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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전화

그리운 온기

by 미지수

한 여자가 공중전화 앞에 섰다. 그리고는 전화번호를 적어둔 쪽지를 잠시 확인하더니, 이내 하나하나 되새기듯 번호를 누르며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뚜르르, 뚜르르…

여러 번의 신호음 끝에 여자가 입을 열었다.

“선배.”

잔잔하고 어여쁜 목소리가 전화부스 안에 울려 퍼졌다.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부드럽고 달콤한 솜사탕 같았으며, 혹여나 사라질까 가슴이 아릴 정도였다. 자칫 잘못하면 사르르 녹아버리는 솜사탕처럼, 혹여나 어딘가로 사라져 버릴까 걱정되는, 정말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저 이번에 경찰대 붙었어요. 선배랑 같이 다니려고 준비했던 경찰대요.”

수화기 너머로 말을 잇는 여자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번졌다. 어쩌면 씁쓸해 보기 이도, 행복해 보이기도 한 아리송한 미소가 여자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듯했다.

“선배도 경찰대 붙었을 때 기분이 이랬어요? 뭔가 다 끝난 것 같으면서도, 새로운 시작을 하는 기분이요. 정말 이상한 기분이에요. 나만 이런 거 아니죠?”

여자는 저 너머에서 들려온 대답에 피식 웃으며 다시 답했다.

“선배, 이제 짓궂은 장난은 그만 치세요. 저는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라고요. 그 정도 장난은 구분할 줄 알아요.”

말을 마친 여자의 눈에서 맑은 눈물이 툭 떨어졌다. 여자의 코 끝은 빨개져 있었고, 두 뺨 역시 차가운 겨울바람 때문인지 빨갛게 되어 있었다. 여자는 눈물 젖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참. 선배, 그거 알아요? 내가 선배 좋아했던 거. 나 선배 진짜 많이 좋아했는데. 그렇게 많이 좋아해 본 사람은 선배가 처음일 거예요.”

말을 하며 서글픈 미소를 짓는 여자의 볼에 맑은 물방울이 떨어졌다. 여전히 여자의 마음속에 자리한 사진엔 그녀와 선배가 활짝 웃고 있었다. 아무런 걱정도, 슬픔도 잊게 만들어주는 천사 같은 미소였다. 여자는 그 사진을, 이 마음을 다시 한번 어루만지며 말을 이었다.

“진짜 저 대학교 합격 통보받았을 때, 그때 선배 집에 뛰어갈 뻔했잖아요. 너무너무 기쁜 거 있죠? 앞으로 선배랑 같이 하는 대학생활이 너무 근사하게 느껴지고, 막 기대되는 거예요!”

코를 훌쩍이며 배시시 웃는 그녀의 모습에 마치 아기와도 같은 순수함이 묻어났다. 어디 하나 때 묻은 곳 없이 순수함 백 퍼센트인 그녀의 모습이, 오늘따라 참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나저나 선배. 저 선배네 집 한번 초대해 주세요. 그때 예전에 고등학생 때 한번 가보고, 한 번도 안 가봤잖아요. 그러니까 이번 선배 생일 때 저 초대해주셔야 해요.”

여자는 자꾸만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고 활짝 웃으며 마지막으로 말을 이었다.

“… 보고 싶어요, 선배.”

이윽고 전화기 너머에선 뚜- 뚜- 하는, 전화가 끊겼음을 알리는 소리가 들렸다.

말을 마치고 헛웃음을 짓는 여자의 눈에서 투명한 눈물이 흘러내렸고, 여자는 계속해서 닦아냈지만 눈물은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여자는 먼저 떠나버린 선배에게 닿을 수 없는 말을 꾹꾹 눌러 담아 보내었다.


너무나도 그리운 사람이었기에,
내 기억 속의 유일한 온기였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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