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생활’이라는 건 얼마나 구체적이면서도 추상적인 것인가. 나는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엄마와 아빠의 결혼생활을 보며 자랐다. 딸이 둘인 우리 집은 대체로 화목한 편에 속했지만, 화목한 분위기는 주로 큰 딸인 나의 활기 어린 목소리나 동생의 애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지, 엄마와 아빠의 관계에서는 찾기 힘든 것이었다. 엄마, 아빠는 각자의 역할에 충실한 좋은 부모였지만, 서로에게 다정한 남편과 아내는 아니었다. 자주 가족여행을 계획하고 외식을 하며 딸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서로의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을 챙기며 둘만의 시간을 갖거나 애정 표현을 나눈 적은 거의 없었고, 어느 집이나 그렇듯 가끔은 싸웠다. 자라면서 엄마 아빠가 서로 사랑한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한 적은 없었지만, 그래도 엄마와 아빠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고 믿었다. 사랑했으니 결혼했을 거라는 추측과 걱정에서 나오는 서로에 대한 툴툴거림이 사랑이겠거니 하는 마음이었다. 나는 엄마 아빠보다는 ‘잘’ 사는 결혼생활을 꿈꿨다. 둘만의 시간을 오붓하게 보내고, 다정한 말로 애정 표현을 주고받으면서 살고 싶었다. 하지만 부부가 오붓하게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라든지, 일상적으로 주고받는 애정 표현과 다정한 말이 어떤 단어와 어투로 이루어지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분명한데, 해야 할 것은 부옇고 흐릿한 것. 나에게 결혼생활은 그런 것이었다.
생각해 보면 아이러니하고 우스운 일이었다. 엄마 아빠의 결혼생활을 반면교사로 삼으면서도, 결혼하지 않는 선택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20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친구들의 ‘비혼’ 선언을 들을 때에도 무심히 흘려보냈다. 나에겐 대학 졸업, 취업, 다음 관문은 결혼이었다. 그 당연한 순서에 의문을 가진 적이 없었다. 물론 결혼이 선택의 문제라는 것을 몰랐다는 의미는 아니다. 선택할 수 있으나, 그것이 나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일이라 여겼다. 미혼에 대한 선입견이라던가 결혼을 염두에 두고 으레 건네는 ‘남자 친구는 있고?’와 같은 질문, ‘그래도 결혼은 해야지’와 같은 어른들의 말들이 나는 불편하지 않았다. 그저 미혼을 바라보는 딱한 시선이 나에게만은 오지 않기를 바랐을 뿐이었다. 하지만 30대를 앞두고 남자 친구와 이별해 혼자가 되었다는 사실은 그 딱한 시선을 받기에 충분한 조건이었다. 나를 보면 빨리 결혼하라고 습관처럼 말하던 할머니는 나의 이별 소식에 크게 걱정했다. ‘에이 지금이 어느 시댄데’라고 대꾸하며 가볍게 웃어넘겼지만, 나는 집에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고작 연애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마음이 이토록 위축될 일인가, 알 수 없는 반항심도 일었다. 생각해 보면 늘 내 기준은 타인의 시선에 있었다. 선택의 순간마다 내 목소리보다 남의 눈을 우선했고, 타인의 평가를 의식했다. 잘 살아왔다고, 내 힘으로 길을 단단히 다져왔다고 믿어왔지만 울컥 치밀어 오른 반감 앞에서, 그 믿음도 조각나버렸다. 타인의 시선에 기대 흔들리던 날들, 주체성 없이 떠밀린 순간들이 떠올랐다. 결혼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결혼을 다음 관문으로 여긴 것도 결국 시류에 따르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타인의 시선에 선택조차 맡겨버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사람들의 시선에 대롱대롱 매달려 산 지난 날의 내 모습을 마주했다.
주변 사람들의 결혼 소식이 잦아지면서, 인스타그램에는 웨딩 촬영과 결혼식을 담은 피드가 자주 등장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마주하는 장면. 화려한 꽃장식, 드레스와 턱시도를 입고 환하게 웃는 사람들. 화면 속 사진을 넘기며 나는 폭풍우처럼 몰아치는 감정과 생각들로 피곤했다. 그 사람과 헤어지지 않았다면 나도 이런 사진의 주인공이 되었겠지, 이 사람들은 어떤 확신으로 결혼했을까, 때가 돼서 했을까, 사랑이 깊어서였을까, 그렇다면 이 사람들은 결혼을 ‘선택’한 사람들일까.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
예능 프로에서나 듣던 노래 가사가 마음에 와서 콕 박히는 날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나는 결혼하지 않고 사는 삶에 대해서 고민해 보기로 했다. 그동안은 생각해 본 적 없는, 혼자 잘 사는 삶에 대해서.