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항암
병 진단을 받고 세달이란 시간이 흘렀다.
사람이 길을 가다 넘어지면 그 순간엔 잘 안아프다.
놀람+부끄러움으로 “괜찮아요!!!”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오고 아픈지도 모르고 그날은 그럭저럭 지나간다.
문제는 2,3일 뒤에 몸살과 넘어진 부위의 통증이 한번에 몰려온다. 병도 똑같았다.
처음 진단을 받았을 땐 아무 생각이 없었다. 처음이라 무서웠지만 치료예후가 좋은 병이란 교수님의 설명에
그저 나을 수 있나? 만 생각했다. 어찌어찌 입원이 됐고, 병원 생활을 했고, 각종 검사와 중심정맥관을 삽입했고, 항암주사를 맞으며 정신없는 두달을 보냈다.
정신이 없어서 힘든 줄도 몰랐다.
관해항암이 끝나고 한 달의 휴식이 주어졌다.
주워진 한달의 방학같은 휴식기간이 너무나 꿈만 같았다.
항암 부작용으로 다 터버린 입술의 피부와 색이 돌아왔고 각질처럼 하얗게 일어난 몸의 피부들도 오히려 새살이 돋듯 피부가 좋아졌단 소릴 많이 들었다.
특히 설사와 변비라는 극단을 오가던 생활에서도 잠시 벗어나자 이것 하나만으로도 삶의 질이 이렇게 올라갈 수 있다는 걸 새삼 다시 느꼈다.
솔직히 조금 안심했다.
‘혹시… 나 다 나은 거 아닐까?’
지금 생각하면 아주 성급한 생각이었지만,
그땐 그랬다. 사람 마음이 그렇다.
그리고 공고항암 날짜가 다가왔다.
처음 대학병원에 왔을 때도 느뗬지만 우리나라에 아픈사람이 이렇게나 많을줄이야..
공고항암은 매일 한달을 꼬박 병원에서 주사를 맞아야 함에도 병실없음 이슈로 외래항암주사치료를 시작했다.
매일 병원으로 출근해야 했다. 회사출근을 할 때보다 훨씬 이른 아침 여섯 시 반에 집을 나섰다.
왕복 두 시간 이동에, 병원에서는 세네 시간을 기다렸다. 환자도 보호자도 정신력이 먼저 탈진한다.
집에 돌아오면 아무것도 안 했는데 반나절만에 빡센 하루를 보낸 것처럼 지쳤다.
그래도 해야지 어떡해.. 매일 난 아침형인간이라고 세뇌시키며 안 떠지는 눈을 뜨고 정신을 부여잡고 치료를 받았다. 적응을 하고 나니 오후에 시간이 여유로우니 좋다고 느껴졌다. 하루를 길게 쓰는 느낌이고 저녁엔 일찍 잠드는 건강한 삶이 되었다.
처음 항암을 시작했을 때의 나는 용감했다.
“그냥 낫기만 하면 돼. 부작용쯤이야.” 라고 멘탈도 멋지게 잡고 있었다. 근데 지금 돌아보면 용기라기보다 무지에 가까웠다.
이미 겪어봤기에 무엇이 올지 너무 잘 알았다. 화장실의 고통, 피부의 변화, 체력과 컨디션이 바닥을 향해 내려가는 느낌. 사람은 역시 모르는 게 약인가 보다. 한 번 겪고 나면, 두 번째는 덜 무서울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무서웠다. 회복을 한 번 경험해버려서. 다시 그걸 내려놓아야 한다는 게 생각보다 마음을 축 늘어지게 만들었다.
먹는 것도 그랬다.
겁이 많아서 병원에서 먹지 말라는 건 철저하게 잘 지켰다. 감염의 우려때문에 어쩌면, 혹시나가 많은 음식들을 통제 시켰고 식탐이 줄어든 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회복기가 문제였다. 예전에 맛있게 먹었던 음식들이 괜히 하나둘 떠올랐다. 건강할 때 먹었던 음식들이 기억 속에서 하나둘 복원되기 시작했다. 생야채와 과일의 아삭한 식감과 내가 인생음식으로 삼은 떡볶이와 쫄면, 그리고 생김치와 요구르트 등등. 호중구가 언제 다시 떨어질지 모르니 지금이 아니면 못먹을 것 처럼 열심히 먹었다.
결론은 이거다.
아는 맛이 더 무섭다.
그리고 아는 고통도, 더 무섭다.
오늘도 병원에 와서 주사를 맞고, 하루를 넘긴다. 잘 버티지 못해도 괜찮다. 울적해도, 투덜거려도 괜찮다. 이 시간은 분명 내가 지나가고 있는 삶의 일부니까.
언젠가는 이 시간도 지나간 이야기로 말할 수 있기를 바라며, 지금은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