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의 역설

친절한 대응이 만든 불편한 진실

by 제와킴

누군가 정성스럽게 차려낸 저녁 식사가 있다. 매일 저녁마다 손님들의 입맛에 맞춰 간을 조절하고, 누가 매운 걸 못 먹으면 따로 순한 버전을 만들어주고, 누가 특정 재료를 싫어하면 그것만 빼서 내주었다. 손님들은 만족했다. 불편함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어느 날, 주방장이 바뀌었다. 새로운 주방장은 "이제부턴 정해진 코스 메뉴로만 운영하겠습니다"라고 선언했다. 손님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굳이요? 지금도 불편한 게 없는데요."

나는 지금 그 새로운 주방장이 되어버렸다.


프로젝트는 원래 다른 사람의 것이었다. 첫 발표에서 좋지 않은 평가를 받고 보류되었다가, 복잡한 사정으로 내게 넘어왔다. 열심히 했다. 중간 보고를 올렸다. 그런데 윗선에서는 뭔가 그럴듯한 설명을 원했다. 이게 왜 중요한지, 왜 지금 해야 하는지, 어떤 가치가 있는지.

하지만 솔직해지자. 이건 우리 제품의 '편의성을 높이는 부가 기능' 중 하나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런데 이걸 마치 회사의 미래를 바꿀 혁신인 양 포장해야 한다니.

더 난감한 건, 기존 구조를 새로운 방식으로 전환하자는 게 핵심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이건 이 프로젝트를 직접 개발한 나와 우리 팀장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이다. 다른 팀 입장에선? 지금도 잘 굴러가는 시스템인데, 굳이 왜 바꿔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될 것이다.


역으로 생각해봤다. 왜 전환의 필요성이 와닿지 않을까?

답은 간단했다. 그동안 우리가 너무 잘 맞춰줬기 때문이다.

레거시 구조에 기능을 끼워 맞추고, 필요하면 커스터마이징으로 따로 빼내고, 어떻게든 기존 틀 안에서 해결해왔다. 손님 한 명 한 명의 입맛에 맞춰 메뉴를 바꿔주던 그 주방처럼. 그러니 불편할 리가 없었다. 모두가 만족했다.

하지만 그 대가는 무엇이었을까?

눈앞의 작은 성과에 눈이 멀어, 매번 입맛대로 다 맞춰준 결과, 정작 건강한 방식을 제안하는 순간 오히려 그게 불편한 변화처럼 느껴지게 되어버렸다. 이미 모든 게 맞춤형으로 제공되고 있는데, 표준화된 구조가 왜 필요한지 체감되지 않는 것이다.


아이러니다.

더 나은 방향을 제시하는데, 그게 퇴보처럼 보인다. 장기적으로 건강한 선택인데, 당장은 번거로운 일로만 느껴진다. 매번 개별 대응으로 문제를 해결해온 결과, 정작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한 순간에는 그 가치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결국 남은 건 질문뿐이다. 우리가 왜 매번 임시방편으로 문제를 해결해왔는지, 그리고 그것이 장기적으로 어떤 문제를 만들어냈는지에 대한 성찰.

모두를 만족시키려 했던 선택들이, 결국 건강한 변화조차 불편함으로 받아들여지게 만들었다는 역설. 그 안에서 나는 다시 묻는다. 진짜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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