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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미리 Aug 24. 2022

가래의 계절/ 김성중

『강신보 가래나무』

김성중 시인의 『강신보 가래나무』에서 가래의 계절을 소개한다.  

   


가래의 계절/ 김성중   

       


강쟁들에 벼가 누렇게 익어가면

강신보 가래는 중력에 이끌려

거침없이 낙하를 감행한다

떨어지는 곳을 선택할 수 없는 가래

풀밭에 떨어지면 푹신푹신

물 위에 떨어지면 잠수했다 떠오르고

아스팔트길이나 시멘트길에 떨어지면

충격으로 껍질을 홀랑 벗고 나신이 되지

바람이 불면 가래가 떨어지고

비가 내리면 가래가 떨어지고

강신보 가래 떨어지는 소리

강쟁들을 건너서 내 귀에 들려오면

자동차 바퀴가 으깨기 전에

나는 새벽같이 수바래로 달려간다

출근길에 가래를 줍기도 하고

점심을 먹고 나서 강신보를 달려가고

남원 혼불문학관 새암바위에서

시의 샘물이 솟구치기를 기원하다가도 

강신보 가래가 부르는 소릴 듣고

숨 가쁘게 달려가기도 했는데

귀여운 가래를 만나는 가을은

날마다 설레는 오티움의 계절이다   


            


  시인이 노래하는 강신보 근처를 배회한 적이 있다. 가래나무를 본 적도 없고, 가래가 떨어지는 소리를 들은 적도 없다. 나무가 잎을 떨구고 헐벗은 계절이었고, 시인이 애절하게 노래하는 가래나무를 구별할 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중력에 이끌려 낙하하는 것이 어디 가래뿐이겠는가마는 시인이 가래를 대하는 태도가 유독 남다르다. “떨어지는 것을 선택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묻어 있다. 시인이 관찰한 가래가 떨어지는 모습이 각기 다른 이유다. 한 나무에서 꽃을 피우고 함께 열매를 맺었겠지만 마지막을 장식하는 가래의 모습이 다른 것에 반응하는 시인의 모습이 애절하다.    

  

  시인은 가래 떨어지는 소리가 “강쟁들을 건너서 내 귀에 들려오면/ 자동차 바퀴가 으깨기 전에” 달려간다고 노래하고 있다. 시인의 내면에는 그 작은 것들을 바라보는 안타까움이 묻어있다. 시인의 따스한 마음을 느낄 수가 있다.     


  급기야 가래를 “귀여운 가래”라고 표현하고 있다. 꼭 살아있는 생명체를 대하듯 “가래를 만”난다고 한다. 시인이 가래를 대하는 시선이 남다름을 느낄 수 있다. 그리하여 가래를 만나는 일이 “날마다 설레는 오티움의 계절”이라고 노래한다.     

 

  시인은 내적 기쁨을 맛보게 하고, 생의 활기를 되찾게 해주는 고향에 대한 애착을 “가래”를 통해 말하고 있다. 얼마 전 "고향의 봄"이란 노래를 부르던 시인이 모습이 떠오른다. “나의 살던 고향”이 아니라 “내가 살던 고향”이라고 우기던 시인의 모습에서도 "오티움"의 기쁨이 만연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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