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을 시작한 지.. 약 1주 차다.
10월 2일
진단명이 나왔다.
드라마에서만 보던 순간이 내게도 닥쳤다.
“죄송스럽게도… 급성 백혈병입니다. 좋은 말씀 못 드려 너무 송구한 마음이지만 제가 최선을 다해 환자분이 회복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듣자마자 엄마는 오열 중이었고
나는 약간 멍했다가 갑자기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억울한 마음이 들어 눈물이 났다.
이래서 못 알아듣거나 잘 기억을 못 하는 상황이 많았는지 적어오셨다. 나도 그래서 일단 사진으로 기록해 두었다.
“원인이 뭔가요?”
“원인은 딱히 없습니다. 그래서 급성인 거고 그나마 다행히 급성 전골수성 백혈병(APL)과 급성 골수성 백혈병(AML)이 있는데..(뒤에 설명이 기억이 안 난다..) 치료 시기가 늦지 않게 오셨고… (뒤에 말이 기억이 안난다.)”
“이 애가 잠을 잘 안 잤어요. 내가 뭘 잘못 먹였나요? 환경이 안 좋았나요?”
“환자분 탓도 아니고 어머니 탓도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갑자기 발생하는 일이고 치료를 위해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
나는 병실이 없어 응급실로 입원을 했다.
집에 가겠다고 했다.
병원에 갇혔다. 집에 보내줄 수 없다고 했다.
대학병원은 난생처음이라 응급실 환경이 그냥 있을만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다시 가라면 절대 못 가겠다.
좁기도 좁지만 밤이 되면 더 위급한 환자들이 오기 때문에 쉴 수가 없다.
카약모양의 1인 침대는 몸을 뒤척이기에도 상당히 좁아 불편했지만 원래 병원침대는 그런 거려니 했다. (아니었다.!)
단지 보호자 침대는 전혀 없고 딱딱한 의자만 하나 있었다.
창문이 없어 바깥의 공기, 온도, 날씨가 모두 차단됐고 오로지 사람들 말소리와 기계 소리 간간히 울음소리.. 삭막했다.
엄마가 걱정되어 집에 가서 주무시고 오라고 했다.
엄마가 가고 깨질듯한 머리 두통과 몇 번의 열 그리고 높은 혈압에 그냥 링거줄도 아파죽겠는데 진통제, 항생제, 해열제를 달았다. 난생 처음 혈압약도 먹었다.
그래도 엄마를 의자에서 주무시게 할 순 없었다.
엄마도 걱정+미안함으로 집에 가면서 간호삼샘에게 빵과 두유 로비를 했다. 우리 딸 좀 잘 부탁한다고 ㅎㅎ
10월 3일
아침 일찍 휠체어가 날 데리러 왔다. 걸을 수 있는데…
휠체어에 실려 엑스레이를 찍고 점심쯤 엄마가 다시 왔다.
어제 아픈 자는 잘 먹어야 한다며 결의에 차서 집에 가길래
“엄마 냉장고 없어. 뭐 싸 오지 마 병실 가서 먹자. 며칠 안 먹는다고 안 죽어.”
역시 내 말은 엄마에게 닿지 않았다.
공간도 비좁아 죽겠는데 큰 가방 세 개가 등장했다.
가방 두 개는 먹을 것과 한 개는 갈아입을 옷 등.
맥심까지 야무지게 챙겨 와서 머리 아픈 건 너 카페인 중독 때문이라며 밥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머리 아픈 게 좀 괜찮아진 것도 같았다.
그리고 엄마가 다시 집에 갔다.
밤새 머리가 너무 깨질 거 같이 아파
잠자는 내내 두통에 시달렸지만 꿈인 줄 알았다.
이런 고통이 현실일리 없다고 생각했다.
10월 4일 (오전)
엄마가 가방 두 개를 더 들고 일찍 나타나셨다.
‘하아.. 더 뭐라고 하지 말자 ‘
간수치가 정상 기준 30에
나는 300을 넘었기에 바로 항암을 시작할 수 없었다.
이틀간 간수치 낮추는데 총력을 다해
1004에 첫 항암을 시작했다.
우선 연휴가 길어 APL일지 AML일지 확진명은 연휴가 끝나고 알 수 있다고 했고 예비결과 상 APL이 70% 정도로 보인다고 했었… 던 거 같다. (진단명을 처음 듣고 우느라 뒤에 설명이 기억이 잘 안 난다.)
그리고 처음으로 약을 받자 비현실이 현실로 확 와닿았다.
음… 괜찮은 거 같은데? 역시 난 둔해서 행운이야
처음 먹은 항암제는 아무 부작용도 느끼지 못했다.
아직도 비현실적인 단어 ‘항암, 입원, 백혈병, 응급, 휠체어, 혈소판, 감염, 출혈 시 매우 위험, 관해, 오심’
백혈병을 공부해야겠단 생각이 들어 GPT를 켰다.
정말 너~무 훌륭하게 교수님 없는 나날들을 맘 편히 보낼 수 있게 쉽고 깔끔하게 정리해 주었다.
이틀을 응급실에서 보내니 너무 힘들었다.
그간 많은 사람들이 옆 침대를 오갔고 내가 가장 오래 있는 기분이었다.
교수님이 1인실이라도 자리 나면 무조건 가라고 했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1인실에 얼마나 있어야 하며.. 이때만 해도 건강보다 돈 걱정이 많았다. 2인실이 나면 가겠다고 우겼으나 3일 차도 아무도 없이 두통을 견디는 게 무서웠고 엄마도 걱정이 많아 그냥 아무 데나 자리 나면 병실로 이동하겠다고 했다.
10월 4일 (오후)
드디어 병실이 났다.!
1인실! (하루 52만원….ㄷㄷ) 그래도 가야 했다.
병실까진 베드로 이동한다고 했다.
나 걸을 수 있는데..
너무 이상했다. 사람들이 너무 아픈 사람 취급하는 것 같아 싫었다. 걸어갈 수 있는데요?? 했지만 실려갔다.
가는 동안 깨달았다. 길이 너무 복잡할뿐더러(다시 응급실 찾아가라면 못 갈 것 같다.) 건강했을 때의 그 체력이 아니다. 빨리 걸으면 두통이 심하고 토할 것 같고 숨이 찼다.
극진한 보호와 안내에 도착한 1인실은 거의.. VIP 회장님이 된 느낌이었다. (설국열차가 느닷없이 생각났다. )
침대 도착할 때부터 두 세분이 마중을 나왔고 상세한 병실 설명과 1:1질의 응답이 가능한 곳.
불편하면 언제든지 부르라고 하셨는데 말 그대로 1인실! 나를 위한 공간이었다.
춥고 더우면 냉난방을 맘대로 조절할 수 있고, 화장실 순서를 기다리지 않아도 언제든지 갈 수 있으며, 티브이도 볼 수 있고 보호자 침대도 응급실 카약침대 세배는 되어 보였다.
힘들었을 엄마에게 연휴에 놀러 못 가고
특급호텔보다 더 비싼 방에 시티뷰 멋지게 구경하라는 농담을 하고 잠이 들었다.
그리고 이날 제일 많이 아팠다.
열이 38도를 찍었고 머리는 터질 듯이 아팠으며 드라마에 모자를 뒤집어쓴 비련의 여주인공들의 열연에 새삼 대단함을 느끼며 감탄했다. 현실반영 100%였다.
밤새 간호사 분들이 열과 혈압을 체크하며 밀착 마크를 해주었고 추워서 양말을 신고 이불을 두 개 덮고 난방은 너무 건조할 거 같아서 됐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