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임자
책임자라는 자리는 보통 팀 앞에서 방향을 잡고, 외부와 협의하고, 큰 그림을 그려주는 자리다.
마치 배의 키를 잡고 항로를 정하는 선장과도 같다.
실무자들은 그 항로를 따라가며 일을 해내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우리 회사의 책임자는 조금 다르다. 아니, 사실 많이 다르다.
“이거 뭐예요?”
“이건 왜 그런 거예요?”
“그럼 어떻게 되는 거예요?”
하루에도 몇 번씩 날아오는 질문 폭탄. 정작 일을 조율해서 내려보내는 게 아니라, 보고받고 되묻고 다시 설명 듣는 데에만 집중한다.
나는 마치 어린이 과학관 체험학습 선생님이 된 기분이다. 아이들 손잡고 “이건 이렇게 움직이고, 저건 이렇게 작동하는 거란다” 설명하듯, 매번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한다.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회사에 막 들어온 신입 관리자라면 이해할 수도 있다. 아직 상황이 낯설고 경험이 부족하니, 하나하나 묻고 확인하며 배워가는 과정일 테니까.
하지만 문제는 — 이 책임자가 신입이 아니라는 것.
무려 10년 넘게 회사를 다닌, 말 그대로 고인물 중의 고인물이라는 사실이다.
십수 년의 시간은 그를 단단하게 만든 게 아니라, 오히려 안락하게 만든 것 같다. 방향을 잡기보다는 질문을 던지고, 조율하기보다는 설명을 듣고, 스스로 판단하기보다는 누군가에게 정답을 받아 적는 데에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그래서 그는 나에게 늘 이렇게 비친다.
물가에 내놓은 아이 같은 책임자.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파도가 살짝만 일어도 금세 휘청이며 나를 붙잡는다.
그는 아마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나는 일을 꼼꼼히 챙기는 좋은 리더다!”
하지만 내 눈에는 단지 ‘없는 게 더 편한 존재’일 뿐이다.
책임자는 원래 짐을 덜어주는 자리인데, 우리 책임자는 짐을 얹어주는 자리다.
십 년 넘는 시간 동안 쌓인 건 내공이 아니라 관성.
그래서 나는 가끔 속으로 이렇게 부른다.
책임자가 아니라, 짐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