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두 도시 이야기

뉴욕과 상트페테르부르크 거리를 걸으며

by 이재열 Joy Lee

화창한 햇살 아래 사람들 사이로 반짝이는 대도시의 대로를 걷고 있으면 몸과 마음이 상쾌해집니다.


서울의 세종대로는 퇴근하면서 자주 걷는 코스이고, 여행하면서 몇 번이고 걸었던 파리의 화려한 샹젤리제 거리, 도쿄의 세련된 오모테산도 가로수길, 바르셀로나의 활기찬 람블라스 거리, 그리고 한 밤에도 환하던 백야의 상트페테르부르크 넵스키 대로, 모두 기분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는 거리죠.


지난 7월 중순에는 미국 출장으로 뉴욕을 다녀왔습니다. 꽉 짜인 일정이라 관광지까지 돌아볼 시간은 없었지만, 틈틈이 5th 애비뉴와 Park 애비뉴를 걸으며 바라보던 뉴욕이 지금도 아른거리는군요.


현지 주재원분들은 테헤란로라고 부르긴 하던데, 나에겐 강남대로를 수십 개 이어 놓은 듯한 5th 애비뉴를 걸으면서 바라보는 고층 건물 스카이라인은 다른 대도시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색다른 풍경을 경험하게 하였죠. 건물 제 각각이 개성 있게 올려져 있으면서도, 따로 놀지 않아 조화를 이룬 탓에, 거리를 걸으면서 바라보면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탁 트인 시선을 선사하더군요. 14시간의 비행이 고역이겠지만, 뉴욕 건축에 대한 스터디도 차근히 준비해서 다음엔 여행으로 다시 찾아와 보고 싶은 도시임에는 분명하더군요.


뉴욕에 다녀와서 기억을 더듬다 보니, 관광객들로 붐비는 것은 같지만, 러시아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뉴욕 맨해튼에 가득한 활기 때문일지, 러시아 상트페테부르크에서 주재원으로 체류했던 때가 생각났습니다.


그 당시 일요일 오후에는 현지 한인교회서 예배드리고 나서, 남자 집사님들(이라고 해봐야 서너 명뿐이지만)과 커피 한잔하거나, 근교에 차를 몰고 나가서 러시아 경치도 즐기곤 했죠. 다들 러시아에서 오랜 기간 산전수전 다 겪은 분들이라, 찐 로컬 러시아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풍경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 주어서, 다른 한국 주재원들과는 달리 차별화된 경험을 할 수가 있었지요. 가족도 없이 싱글로 외국에서 생활해야만 했던 내게는, 지금 와 돌이켜 생각해 봐도 참 은혜롭게 보낸 시간였지요. 러시아 동서횡단 같이 하기로 약속했었는데, 꼭 실행할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아무튼 그날 일요일 오후에는 집에서 토마 피케티의 벽돌 책 ‘자본과 이데올로기’를 읽으며 한가롭게 보내고 있었죠. 그런데 소련 붕괴 당시에 대한 부분을 읽다가 화가 치밀어서 책을 덮고는 집 근처 넵스키 대로를 걸었더랬죠.


중국과 같은 다른 공산주의 국가들이 단계별로 사유화를 진행하고 혼합경제와 국가 소유의 많은 요소를 유지한데 (…) 비해, 러시아는 단 수년 만에, 1991~1995년에 시행된 ‘바우처’ 제도를 통해 공공자산의 거의 전부를 사유화하려는 저 유명한 ‘충격요법’을 택했다. 원칙적으로는 러시아의 어떤 시민이든 자신이 선택한 기업의 주주가 될 수 있도록 해주는 ‘민영화 바우처’를 보유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하이퍼인플레이션 상황에서 (1992년 물가 상승률은 2500% 이상이다) 다수의 임금과 연금이 실질적으로 매우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고, 수천 명의 노인 또는 실업자가 모스크바 거리에 나와 자신의 소지품을 팔았는데, 반면 러시아 정부는 다량의 주식을 매수하려는 핵심 주주들에게 유리한 조건을 제공했으니 벌어져야 했던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대다수의 러시아 기업은 특히 에너지 부문에서 수년 만에 소수의 주주 집단 수중으로 떨어졌는데, 이 주주 집단은 수백만 러시아인들의 바우처를 흡수하고, 단기간에 이 나라의 새로운 ‘과두 지배자’가 되었다.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 저 ‘자본과 이데올로기’ 중에서 (안준범 역)


자본주의에 대한 개념이 없었던 당시 러시아 국민들은 민간 기업 주식을 저렴하게 매수할 수 있는 일종의 옵션인 민영화 바우처를 헐값에 이들 과두 지배자(a.k.a. 올리가르히)에게 넘기고 만 것이죠. 생필품을 얻기 위해 그들이 받은 현금은 얼마 있지 않아 초인플레이션 상황에서 휴지 조각이 되어버리고요.


걷다가 로컬 프랜차이즈 카페인 부셰(Буше)에서 커피 한잔 시켜 놓고, 늦여름 오후의 햇살이 비추이는 창가 테이블에 앉아, 카페에서 여유롭게 대화하고 있는 러시아 사람들을 찬찬히 바라보았죠. ‘과연 이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그들 현대사의 격변의 시기에 일어났던 부조리에 화가 나 있는 대한민국 사람이 그들과 함께 하고 있었다는 걸..’ 속으로 생각하며…



글에 반드시 교훈적인 것이 포함되어야 한다면, 워런 버핏(Warren Buffett)의 혜안으로 마무리해야겠군요.


“인플레이션을 방어하는 최고의 자산인 여러분 자신에게 투자하십시오.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일은 여러분이 일하는 분야에서 탁월해지는 것입니다. 그 능력은 누군가에 빼앗길 일도 없고, 인플레이션으로 가치가 사라지는 일도 없습니다. 최고의 투자는 여러분의 능력을 개발하는 것이고, 거기엔 세금도 매겨지지 않습니다.”


Invest in Yourself: The Ultimate Inflation‑Proof Asset

"The best thing you can do is to be exceptionally good at something. Whatever abilities you have can’t be taken away from you. They can't actually be inflated away from you. The best investment, by far, is anything that develops yourself. And again, it's not taxed.”


-Translated by me with the assistance of ChatGPT


-2025. 8. 11 월요일-

keyword
작가의 이전글네트워킹(인맥 쌓기) vs 루틴(축적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