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로뇨 가는 오름 내림길

힘들면 즐거운 날도 빛과 그림자

by 산달림


서둘러 아침을 열었다. 어둠 속에서 로스 아르코스를 출발하여 카미노 길에 섰다. 조금 걸으니 어둠 속에 산 블라스 예배당을 지난다. 밀밭 길이 양옆으로 펼쳐지고 뒤쪽에서 먼동이 튼다.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일출과 푸른 밀밭이 싱그러움을 더해 준다.


서양인들의 발걸음은 무척 빠르다. 순례길이 잘 걷는 경주는 아니니 나만의 페이스로 걸어 본다. 산속에 접어들어 쉼터에서 빵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걷는데 청주에서 오신 전직 여자 상업학교 선생님은 Bar에서 요기 중이기에 먼저 간다고 인사하고 앞서 걷는다.

DSC_9240.JPG
DSC_9242.JPG
순례길의 출발은 늘 여명의 새벽에 길을 시작한다.(좌) 우리네 인생도 롤러 코스트 오름길의 순례길(우)


오름길에서 이탈리안 한가족을 만났는데 어린아이는 자전거를 타고 부모님은 걷는 가족 순례객이다. 밀밭 사이로 가끔 올리브나무를 만날 수 있었다. N.S 델포요까지는 완만한 오르막 길이다. 언덕에는 순례자들이 소망을 하면서 쌓은 돌탑이 있다. 가끔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사진이 보인다. 죽음이 슬픈 것은 다시 만날 수 없는 영원한 이별이기 때문은 아닐까. 누구도 가보지 못한 그 길의 끝에 하늘나라가 있기는 한 걸까? 부질없는 생각을 하는 걸까? 하늘을 올려다보니 끝없이 그냥 파랐다.


DSC_9251.JPG
DSC_9252.JPG
순례길의 소망들(좌) 그리운 이의 흔적들(우)


요즘 순례길을 걷는 한국인들이 무척 많다. 어쩌면 붐이 일어난 것 같다. 연신 만나는 한국인의 배낭인 코오롱, K2, 블랙야크 등의 상표와 신은 신발을 보면 대충 한국인인지 알게 된다. 점심은 비아나 마을 입구에서 로스 아르코스에서 먹고 남은 밥을 도시락으로 싸온 걸 먹었다. 역시 한국인은 밥씸으로 걷는다. 먹고 나니 속이 든든하고 편하다.


아침의 밀밭은 황금빛 물결에 순레 길 길잡이를 따라 걷는다.

비아나에는 바로크 스타일의 대성당과 시청 건물이 있는데 산타마리아 대성당은 로마 개선문에 영감을 얻은 르네상스식 건물이다. 여기서 세요를 받고 비아나를 향해 걷는데 정오로 가는 날씨는 점점 더워진다. 길도 차도와 자주 만나고 무슨 공장 앞에서 신호를 받는 동안 몸이 축 늘어진다. 로그로뇨로 들어가기 전 긴 아스팔트 길을 걷고 한 농부의 집을 지나게 되는데 이 집이 카미노 길에 의미 있는 집이다.


DSC_9255.JPG
DSC_9260.JPG
대로는 포장도로를 걷고 있는 순례자들(좌) 산타마리아 대성당(우)


단층 건물에 잡동사니 가구와 화분들로 둘러 싸인 평범한 집이지만 이곳은 카미노의 인간 이정표 격인 펠리사 부인이 살던 집이다. 그녀는 수십 년간 순례자들이게 무화과와 시원한 물과 사랑은 전하던 분이다. 글을 쓸 줄 몰랐던 그녀는 그녀의 집을 지나가는 순례 자수를 종이에 막대로 그려 표시해 두었다. 펠리사(FELISA) 부인은 92세 나이로 2002년 돌아가셨는데 지금은 그녀의 딸이 어머니의 뜻을 이어받아 크리덴샬에 세요를 찍어 주고 있었다. 나도 세요를 받고 로그로뇨로 향해 내리막 길을 내려왔다.



DSC_9266.JPG
DSC_9268.JPG
순례길의 쉼터에서 짧은 휴식을 하고 있는 순례자들(좌) 홀로 걷는 까미노 순례길(우)

로그로뇨로 들어가는 길은 주변에 원예농가가 있고 그간 비가 오지 않아 물을 주고 있었고 다시 공원을 지나게 된다. 공원이 끝나면 계단을 오르는데 에브로 강을 건너는 다리를 건너서 Alb Peregrinos에 도착했다. 68개 침대가 있는 꽤 큰 알베르게다.


에브로 강을 건너서 있는 Peregrinos 알베르게 마당에서 휴식 중인 순례자들

수용인원이 많아 다행히 접수를 할 수 있었다. 일회용 시트를 받아 짐 정리 후 여기는 주방이 있어 장을 보기 위해 나섰는데 마침 시에스타 시간이라 가게문이 닫혀 잇다. 다행히 중국인 식품점은 시에스타 시간에도 문이 열려 있어 장을 볼 수 있었다. 이 도시는 인구 13만의 라 리오하의 주도로 활기찬 대학 도시며 중세와 현대가 공존하는 곳으로 와인 생산의 중심지로 9월 말이면 일주일 내내 열광적으로 펼치는 산 마테오 축제는 한해 포도 수확을 알리는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로그로뇨의 에브로 강


이곳 알베르게에는 한국인이 많다. 경찰 공무원으로 퇴직하신 부부도 오셨는데 그분들과 동행하고 있는 여자분들은 남미를 돌아 스페인으로 와서 계속 여행 중으로 간호사인데 퇴직을 하고 왔단다. 세계여행이 현실 도피가 아닌 자아성찰의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쌀밥을 지어먹고 나니 밥이 남아 일본인 아가씨에게 미소 된장국과 쌀밥이 남아 먹겠냐고 하니 고맙다고 한다. 역시 동앙인은 밥 체질인 것 같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임없는 놀이터 본시 아이들은 이리 놀아야 한다.


햇살이 너무 좋아 빨래들 하여 널고 시간이 여유로워 로그로뇨 마을을 둘러보러 나섰다. 중심가인 데 포르탈레스 카예와 14세기 고딕풍 건물인 산타 마리아 데 라 레돈다 성당 주변엔 많은 바와 식당이 밀집되어 있고 아름다운 쌍둥이 탑과 제멜라스가 메르카토 광장에 있다. 에브로 강을 건너기 위해 다리를 건너는데 주변과 참 어울린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어린이들도 방과 후에 학원을 가지 않고 길거리에서 또래들과 모여서 놀이를 하면서 웃음이 끓임 없이 이어지는 모습에서 자유를 느껴본다. 우리는 언제부터 학원의 노예가 되어 버린 것 같다. 주입식 공부를 하고 시험 치고 나면 잊어버리는 소모성 공부를 하며 남보다 1점이라도 더 받으려는 안간힘을 쓴다. 대학의 도시답게 오가는 젊은이들의 얼굴에 여유가 있고 싱그럽게 느껴진다. 오늘도 무사히 하루를 마감할 수 있어 감사하는 하루다. 부지런히 걸었더니 28km를 걸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