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실장님이 왜 그럴까?

일개 대리가 설계한 어떤 회사의 비전과 전략

by 제와킴


⚠️ 이 글은 금요일 밤에 얼토당토 않게 야근하며 분노한 개발자가 씁니다.

다소 불편한 진실이 담겨 있을 수 있으니,

읽다가도 불편하신 분들은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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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OO 대리, 요즘 OO 기술과 관련해서, 우리 회사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전략 정리 좀 해줘요.”

…예?

잠깐만요, 실장님. 전략이요? 비전이요?


회사의 미래 방향까지 고민하는 사람은, 위에 있는 사람들이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지만 우리 실장은 그 고민을 나에게 무심하게 던졌다.
“그거 대리님이 요즘 많이 관심도 있어보이고, 다뤘잖아요.”


물론 내가 관련 실무를 다룬 건 맞다.
하지만 "이 기술로 어떤 시장을 선점할 수 있을지", "5년 뒤 회사가 어디에 있을지"는 내 레벨에선 다루지 않는 영역이다.


그날은 하필이면 금요일 밤이었다.
모두가 ‘퇴근’이라는 단어만 바라보며 시계를 흘끔거리는 그 밤에,
나는 문서를 만들었다.
경쟁사 비교, 전략 방향성, 기술 로드맵, 서비스 확장 비전까지.
내가 할 일이 아닌 걸 알면서도, 그래도 문서는 깔끔하게 완성했다.


밤 늦게, 문서를 다 작성해서 실장님께 메신저를 보냈다.
곧바로 답장이 왔다.

“고생했어요. 제가 확인해보고 잘 정리해볼게요.”


그 말에 짜증은 나지만, 살짝 안심했다.
‘그래도 실장님은 대표님이랑도 여러 번 소통해본 분이니까, 이 문서를 다듬어서 더 설득력 있게 바꿔주시겠지.’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그리고 최종 보고된 문서를 보게 됐다.

내용은 하나도 안 바뀌었다.
오탈자 몇 개 고쳐진 것 말고는, 내가 쓴 문장 그대로.

그걸 보는 순간, 분노보다도 허탈함이 먼저 올라왔다.
‘내가 밤늦게 만든 문서가 이 회사의 대표에게 보고될 전략 문서라고?
그런데 이 회사엔 전략을 세우는 사람이 따로 없고, 그냥 대리가 만들면 되는 거였던 거야?’

그 순간, 현실을 조금 알게 된 기분이었다.


우리 실장이 왜 그럴까?
아마도 그분의 전략은 이거였을 것이다.

“우리는 AI 시대를 맞이해, 사람을 아주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단, 그 ‘사람’은 나고, 보고된 ‘성과’는 실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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