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 기타리스트의 고뇌

by 뻑곰
나는 이제 올해 12월 6일, 10년을 사귄 내 영혼의 반려와 식을 치루고 영원히 함께 살 것을 맹세하게 된다.


안그래도 내 몸이 하나 더 있었다면 이제는 둘로 쪼개져있는 내가 아니라, 온전한 하나가 되어 이 세상을 헤쳐나가야한다는 사실이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암울하다. 나는 원체 낙천적이고 생각을 깊게 하지 않는 성격이라, 내 반려가 무슨 걱정을 하는지 그리 깊게 헤아리지 못했다. 어떻게든 살아가겠지 하는 생각으로 벌써 34살이 되었다. 그녀는 편집디자인 프리랜서이고, 나는 실낱같은 살길이 풀린 밴드의 기타리스트로서 살아가고 있다. 우리 둘 다 수익이 고정적이지는 못한 상황. 5월에는 드라마 회사에서 안전관리자 근무를 계약 만료로 그만두게 되었고, 이 달 15일에 실업급여 1차 교육을 이수하러 간다.


혹자는 얘기한다. 실력이 어떻든 돈을 버는 기타리스트는 프로라고. 그래, 그런 알량한 프로로서 살아간지 꽤 오랜 세월이었고, 이제 분기별로 소액이 지급되던 밴드 수익은 현재 월 단위로 나올 정도로 늘기는 했다. 직장까지 다니던 시기에는 그리 큰 고민은 아니었으나 일자리가 사라지고 결혼이 가까워지는 지금, 나는 큰 난관에 봉착했다. 오늘까지만 해도 별 생각 없었다. 그냥 흘러가는대로, 즐겁게 살아도 모자랄 인생에 현실은 내게 사약과도 같다. 오늘 반려와 진하고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과연 우리가 미래에 안정적이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나라를 탓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인생이란 자신이 내린 선택을 가지고 그 과정에서 여러 변수를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그 변수들로 각자의 자아가 만들어지고, 그 자아로 세상을 살아간다. 작은 것에도 만족하는 나는 변수를 많이 만들고 살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에 만족했다. 반면, 내 반려는 그렇지 않았다. 늘 작은 것에도 고민하고 계획을 세우며 변수를 만들고 살 길을 억척스레 돌파하는 신석기시대의 족장과도 같은 성품의 소유자다. 완전 반대다.


GOD 노래 중에, 반대가 끌리는 이유라는 곡이 있다. 중학교 때 즐거운 마음으로 듣던 곡이, 제법 절절하게 현실이 되었다. 나는 추진력과 계획이 있는 반려를 동경하며 존경했고, 반려는 낙천적이고 둥글둥글한 내게 정신에 과부하가 올 때마다 의지하고 편안함을 얻었다. 사실 그 관계면 된다고 생각했다. 싸우지 않았던 적은 없으나, 서로의 마음을 진실로 터놓고 이야기할 때 세상 그 어느 접착제보다도 강력한 마음의 유대로 끈끈해졌다. 3M이나 록타이트는 어림도 없다. 그래서 결혼하기로 했다. 그런데, 무얼 먹고 살지? 사랑의 확신과 낭만만으로는 이 거친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다는 현실의 어두운 면도 고려할 줄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웃기지 않는가? 나이 34살먹고 이런 생각을 한다는게. 정신연령이 23살이 나올 때 부터 알아봤다. 아직도 내 머릿속은 꽃밭이다. 하지만 그 꽃밭을 위협할 잡초나 전염병, 해충에 대해서도 인지하고 단도리칠 줄 알아야 한다. 나는 그런 나이가 되었다. 아니, 누군가는 중학생 혹은 초등학생 때에도 통찰력이 깊은 이라면 할 줄 아는 생각을 나는 이제 한다. 늦었지만, 인생이라는 모루 위에 아직 철이 덜든 나를 올리고 책임감이라는 망치로 열심히 두들겨지다보면 잘 벼려진 강철처럼 단단한 삶을 사는 '철'든 내가 있을지도?


먹고 살 길이야 늘 열려있다는 생각을 한다. 생각을 조급히 먹어서 나쁠 건 없지만, 내게 없어져야 할 것은 바로 게으름. 오늘도 낮 두시에 일어났다. 반성하며 그동안 미루어두었던 브런치에 글을 이렇게 쓴다. 나의 고뇌를 저버리지 않고 사는 매일이 되었으면 한다. 그 고뇌속에서 꽃피는 변수들이 나를 더 단단하게 했으면 하는 바램에서.


일단 기타부터 잡아야 한다. 조만간 다가올 라이브 클립 촬영 때문에라도. 그리고 신곡 녹음을 위해. 박치인 나는 프로라고 하기도 민망하지만, 그래도 들어주는 여러분들이 있어 먹고 삽니다. 화이팅. 그렇게 로직과 플러그인을 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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