 집에 가고 싶다는 거야. 나도 내가 이해가 안 가서 찾아보니까 편해지고 싶은 사람의 심리래. 뭔가 이상하지? 편해야 하는 곳이 집인데, 그곳에 있어도 집에 가고 싶다니. 대체 얼마나 편안한 걸 원하는 걸까, 누나는. 하긴, 내가 좀 이기적이어야지. 안 그러니?”
말을 마친 본인은 책상에 앉아있는 멀뚱한 인형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리곤 인형에게 하소연하는 자신의 신세가 우스워 헛웃음을 지었다. 지겹도록 만났던 상담사라는 인간에게 해야 할 이야기를 이런 인형한테 하고 있는 꼴이니, 제법 우스웠다. 분명 엄마아빠는 이런 본인을 미친 사람 취급하겠지.
“돌리야.”
헛웃음을 짓던 본인은 인형을 바라보며 자신이 붙여준 이름을 불렀다.
“너도 누나가 미친것 같니?”
인형을 부드럽게 안으며 물었다. 정말 내가 미친것 같냐고, 정말 내가 이상한 거냐고, 정말 내가 다 잘못한 거냐고.
지금 이 상황에서도 마음속에서는 끊임없이 본인의 잘못이라고 다그치고 있었다. 네가 못나서 그런 거야, 너만 없어지면 해결되는 거야, 네가 태어나지 않았으면 되는 거야, 하고.
눈물을 흘리며 하던 말은 어느새 울부짖음으로 바뀌어 있었다.
“정말로 내가 태어나지만 않았더라면. 그러면 해결되는 거였을까.”
하지만 본인이 던지는 물음에 답을 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사실이 본인을 더 비참하게 만들었지만, 한편으론 마음 편했다. 마치 이 세상에서 아무도 본인을 모르는 것처럼 느껴져서. 앞에 앉은 인형 빼고는 아무도 본인을 모르는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