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팀 안에서 한 가지 논의에 휘말려 있다.
겉으로는 기술적인 문제 같지만, 사실은 그보다 더 깊은 이야기에 가깝다.
상황은 단순하다.
우리가 만드는 시스템뿐만 아니라, 어떤 시스템도 무리한 사용이나 악의적인 반복 앞에서는 안전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안전장치를 두자고 제안했다.
자동차에 안전벨트를 매듯, 도로에 신호등을 두듯, 혹시 모를 위험을 대비하는 최소한의 장치 말이다.
그런데 논의는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안전장치의 필요성에는 다들 동의한다.
하지만 누군가 이렇게 말한다.
“문제는 안전장치가 작동하면, 사람들이 불편을 겪는다는 거야.”
즉, 사고를 막기 위해 신호등을 세웠는데, 신호에 걸려 잠시 멈추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논리다.
“멈추는 일은 없어야 한다.”
“불편을 겪는 순간, 이미 잘못된 것.”
듣고 있으면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안전장치란 본래 ‘최악을 막기 위해 불편을 감수하는 장치’다.
불편을 전혀 주지 않으면서 위험도 완전히 차단하는 방법이 있을까?
그렇다면 전 세계 모든 시스템이 이미 그렇게 하고 있지 않았을까?
회의는 결국 이런 결론으로 끝났다.
“실패는 발생하면 안 된다. 그러나 나는 답을 모르겠다. 대신 너희가 이런 점들을 고려해서 해답을 가져와라.”
어느새 논의는 문제 해결이 아니라, 책임을 떠넘기는 퍼포먼스가 되어 있었다.
안전벨트가 답인지, 에어백이 답인지, 아니면 도로 자체를 고쳐야 하는지...
그 어떤 구체적인 길도 제시되지 않은 채, “나는 불편이 싫다”는 말만 남았다.
완벽한 해답은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문제의 본질을 보려는 태도와,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안전을 선택하려는 용기 없이는
어떤 시스템도 오래 버틸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안전장치를 걸자고 한 내가 틀렸던 걸까. 이전 담당자들처럼 나도 외면해야 하는 걸까. 갑자기 현타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