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지는 법을 잊은 리더들

화살은 왜 항상 아래로 향하는가

by 바람

회사는 요즘 작년 농사를 갈무리하는 평가가 한창이다. 기업은 수익을 내는 조직이니 결과를 평가하는 것은 당연한 숙명이다. 하지만 그 당연한 논리 앞에서 마음이 기우는 것은, 결과에 대한 화살은 항상 아래로 향하고 있다는 서글픈 마음 때문이다.


무엇이 본질적인 문제인지 우리 모두는 이미 알고 있다. 다만 수치라는 명확한 방패 없이는 그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기 어려운 조직의 생리가 있을 뿐이다. 결국 화살은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직원들에게 돌아간다. 유난히 긴 겨울, 한파보다 매서운 권고사직의 바람이 작년에 이어 다시금 조용히 불어오고 있다.


일이라는 것은 본래 흐름이 있어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생기기 마련이다. 심지어 회사의 전략적 선택에 의해 의도적으로 업무가 배제되기도 한다. 성과를 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은 이들에게 성과가 없음을 탓하는 것은 얼마나 가혹한 모순인가.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온 이들이, 전략의 부재라는 결과값을 온몸으로 감내해야 하는 현실이 못내 쓰리다.


나의 직장 생활을 돌이켜봐도 그렇다. 나는 유독 일하는 것에 비해 ‘보상’이 따르지 않는 편이었다. 부서 성과가 저조할 때는 성과 부서 위주로 보상이 돌아간다며 제외되었고, 개인 성과가 좋을 때는 회사 전체 상황이 어렵다는 이유로 정당한 몫을 받지 못했다. 보상의 기준은 ‘전체’와 ‘개인’ 사이를 기묘하게 오가며 매번 나를 빗겨갔다.


문득 학창 시절의 기억 하나가 떠오른다. 반 평균 성적이 뚝 떨어졌다며 성적표를 나눠주셨는데 중간 성적 정도를 유지하던 평범한 학생이었던 나는 전체 평균 3점이 오른 것을 보고 신나 기뻐했다. 어린 마음에 기뻐하는 나를 보며 담임은 혼내셨다. 반 분위기가 안 좋은데 눈치 없다고. 그날 이후 나는 기쁜 일이 있어도 티를 내지 않는 법을, 나의 성취보다 조직의 공기를 먼저 살피는 법을 배웠다. 그때 배운 ‘표현하지 않는 습관’은 사회에서도 이어졌다. 매년 바뀌는 조직개편과 손바닥 뒤집듯 변하는 내규를 보며 나는 일희일비하지 않게 되었다. 아니, 정확히는 어떠한 변화에도 기대를 접는 법을 배웠다.


리더 한 명이 조직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는 말은 그 권한만큼이나 책임이 막중하다는 뜻일 게다. 그러나 현실의 리더들은 책임의 순간이 오면 실무자의 생존권을 먼저 저울 위에 올린다. 시대의 흐름을 타는 법을 배우지 못한 대가를 가장 약한 고리부터 치르고 있는 셈이다.


회사의 존재 이유가 수익 창출에 있다 한들, 구성원의 마음을 사지 못한 채 얼마나 멀리 갈 수 있을까. 책임을 지는 법을 잊은 리더들이 숫자로만 채워진 성과표를 쥐고 승리를 자축할 때, 그들 뒤로 한파를 뚫고 내일의 생존을 고민하는 이들의 뒷모습이 겹쳐진다. 사람이 빠져나간 자리에 남은 그 숫자들이, 과연 누구를 위한 영광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차가운 바람을 뚫고 다시 또 출근해야 할 이들의 어깨 위에, 성과라는 이름의 무거운 계절이 지나가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후덕죽 사고(思考)와 일의 본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