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날 벼락 우박 내린 겨울날

보석 같은 호숫길

by 산달림


어제는 제로데이로 하루 종일 쉬면서 버스를 타고 매머드로 나가 문명을 맛보고 왔다. 하루 쉬었더니 오히려 오른쪽 발목이 시큰거리다. 다행히 그리 심하지 않아 조심스럽게 걸어야겠다. 휴식이 오히려 독이 된 건가. 5시 40분에 레즈 메도우 캠핑 그라운드를 출발하면서 하루 일정을 시작한다. 이곳은 특히 메마르고 건조한 지역이라 걸음걸음마다 먼지가 폭삭폭삭 일어 난다. 이런 곳은 건조주의보 1등급으로 산불 나기 딱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곳에서 그간 함께 걸어오던 JMT길과 PCT길은 잠시 떨어져 각자 걷게 된다. 그리 길지는 않지만 사우전 아일랜드 호수까지 별도의 길이다. 왜 이곳만 따로 걷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곳에는 주상절리가 있어 둘러보고 가도 좋은데 선두는 오로지 길만 재촉한다. 혼자 둘러보고 갈 수도 없어 아쉽다. 출발할 때는 싸늘한 기온에 패딩을 입었는데 30여분 걸으니 땀이 난다. 마사토 길이라 힘이 들고 흙먼지는 등산화를 금방 백구두로 변신을 시켜 놓는다. 그만큼 건조하고 먼지가 풀풀 날리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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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MT와 PCT 각기 달리 걷는 구간(좌) 흙먼지가 폴폴 날리는 산길(우)

이른 아침인데 새벽잠이 없으신 할머니가 셰퍼드와 산책을 나오셨다. 이곳에 휴양시설이 있어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오늘도 막내는 초반부터 뒤로 쳐진다. 덥지 않은 시간에 많이 걸어 놔야 하루가 편하다는 걸 그간 몸으로 학습을 하였기에 초반부터 부지런히 걷는다. 오늘 같이 흐리고 햇볕이 나지 않으면 태양열을 이용하는 솔라는 충전이 잘 되지 않아 조금은 걱정스럽다. 그간 햇볕이 좋아 휴대폰, 렌턴을 넉넉하게 충전을 했는데 오늘은 출발 때부터 흐린 날씨다.


존슨턴 메도우에 접어드니 작은 호수가 있다. 이곳은 가뭄이 심해 작은 개울은 말라 있다. JMT를 걷다 보면 어느 지역은 비가 자주 오고 어느 지역은 가움이 심한데 지역 간 차이가 매우 크다. 글래디 호수에서 점심을 먹는데 오늘은 좀 더 걸어 보자고 한다. 이번 구간부터는 호수가 많은 구간으로 호수와 산이 어우러져 풍경 또한 멋진 곳이 많은 구간이기도 하다. 호수는 주변의 산들을 반영시켜 호수에 담긴 산의 모습은 상하 대칭으로 표현한다. 그 풍경은 고요함이 더하고 한 폭의 수묵화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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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MT 길은 대부분 다리 없이 자연 그대로 건넌다(좌) 호수가 있어 초원이 있고 나무가 잘 자란다.(우)

로살리 호수에서 그림자 호수인 섀도 호수로 내려가는 길은 스위치백으로 어어지는데 호수를 지나고 나면 다시 오름길로 이어진다. 길림 길에서 진행 방향을 확인하고 가네트 호수로 올라 가는데 그간 보기 힘든 숲 속에 똑같은 탠트가 20 여동 설치되어 있다. 단체로 산행을 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는데 여기서도 그런 산행이 있는지 궁금해진다.


지루한 오름길을 힘겹게 올라가고 있는데 흐린 하늘에서 천둥 번개가 치더니 난데없는 우박이 쏟아진다. 잠시 내리고 말겠지 하고 큰 나무 아래로 우박을 패해 있는데 우박은 점점 많이 퍼붓고 그 크기가 콩알보다 큰 우박이 금세 길을 가득 채운다. 천둥 번개는 쉼 없이 치고 우박은 그치지 않고 쏟아부으니 갑자기 기온이 떨어져 한기마저 느껴진다. 이러다가 저체온증이 걸릴 것 같다. 하나마 그칠까 하늘만 쳐다보고 있는데 쉽게 그칠 우박은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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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날 갑자기 우박이 내리면 나무 밑에 피하는 경우(좌) 능선상에 판쵸의를 뒤집어 쓴 일본인(우)

나무 아래로 피해 있지만 나무 사이로 우박이 떨어지니 더 이상 여기에 머물고 있디 가는 저체온증에 걸릴 것 같아 우박도 주춤해지고 해서 작은 우박은 맞더라고 얼어 죽지 않으려면 걷는 게 낫을 것 같아 배낭을 메고 길을 나섰다. 하얀 얼음 조각인 콩보다 더 큰 우박은 길에 가득 차 있고 길을 걷던 트레커들도 자기 방법대로 우박을 피하고 있었다.


