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신우회와 기다림의 신앙

by 이재열 Joy Lee

지난달 어느 날.

회사 메신저로 어느 여자 매니저님이 메시지를 보내오셨지요. 첫 문장을 읽는 순간, 트리니티(Trinity)가 네오(Neo)에게 보낸 건가 싶었죠.


“The Matrix has you.” …는 아니었고..


“크리스찬처럼 보이시던데, 맞나요?”

흠.. ‘처럼 보인다’라.. 이쪽 업계 전문 용어로 외식하는 [위선 떠는] 자로 보인다는 건가?


물고기 그림 익투스(ΙΧΘΥΣ)를 따라 비밀스레 카타콤에서 예배를 드리던 로마시대 초기 그리스도인들 마냥, 메시지를 통해 다다른 곳은 회사 신우회 모임 장소였죠. 네댓 명 정도의 멤버였는데, “아니, 너가?”까지는 아니었고, 대체로 예상했던 분들이 모이셨더군요.


사실은 오래전부터 ‘우리 회사에는 왜 신우회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아쉬웠죠. 그렇다고 나대는 성격은 아니어서 창립할 생각까지는 못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영입 멤버로 참여하게 되어서 은혜가 된다고 모임 소감에서 얘기를 드렸지요.


성탄절 즈음에 큰 별의 인도함을 따라 메시아를 만나러 예루살렘에 당도한 동방 박사들(The Magi) 때문에 온 도시에 소동이 벌어졌듯이, 요즘 회사 사람들 사이에 “대체 저 조합은 무엇인가?”라는 갑론을박이 벌어졌지요.


“분명히 점약 있다고 나갔는데, 잠시 후에 우르르 직식 먹으러 내려오는 걸 보니, 그 사이에 무슨 반란 모임이라도 갖는 건가요?”부터 시작해서 “식사 후에 걸어서 21층 사무실까지 올라가던데, 스포츠 동호회인가요?”까지는 그래도 양반급 질문이고, “올해 입사한 신입 여직원도 있던데, 무슨 엉큼한 속셈이라도 있는 건 아니에요?”라는 니미츠급 모함까지 별의별 얘기가 다 나오더군요.


하도 여러 사람들이 물어보기도 하고, 이러다 진짜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이라도 도모하는 것으로 오해들 하실까봐, 얘기를 하는 게 낫겠더군요. 말씀과 찬양, 기도 제목 나눔이 간절하신 크리스찬이거나, 신우회가 어떤 곳인지 궁금하신 우리 회사 분들이라면 누구든지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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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모임 인도 차례가 되어 누가복음 2장을 같이 나누었지요. 해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돌아오면 묵상하는 말씀이란 해설과 함께.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 - 밤새도록 들판에서 양 떼를 돌보며 스케줄 근무를 서야 했던 목자들, 해산할 곳조차 구할 수가 없어 말구유에 아기를 뉘어야만 했던 요셉과 마리아, 예언의 말씀을 받고서 노인이 되어서까지도 그 믿음을 포기치 않고 기다렸던 시므온, 평생을 과부로 살면서도 코람 데오(Coram Deo)의 경건함을 잃지 않았던 할머니 안나 - 모두 다 세상에서는 주목받지 못하는 고단한 처지의 인생들였지만, 오랜 세월의 기다림 끝에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는 기도의 응답과 축복을 누린 사람들였지요.


어떻게 보면 성경 말씀은 시작부터 끝맺음까지, 세상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상황을 믿음으로 버티고 기다리며, 마침내 기도 응답을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라고도 볼 수 있죠.


모임 때마다 ‘기다림’에 대해서 언급을 했더니, 어느 분이 물어보시더군요.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 것인지. 대답했지요. 오랜 세월 동안 응답되지 않는 기도 제목들을 끝까지 붙들며 간직한 이에겐 ‘기다림’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고.


마침내 손바닥만한 작은 구름이 보이기 시작하는 이때, 그토록 간절히 기다려온 하나님의 은혜의 단비가 내리기를 기대하며 보내고 있는 연말이군요.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타이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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