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를 할 때마다 결혼을 꿈꿨다. 결혼을 목적으로 연애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연애를 시작하고 상대를 알아가는 시기를 지나 마음이 무르익어가면 생각은 자연스럽게 결혼으로 흘러갔다. 마음이 몽글몽글해지고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는 그 순간이 영원하기를 바랐다. 어쨌든 연애라는 것에는 둘의 합의 없이도 일방적으로 헤어짐을 통보할 수 있는 암묵적인 룰이 있는 거니까. 나는 당시 만나는 사람과 헤어짐 없는 결말을 원했고, 헤어짐이 없다면 연애의 끝은 결국 결혼이 될 것이라고, 연애는 결혼으로 완성될 거라는 당연함 같은 것이 있었다. 20대를 다 보낸 2번의 긴 연애 기간 동안 늘 그랬다.
결혼에 어떤 환상이 있었던 건 아니다. 때가 되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초등학교가 끝나면 중학교에, 중학교가 끝나면 고등학교에 가야 하는 것처럼 언젠가 내가 해야 할 것 중 하나라고 생각하며 컸다. 중, 고등학교 졸업앨범에 ‘현모양처’라는 장래 희망을 쓰는 친구들이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은 세대였고, 독신이라는 말은 ‘노처녀 히스테리’처럼 찝찝한 구석을 남기는 말로 단정 지어버리는 시대였다. 목적지에 빨리 도달할 수 있는 샛길이 있다고 해도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포장 잘 된 큰길로 다니고 싶었던 나에게, 결혼이라는 건 언젠가 당연하게 밟아야 하는 수순같은 것이었다. 나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주류’의 코스를 밟고 싶었다.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만한 적당한 시기에, 엄마 아빠에게 짐이 되기 전에, 결혼이라는 걸 하고 싶었다. 결혼이라는 것이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냥 누구나 거치는 과정 중에 하나인 것처럼, 나도 언젠가는 하게 될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 내 연애의 끝에는 당연히 결혼이 있을거라고 생각했을까.
드라마에 나오는 결혼식 장면을 볼 때마다 나중에 어떤 드레스를 입게 될지를 고민했다. 어릴 때부터 꿈꾸던 드레스를 입는 기회, 주인공이 되는 자리, 모두의 주목을 받는 행사, 사랑하는 사람과 축복받는 날. 나에게 결혼이라는 건 그 정도인 것이었다. 결혼이라는 단어에 담긴 복잡함과 모호함, 규정지어지거나 규정되어 버리는 삶의 모습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저 ‘이미지’로 박혀버린 결혼이라는 것을 1차원적으로 습득했을 뿐이었다. 언젠가는 내가 만들어 낼, 하나의 장면이라고 생각하면서.
4년을 보낸 두 번째 연애가 끝나고 나서야, 나는 결혼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서른을 앞둔 20대 후반의 나이였다. 헤어진 상대는 ‘결혼 적령기’라는 30대 중반의 나이였고, 번듯한 직업과 벌이가 있던 사람이었다.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 결혼 얘기가 나온 건 아니었다. 만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이어진 주제였고, 구체적으로 그려갈 때쯤 맞닥뜨린 이별이었다. 이별의 후유증은 생각보다 깊었다. 20대 초반, 한 살 많은 오빠와 만나 햇수로 5년을 사귀고 헤어졌을 때와는 다른 종류의 힘겨움이었다. 곧 서른이라는 나이는 어쩌면 ‘주류’의 삶을 살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으로 바뀌어 나를 더 궁지로 몰았다. 연애의 끝은 결국 이별이라는 유치한 말을 일기장에 적어 내려가며 보낸 시간이 길었고, 막연히 떠다니던 ‘결혼’이라는 단어는 산산조각 났다. 부서지고 조각난 단어는 불쑥 질문을 던져대며 한동안 떠날 줄을 몰랐다.
결혼의 이유, 결혼이라는 제도, 부부의 의미와 결혼의 필요성 따위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결혼하자’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도 생각해보지 않은 것들이었다. 결혼은 1차원적인 이미지로 설명할 수도, 3차원의 다양한 면으로도 다 담을 수 없는 복잡한 실체였다. 결혼은 드레스를 입는다고 완성되는 일도, 연애의 연장선상의 일도 아니었으며,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것처럼 당연한 일도 아니었다. 연애의 끝은 연애지, 결혼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나는 결혼을 제대로 마주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연애의 해피엔딩은 그저 연애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