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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이 Feb 02. 2024

이만하면 되지 않았어! 아니야, 이만하면 됐어.

어쩌면 난,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사랑한 날보다 미워한 날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스스로의 단점을 찾아내는데 탁월한 재능이 있었던 걸까… 나에겐 내가 이루어낸 그 모든 것, 내가 가지고 있는 그 모든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난 결국 항상 부족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난 항상 부족했기에 스스로를 미워하고, 채찍질하고, 매사에 자신이 없었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나보다 많은 걸 알고 있는 사람들은 항상 있었고, 내가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서 큰 성과를 이뤄냈다 하더라고 나보다 잘난 사람들은 너무나 많았다. 내가 아무리 운동을 하고 외모를 열심히 가꿔도 나보다 예쁜 사람들 또한 너무 많았다…


나의 이런 고민들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때면 그들의 대답은 항상 같았다.


“아니 너만 하면 됐지 뭐가 문제야?”


어쩌면 칭찬이었을 수도 있겠다. ‘너만 하면 됐다'라는 뜻은 어쩌면… 타인의 시선에서 난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뜻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난 이런 상황들이 반복되면서 더 이상 누군가에게 나의 고민을 털어놓는 일은 관두기로 했다. 아무리 그들에게 ‘너만 하면 됐다'라는 소리를 들어도 난 항상, ‘나만 하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난 몇 년간 ‘나만 하면 되기’ 위해 자기 계발에 몰두했다. 새벽기상도 해보고, 30분 단위로 계획도 세워보고, 일주일에 책 2-3권씩 읽어도 보고, 건강하다고 하는 음식 ‘만’ 먹었다.


그리고 난 점점 나은 사람이 되어갔다. 표면적으로는 말이다. 사람들은 나에게 대단하다, 존경스럽다, 부지런하다, 성실하다는 말을 해주었다. 하지만 난, 왜인지 점점 불행 지는 것 같았다. 인생에 더 많은 기준과 규칙이 생기면서 난 ‘나'를 잃어가는 것 같았다.


전날 늦은 시간까지 일하다 새벽 5시에 기상하지 못한 날에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보잘것없는 사람 같았고, 내가 세워놓은 30분 간격의 계획이 조금이라도 틀어지면 화가 나고 짜증이 났고, 읽기도 싫은 책을 꾸역꾸역 읽으며 살아갔다.


그렇게 계속 살아나가던 중 난 2021년 심히 건강이 악화되었다. 원인은 정확하지 않지만, 실제로 면역이 너무 떨어지는 바람에 먹을 수 있는 게 거의 없게 되었다. 밀가루 음식을 먹으면 온몸에 이상하게 생긴 두드러기가 올라왔고, 하다못해 작은 양의 밀이 들어간 간장 같은 조미료를 섭취하는 것도 어려웠다. 몸에 기가 하나도 없어 계단을 오르기 전에 심호흡으로 마음을 다잡고 올라가야 했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서기만 해도 심박수는 160 bpm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몸이 아프니 점점 우울감에 시달리게 되었다. 주말에는 하루종일 잠만 자도 잠이 부족했다. 하루에 5시간만 자도 끄떡없는, 원래 잠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몸이 아프면서 난 ‘어쩔 수 없이’ 내 삶의 규칙들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너무너무너무 힘들었다. 보다 더 비참하고 쓸모없고 게으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렇게 하루, 일주일, 한 달, 두 달이 지났고 난 내가 정해놓은 기준과 규칙을 따르지 않는다고 해서 이 세상이 무너지고, 내가 삶아 놓았던 그 모든 것들이 물거품이 되는 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나의 삶에 여유를 가지고 임하다 보니 난 하루의 계획이 어긋나더라도, 내가 만들어 놓은 기준과는 조금 달라도 ‘어쩔 수 없지 뭐~~’라는 태도를 가지고 불안했던 일상을 조금 더 편하게 살아나갈 수 있었다. 


게으르게 살라는 것은 아니다. 책임감 없이 내가 좋아하는 것들만 추구하면서 살라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단, 나를 남들이 정해놓은 규칙과 기준에 맞추기보다는, 내 삶의 규칙과 기준은 ‘나’로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갓생을 살려면 하루를 5시에 시작해야 한다고 하니 저녁근무를 하면서도 5시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것.

간헐식 단식이 다이어트에 좋다고 하니 생활패턴에 맞지도 않는 간헐식 단식을 하는 것.

공복 유산소가 좋다고 하니 어지럼증을 참고 공복 유산소를 하는 것.  

경제에 관한 책을 읽으면 좋다고 하니 내가 읽고 싶을 책은 뒤로하고 경제에 대한 책을 읽는 것.


이 모든 행위는 멋져 보일 수는 있다. 사회가 정해놓은 ‘완벽한 자기 계발 틀'에 맞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자기 계발을 하는 이유는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서인데... 사회가 정의한 완벽한 규칙과 기준만을 추구하다 보면, 우리는 결국 우리가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뭔지를 잃게 되다. 즉, 존재하지도 않는 '완벽'을 쫓고 쫓고 또 쫓다, 결국 완벽하지 못한 자신을 탓하고 미워하다가 언젠간 ‘번아웃'을 겪게 될 것이다.


그럼, 완벽한 계획과 기준에 나를 맞춰야 한다는 불안감에서 해방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서는, 더 행복한 내가 되기 위해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이만 하면 됐어!’라고 외치며 융통성 있는 ‘자신맞춤' 루틴을 개척해야 한다는 것이다. 존재하지도 않는 '완벽'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이만하면 됐어!'라고 한번 외쳐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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