재난 교육을 잘 받은 일본인들은 평지에서 판초를 뒤집어쓰고 피하고 더러는 한기를 피해 탠트를 치고 탠트 안에 들어 가 있는 이도 있었다. 천둥 번개가 칠 때는 큰 나무 아래에 피해 있는 건 낙뢰를 맞을 수도 있으니 삼가야 할 일이었다. 재난이 많은 일본인이 하는 평지에 판초를 둘러쓰고 우박이 그치길 기다리는 게 정답인 것 같다.


몸이 추워지기 전에 움직이던지 탠트를 쳐야 하는데 이런 일이 첫 경험이라 경황이 없었다. 한 여름의 열기 속에서 겨울을 경험하는 JMT는 괜한 JMT가 아니다. 극심한 가뭄에 비 그리고 우박까지 골고루 경험하게 하는 JMT다. 길은 온통 우박인 얼음 알갱이로 가득하다. 다들 추위에 떨면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가네트 호수로 올라서는 길에 다다르니 그간 어디에서 몸을 피하고 있었는지 트레커들이 줄을 지어 내려온다.

여름 속에 겨울 우박을 밟으며 걷는 가네트 호수 오름길

파란 초원에 얼음 알갱이가 눈처럼 쌓여있고 검은 바위 위에도 우박이 가득 쌓여 있다. 마치 피난민 행렬 같이 자기 갈길을 간다. 이곳에서 실버 패스에서 만났던 빨간 팬츠를 입었던 트레커를 여기에서 다시 만났다. 그는 우박이 내릴 때 탠트를 치고 있었던지 그의 옆에는 탠트가 있다. 그 옆으로도 몇 동의 탠트가 급히 설치한 듯하다. JMT길은 호수로 내려가서 가장자리를 따라 돌아 걷는 길이다. 무척 큰 호수인데 우박의 공포로 마음의 여유가 없어 급히 갈길만 재촉하게 된다.


우박이 내리니 재빨리 탠트를 치고 우박을 피하는 팬츠 입은 트레커


호수 가장자리 끝에는 동양인 3명을 만났는데 일본인이었다. 요세미티에서 당일 퍼밋을 받지 못해 투 올로 메도우에서 트레킹을 시작했다는 친구들이다. 이곳에 피부가 비슷한 동양인을 만나니 반갑다. 그들은 이제 시작이라 지나온 코스에 대해 이것저것을 질문했는데 식량은 무얼 준비해서 먹고 왔는지, 레즈 메도우의 근황과 버밀리안 벨리 리조트의 배 시간을 질문했다. 뮤어 렌치에 가면 부족한 식량을 일부 조달할 수 있고 우리가 두고 온 알파미와 김치, 라면이 있다는 것도 알려 주니 좋아한다. 그들에게 왜 JMT를 걷느냐고 하니 트레커들 중에는 "JMT를 걸은 사람과 걸어 보지 못한 사람"으로 구분할 정도로 일생에 한 번은 꼭 걸어야 할 정도로 위시리스트에 있다고 한다.

여름에 설경을 선물하는 가네트 호수

오늘은 오후에 우박을 만나고 추워서 많이 떨었더니 일찍 피곤이 찾아온다. 우박을 만나 제때 간식도 먹지 못했더니 허기가 진다. 가네트 호수는 호수 속에 작은 섬이 있는 바다 같이 큰 호수다. 호수 뒤로는 리터산(Mt Ritter 4,005m)이 호수를 감싸듯 자리하고 있어 아름다움이 더 하다. 아직도 산의 계곡에는 잔설이 많이 쌓여 쉼 없이 호수로 물이 흘러들어오고 있다.


오늘 야영지는 루비 호숫가에 탠트를 치기로 했다. 조금만 더 걸으면 사우전 아일랜드 호수지만 아직도 막내는 오지 않았고 시계는 오후 5시 10분을 넘기고 있다. 탠트 자리도 넓지 않아 돌을 많이 정리하고 옹색하게 탠트 자리를 만들었다. 바로 앞이 호수라 탠트 문만 열면 호수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이 좋은 자리다. 무너져 내리 듯한 바위산이 호수 속에 담겨 있다. 젖은 옷을 갈아 입고 루비 호수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이곳 주변은 보석 이름을 딴 호수가 많다. 루비, 에메랄드 호수가 있는 보석 호수의 천국인 곳이다.

보석 이름을 붙인 루비 호수 오늘 밤은 여기서 쉬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