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사람이라 불린다.

건강했었다.

by 그로밋킴

내 삶은 아프기 전과 후로 나뉜다.

라고 거창하게 나누지 않았다.


난 조금은 다르게 먹고 조금은 덜 외출하지만 여전히 아프기 전과 비슷한 외모와 성격을 가지고 살아간다.


처음 병이 발병하고 병원에 입원당했을(?) 때

의사 간호사들을 보면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 멀쩡하지. 나도 저랬는데.

나도 빨리 걷고 뛰었고

나도 잘 먹었고

나도 바쁘게 살았는데.


입원환자가 되고 보니 난 아픈 사람이었다.

매일 수혈과 항암주사를 맞고 체력은 빠르게 떨어졌고 혈압은 고혈압이 되었다.


이 정도 부작용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큰 병만 잡을 수 있다면 다 참을 수 있다고

말하던 때도 있었다.


그땐 몰랐다.

시간이 이렇게 흐를 줄은.

내가 이렇게까지 ‘아픈 사람’이라는 말에 걸리적거리게 될 줄은.


집에만 있었다.

온실 속 화초처럼 추우면 얼어 죽을까 봐 감기는 절대 안 된다며 밖에 잘 나가지 않았다.

이러다 진짜 아픈 사람이 되어버리고, 마음마저 병들어버릴 것 같았다.


그래서 운동은 해야겠다며

실내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처음 퇴원해서 집에 온 뒤 호중구 이슈로 2주를 거의 집 밖에 나가지 않았다.

오래간만에 외래 진료를 보러 가는 날 신발을 신고 걷는데

몸의 중심이 잘 안 잡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나가서 조금씩 산책을 시작했다.


병원에선 밥, 청소, 빨래, 설거지 아무 걱정이 없었다.

퇴원해 집에 오니 엄마의 노동력의 무게가 생각보다 훨씬 크게 느껴졌다.

약 때문에 삼시 세 끼를 챙겨 먹고 치우고, 설거지하고

감염 우려 때문에 매일같이 청소를 해야 했다.

빨래는 또 왜 그렇게 잘 쌓이는지.


거들고 싶었다.

밥 먹고 소화도 시킬 겸 설거지를 맡겠다고 했지만 “아픈 사람이 뭘 하냐”며 쉬라고 했다.


그 말이 고마우면서도 미안하고 조금은 답답했다.


집안일 자동화가 시급했다.


그래서 식기세척기를 샀고 로봇청소기는 아직도 망설이는 중이지만 빨래와 설거지만 해결돼도 한결 나아진 느낌이었다.


퇴원 후 호중구가 처음으로 2000이었던 날 사람들을 만나러 나갔다. 아픈 사람이 여기 나와도 되냐고

많이들 물었다. 병원 허락받고 나온 거라 걱정 말라고 했다.

이상했다. 원래 자주 보던 사람들이었는데 그들과 다르게 나는 이제 아픈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올 수 있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었다.


너무 집에만 있는 것 같다며 언니가 바람을 쐬워주겠다고 했다. 서울 근교로 잠깐 나가자고 해서 북한산 스타벅스에 갔다.

그날도 엄마는 아픈 사람이 이렇게 사람 많은 데를 가도 되냐고 물었다.


마스크에 손소독제, 소독 물티슈까지 챙겼으니 괜찮을 거라고 했다. 혼자 다시 코로나19 시절을 살고 있는 기분이었다.


‘환자’, ‘아픈 사람’이라는 말이 자꾸 붙으면 정말 그렇게 굳어질 것 같아서, 아파서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 될 것 같아서 나는 일부러 뭘 좀 더 하려고 한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운동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필사를 하고 책을 읽는다.


사람은 생각하기 나름이고 정체성은 불리기 나름이니까.


나는 조금 아플 뿐, 멀쩡하다고 말하는 것도 어쩐지 아픈 사람 같아서 그냥 평소와 같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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