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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미리 Oct 22. 2024

물염(勿染), 세상에 물들지 마라

화순적벽, 물염정에서

       

 물염(勿染), 세상에 물들지 마라     


물염(勿染)에 들고 싶은 날이 있다. 문득 오롯이 혼자만이 우뚝 서 있는 정자가 그리워진다. 차를 몰아 화순의 알프스라는 수만리를 지나 무등산을 품고 있는 이서로 향한다. 연두의 시간을 거처 진록의 시간을 견디는 산천이 울울창창하다. 동복호를 지나 드디어 물염정에 도착한다. 뜨거운 한낮이 무색할 정도로 배롱나무는 붉은 꽃을 매달고 과객을 기다리는 듯하다. 물염정(勿染亭) 현판이 먼저 인사를 건넨다.


물염정을 향해 오른다. 가까이 다가가니 울창한 배롱나무 가지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정자의 모습이 드러난다. 하필 정자는 보수 공사 중이어서 현판만이 물염정임을 말한다. 오랜만에 왔다고 삐진 여인네처럼 온몸을 꽁꽁 싸매고 눈만 내놓은 모습이다. 현판을 바라보며 안전망이 쳐진 정자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다가 앉는 것을 포기하고 돌아서는데 울퉁불퉁한 기둥이 보인다.


보수 공사 때 기둥 하나를 울퉁불퉁한 배롱나무로 교체했다는 설을 들은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어디에도 기록은 없지만, 기둥에 관심이 가는 것은 왜일까? 그 기둥은 세상사 돌아가는 것들이 상처인 것처럼 온몸으로 그 상처를 받들고 있는 것 같다. 이제는 물염정보다 더 명물로 자리 잡아 가는 것을 아는지 붉게 핀 배롱꽃들이 바람에 휘날리는데 주변이 환하다. 하늘을 올려다본다. 유난히 푸른 하늘, 구름이 두둥실 떠다닌다.


물염정의 내력을 기록해 놓은 안내판을 따라 읽는다. 이곳 물염정은 명종 무오년에 문과⋁급제하여 사헌부 감찰, 시강원 보덕, 풍기군수 등을 역임한 홍주⋁송씨 물염(勿染) 송정순(宋廷筍 1521~1584)이 16세기 중엽에 건립한 정자로 알려져 있다. 1591년 외손자 금성⋁나씨 창주 나무송, 구화 나무춘 형제에게 물려주었고 그 후 수차례 중수와 보수를 했다고 적혀 있다. 세월의 무상함을 말해 주고 있는 것 같다.


보수 중인 정자를 보니 아버지 생각이 스친다. 건물이나 사람이나 세월을 비켜 갈 수가 없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수차례 중수와 보수를 한 정자처럼 아버지도 수차례 병원을 들락거리더니 몇 년 전에는 급기야 허리 수술까지 받게 되었다. 그 이후로 약해지더니 하루가 다르게 힘들어하셨고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는 어머니 역시 무릎이 닳고 닳아 병원을 자주 간다.


정자는 보수 공사가 끝나면 예전처럼 과객에게 자리를 내어줄 것이다. 아버지는 병은 현대의학으로 고칠 수가 없다. 퇴행성 뇌의 오류는 계속될 것이고, 그런 아버지를 보며 유전자가 살아 움직여 내게로 오지 않을까 근심하게 된다. 뇌의 오류를 품고서도 기회만 되면 차를 타고 어디든 다녀오자는 아버지의 마음은 아직 자신을 청춘으로 인지하고 있는 듯하다.


앉아 보지도 못하고 정자를 내려오니 반기는 이가 있다. 그 이름도 유명한 방랑시인 김삿갓으로 불리는 김병연(1807~1863)이다. 물염정은 김삿갓이 자주 찾았던 곳이라고 한다. 본명은 김병연이다. 김삿갓은 과거를 보러 갔다가 그의 할아버지 김익순을 욕되게 하는 글로 장원 급제를 하게 되었음을 알게 되고 부끄러운 마음을 다잡지 못하고 전국 방방곡곡을 떠돌아다녔다. 삿갓을 쓰고 이름을 물어도 대답하지 않고 고향을 물어도 모르는 체했다고 한다.


1850년 화순을 찾은 김삿갓은 동복에 안주하면서 살다 동복 구암리 정시룡의 사랑방에서 1863년 3월 29일 57세로 한 많은 생을 마감했다. 서민의 애환을 노래하고 민중과 벗이 되었던 김삿갓은 삐뚤어진 세상을 농락하고, 기성 권위에 도전하는 참여 시인이고 민중 시인이었다. 김삿갓이 화순에 머물게 된 이유는 화순 적벽이 있는 물염정 일대 이곳의 경치가 수려해서이고 그리운 고향 영월을 생각하게 하는 곳이었기 때문이라는 추측을 해 본다. 


전국 명승지를 떠돌았던 김삿갓이 이곳에 머문 이유도 그만큼 물염정 풍광이 아름다워서였을 것이다. 붉은색이 감도는 바위 절벽이 정자 주변을 감싸고 있는데 오롯이 혼자 있을 수 있게 하는 곳이다. 정자에서 보면 물염적벽에 취할 수 있다. 물안개라도 피어오르면 붉은 적벽은 더한층 품격을 드러낸다.


화순 적벽은 7㎞의 바위 절벽이 늘어서 있다. 물염적벽, 창랑적벽, 노루목적벽, 보산적벽으로 나뉘어 있다. 적벽의 풍경이 중국 양자강 상류의 적벽과 비슷하다고 한다. 조선 시대 선비들이 호남을 방문하면 반드시 들르는 명승지가 화순의 적벽이었다. 적벽은 울울창창한 나뭇잎이 지고 나면 더 또렷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無等山高松下在 무등산이 높다더니 소나무 가지 아래에 있고, 赤壁江深沙上流 적벽강이 깊다더니 모래 위를 흐르는구나” 김삿갓이 영월을 떠나 1841년 처음 무등산 장불재를 넘어 적벽을 마주했을 때 쓴 시라고 한다. 김삿갓은 젊은 나이에 이미 세상의 이치를 깨달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시다. 어쩌면 이곳에서 수많은 생각에 휩싸이다 자신을 가만히 내려놓았으리라.


물염정에서 바라보는 물염적벽의 규모는 비교적 작다. 송정순이 낙향하여 물염적벽이 바라다보이는 이곳에 정자를 짓고 “티끌 세상에 물들지 마라” 즉 더러운 세상에 오염되지 말라는 뜻의 물염(勿染)이란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정자 주변을 냇물이 감싸 안고 돌며 물이 흐른다. 마치 세상에 물들지 말라는 듯 하나의 작은 섬처럼 냇물이 적벽과의 경계를 이룬다. 물염(勿染)에 들어앉지도 못하고 평생을 떠돌았던 김삿갓처럼 정자 주변을 오래도록 서성인다.


하늘은 한없이 높아 가 닿지도 못하고 세상은 어지러워 무성한 말만이 떠돌고 있다. 낡은 정자를 보수하듯이 이 세상과 지구도 보수할 수 있을까. 누군가 내 머릿속을 들여다본다면 헛된 생각만 수두룩하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물염정을 뒤로하고 내려오는 길, 다시 오는 그날은 보수 공사를 마치고 과객을 반가이 맞이하길 바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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