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서는 넘기고, 아래에서는 잠긴다
회사라는 배가 파도를 만났을 때, 갑판 위에선 종종 이런 일이 벌어진다.
선장이 항해사에게 묻는다. "왜 이렇게 배가 흔들리지?"
항해사는 갑판장에게 묻는다. "요즘 일이 좀 느슨한 거 아니야?"
갑판장은 선원들에게 묻는다. "이거 왜 아직 안 끝났어?"
물음표는 점점 아래로 내려가고, 맨 아래 선원은 결국 바다를 향해 한숨을 쉴 수밖에 없다. 근데 바다는... 그 한숨을 받아주지 않는다.
이 풍경을 보면서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각자의 자리에서 모두가 하는 일이 결국 뭘까. 위에서 받은 압력을 그대로 아래로 전달하는 것. 마치 물이 흐르듯이.
그렇게 보니 조직 안에서 우리가 하는 역할이 둘 중 하나인 것 같다. 파이프가 되거나, 댐이 되거나.
파이프는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다. 입구로 들어온 걸 출구로 내보내면 그만이니까. 본인 입장에선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느껴진다. 내 앞은 깨끗해졌으니까.
그런데 조직은 여러 부품들이 모여 있는 집단이다. 각자의 부품들이 유기적으로 역할을 해줘야 물이 흘러넘치지 않고, 댐도 무너지지 않는다. 모두가 다 아래로만 흘려보낸다면 어떻게 될까. 결국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고 하류에 물난리가 난다.
조직이 진짜 필요로 하는 건 파이프가 아니라 댐 같은 사람이 아닐까. 위에서 쏟아지는 걸 전부 아래로 흘려보내지 않고, 자기 역량만큼은 가두어두는 사람. "이 정도는 제가 한번 해볼게요"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물론 댐도 완벽하진 않다. 100%를 막아낼 순 없다. 가끔은 수문을 열어야 할 때도 있다. 그렇지만 받은 걸 100% 그대로 내려보내는 건, 댐이 존재하는 이유를 스스로 포기하는 일 같다.
각자의 위치엔 각자가 감당할 몫이 있는 것 같다.
선장은 선장의 몫을,
항해사는 항해사의 몫을,
갑판장은 갑판장의 몫을.
그 몫을 고스란히 아래로 넘기는 순간, 우리는 모두 파이프가 되어버린다. 내 앞은 깨끗해졌지만, 조직 어딘가에선 물이 넘치고 있다.
파도가 칠 때마다 '누구 탓'을 찾기보다는, 내가 서 있는 이 자리에서 잡아야 할 중심이 뭔지 생각해보게 된다. 파도는 어차피 온다. 중요한 건 그걸 누구한테 넘기느냐가 아니라, 내가 얼마나 버틸 수 있느냐인 것 같다.
그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중심을 잡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날 때, 비로소 물난리는 멈출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