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미리 Oct 22. 2024

이제라도 미안해

괜찮아?

이제라도 미안해     


항상 그만큼의 거리에 서 있었다. 기회만 있으면  박학다식한 지식을 쉴 사이 없이 알려 주었던 시크한 너. 그만큼의 거리에서 잘 살 거라고 믿었다. 마음을 드러낼 시간도 주지 못하고 다그치며 아픔만 주어서 미안했다. 아무리 말해도 위로가 될 수 없는 날이겠지. “이제라도 미안해!”라고 차마 전달되지 못한 말을 입안으로 중얼거려 본다.


사는 일이 늘 그랬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세심하게 마음을 들여다봐야 하는데 정확히 말하지 않고 넘어갔다. 상처가 될 줄 알면서도 그냥 시간을 흘려보내고 지레짐작만 했다. 대충대충 넘어가서 너에게 안위를 보장할 수 없게 해 준 날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너의 마음속에 깊숙이 들어가지 못한 모든 날들이 미안했다.


굳이 오지 말라는 너의 마음을 헤아려 기다려 주지 못했던 그날도 미안했다. 몸과 마음이 힘들었던 날들이 쌓이고 쌓이다 보니 내 입장만 앞세우고 너를 배려하지 못했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았다. 자신의 자리에서 긍정적으로 열심히 살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더 미안했다. 살다 보니 나 스스로 자초한 일이 많았다. 두 손을 모으면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안주하지 못한 어리석음 때문에 앞만 보고 달렸던 날들. 모든 날들을 돌려 과거로 회귀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다시 시작해 볼 수 있을까. 아니 잘할 수 있을까. 많은 날들을 되뇌어 본다. 이제 너는 내 손길이 필요하지 않은 나이가 되었다. 너의 모든 날들, 잘 살아 주었음에 그저 고마울 뿐이다.


10년이 넘게 쓰고 있는 노트북이 고장 날까 걱정되어 하나 사 달라고 주문하면서 혹여나 하는 마음을 갖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무엇이든 알아서 하겠다고 했던 너는 노트북만 사다 놓고 가 버렸다. 퇴근하여 전화를 하니 벌써 너릿재를 넘고 있었다. 어둠이 몰려오고 갈 길이 먼 줄 알면서도 꾹_꾹 눌러 버리지 못한 두서없는 말들을 너에게 쏟아⋁냈다. 서운했던 마음을 처음으로 말하는 너에게 기다려⋁주지 못해서 미안했음을 너무 늦게 알았다.


바쁘다는 이유로 노트북만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며칠 만에 전원을 눌렀다. 비번을 입력하라고 떠서 짐작되는 번호를 눌렀다가 실패만 거듭했다. 자정이 넘은 시간 전화를 하니 받지 않기에 잠이 들었나 중얼거리고 문자만 남겼다.


“비번이 무엇이냐?”


얼마쯤 시간이 흐르고 답장이 왔다. 알려 준 비번도 잘못 눌러 “챌린지 구”란 글자가 나온다고 문자를 보냈더니 답답했던지 전화를 하여 이것저것 알려주었던 너.


최근에 어이없는 일들이 자꾸 일어나고 있다. 팔이 다쳐 병원에 입·퇴원을 했고, 차 앞 범퍼를 부딪쳐 수리를 했다. 냉장고가 고장 나고, 세탁기도 고장 나서 새로 구입했다. 급기야는 핸드폰 스미싱을 당했다. 아다리가 맞는 날이었다. 피해를 막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느라 몸이 기진맥진했다.


나를 관장하는 신이 주는 무언의 계시일까 생각하다가도 내 안위를 살피지 않고 어디 가서 농땡이를 부리고 있냐고 원망도 한다. 그러다가 더 나이 먹기 전에 돌아보고 뉘우치며 살라는 말인지도 모르겠다고 긍정적인 해석도 해⋁본다. 하루에도 두서없이 마음이 왔다 갔다 한다. 작은 깨달음이지만 이제라도 미안한 것을 알았으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스스로 위안을 삼기도 한다.


너를 생각하는 늦은 밤. 미안한 사람이 너만이 아님을 알겠다. 돌아보면 이유를 묻지도 않고, 진실을 알게 되는 것이 두려워 회피했던 날들이 더 많았던 것 같다. 대충 넘어가고 말았던 그 모든 날들이 잘못되었음을 이제는 알겠다. 이제 와서 미안하고 잘못했다고 말하면 뭐하냐고? 되묻는다 해도 말하고 싶다. “이제라도 미안해”라고 나의 모든 인연들에게 전해지길 중얼거려 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